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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이용자를 차별하는 보조금을 없애고, 가계 통신비를 인하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법 시행 이후 각종 부작용과 소비자 불만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여전히 '소통'보다는 '국민들이 기다려야 한다'는 '모르쇠' 반응으로 대처하고 나서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단통법이 불법 보조금을 양산하고, 국민들의 새 폰 구매 의지를 꺾어 사실상 구형 제품 소비 활성화를 위한 법으로 전락하는 등 국민 어느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작년 4분기 경제성장률 악화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는 등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5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4분기 경제 성장률이 세월호 사고가 터졌던 2분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낮다"며 그 원인 중 하나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으로 인한 소비 타격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2015년 경제 전망을 발표하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9%에서 3.4%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4분기 경기회복세가 크게 꺾였고, 올해도 지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서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0.4%로 세월호 사고가 터졌던 2분기 0.5%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단통법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며 '기다려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같은 날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방송통신 신년인사회에서 일부 반대적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다시 한번 피력했다.
최 위원장은 "경제 활성화에 약간의 장애가 있었다 해도, 단통법 취지 자체가 이전에 벌어진 혼란스러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감수해야 한다"면서 "다음 분기 성장률에서는 단통법이 보통과 같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통계에서 번호이동과 기기변경 가입자 수가 정상 수준으로 올라와 시간이 지나면 곧 부정적 효과가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단통법 시행 초기, 여론의 거센 뭇매를 맞을 때에도 '기다리면 된다'는 식의 대응으로 일관했던 정부가 또 다시 소통보다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소극적인 태도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통법 시행 후 100일을 기다려온 국민들은 당시 정부가 발표한 이동통신시장 통계 발표에 분노했다.
정부는 '12월은 신규·번호이동·기기변경 등 지원금별이 없어지고 가입자 규모가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왔다'면서 '시간이 지나니 좋은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작년 12월 시장은 각 이통사들이 연말연시 프로모션으로 지원금을 일시적으로 상향했고, 15개월 이상 지난 구형 단말기에 대한 지원금을 높게 지급했던 시기다.
당시 가장 인기가 있었던 단말기는 15개월 이상 지난 구형폰이지만, 최신 스마트폰과 비교했을 때 사양이 좋은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로 최고 요금제를 이용하면 거의 공짜 수준으로 구매할 수 있어 인기를 끌 수 밖에 없었다.
사실상 소비자들이 원했던 결과는 아닌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단통법이 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최신 스마트폰이 비싸 구입하기 어려운 만큼, 그 대안으로 구형 폰이지만 그나마 나은 갤럭시노트3를, 거의 공짜처럼 싸게 살 수 있다는 판단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라는 대리점 직원의 답변이 이를 방증한다.
법으로 강제된 상황에서 국민들은 당연히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기다릴 수 밖에 없고 그 결과 언젠가는 단통법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단통법의 취지에 공감해서라기 보다는 정부의 말대로 '기다리다'가 지쳐 법에 적응한 결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제도라고 해도, 국민의 공감과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다리면 된다'는 식의 대처는 정책을 책임지는 행정기관으로서의 책임있는 자세는 결코 아니다.
법을 적용받는 국민과 소통하면서 오히려 국민들이 법을 공감할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대상이 바로 정부가 아닌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