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면 팔수록 손해""전담팀 운영 불구 투기자본 낀 시장예측 사실상 불가능"
  • ▲ SK이노베이션 FCC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 FCC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단일 규모 세계 최대 정제시설을 운영중인 국내 정유사들이 지난해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자 그 원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통상 원료가격이 내려가면 생산 원가도 함께 낮아지는 만큼, 작년과 같은 대규모 적자에 대해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석유시장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상 최악의 성적표의 원인은 '재고평가손실'과 원료인 원유를 들여와 정제 과정을 거친 뒤 이를 이용해 생산하는 제품시장과의 '양분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정유사가 원유를 들여와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운송-저장-정제'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1달. 이 과정에서 유가가 급락할 경우 그 손해를 정유사가 고스란히 떠 안아야 한다.

    지난해 기준 국내 정유사의 일일 정제량은 SK이노베이션 111만5000배럴, GS칼텍스 77만5000배럴, 에쓰-오일 66만9000배럴, 현대오일뱅크는 39만배럴 규모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축구장 3배 크기의 200만배럴급 유조선(VLCC)이 2일에 한번.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역시 최소 3일에 한 척은 들여와야 하는 상황이다.

    단순하게 유가가 배럴당 1달러만 떨어져도 200만달러. 국내 정유사들의 경우 2~3일에 22억원(환율 1100원 기준)씩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했더 국제유가가 작년 하반기에만 반토막이 난 만큼, 수조원대의 손실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다.

    사실상 석유플레이어와 세일가스플레이어의 한 판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다.

    이와 함께 원유와 제품으로 양분화된 시장 역시 정유사의 실적에 직격탄을 날렸다. 
    원유시장의 경우 단순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이 이익실현이 불가능해지자 투매현상까지 발생하며 시장은 더욱 크게 요동쳤다.

    게다가 정유사들이 생산한 제품의 경우 싱가포르 석유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에 팔 수 밖에 없는 만큼, 유가 하락분을 제품가격에 반영할 수 없는 구조다.

    원유를 얼마에 구입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품을 생산해 시장에 팔 때 형성된 가격에 팔 수 밖에 없다. 
    정유사 손실이 눈덩이처럼 늘어난 이유다.


  • ▲ SK이노베이션 FCC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정유사 울린 재고평가손실

    2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각 사별로 국제유가를 예측하고 리스크 관리를 위한 전담팀을 운영하는가 하면 조직 내 여러 부서가 유기적으로 정보 교환을 하는 등 일년 내내 유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있지만 전문가들조차도 시장 상황과 국제 유가는 정확한 예측이 어려워 대규모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간판 정유 업체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65조8757억원, 영업손실 2241억원을 기록했다. 주력인 정유부문에서만 영업손실 9919억원을 기록하면서 3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석유 부문에서 약 6100억원, 화학 부문에서 약 1000억원 등 재고평가손실액은 7100억원에 달했다. 재고평가 손실이란 정유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석유와 석유제품 등의 재고 가치가 떨어지는데서 오는 손실을 의미한다. 정유사의 재고자산인 유가 가격이 1년 사이 급락하면서 하락된 가격으로 재고의 가치를 평가함으로써 생긴 손실액이 실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유가와 관련해서는 석유RM(리스크 매니지먼트)팀이, 운영과 관련한 부분은 운영최적화팀이 주요 업무를 맡고 있기는 하나 원유사업부 등 조직 내 모든 부서들이 원유 도입, 재고 관리, 공정 운영 최적화 등 전반적인 공정효율최적화를 위해 유기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유가는 어느 한 팀에서 전담할 수 있는 부문이 아니다보니 다양한 조직과 인력이 유기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며 유가 예측과 리스크 관리 등을 하고 있다"면서도 "아무래도 시설 규모가 크다 보니 지난해 재고평가손실액도 클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 ▲ GS칼텍스 RFCC 공장 전경 ⓒGS칼텍스
    ▲ GS칼텍스 RFCC 공장 전경 ⓒGS칼텍스

     

    GS칼텍스는 지난해 매출 40조2584억에 영업손실 4563억, 당기순손실 6762억을 기록해 지난 2008년 이후 6년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4분기 정유 부문은 매출 7조1455억원 영업손실 5710억원을 기록했다.

    GS칼텍스는 정확한 재고평가손실액을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지난 4분기에만 수천억원에 이르는 재고평가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작년 11월경만 해도 연간 5000억원의 순손실이 예측됐지만, 두달여 사이에 2천억원에 육박하는 손실이 늘어났다.

    GS칼텍스는 수급본부(supply & trading) 내 RM(리스크 매니지먼트. Risk Management)부문을 중심으로 사내 전 조직과 교류하며 국제유가 예측과 리스크 관리 등을 하고 있다.

    주로 유가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원유 시장 정세를 살펴 미래 유가를 예측하는 한편 원유구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 RM에는 싱가포르 현지법인에서 원유 도입 업무를 담당한 바 있는 검증된 원유 전문가들이 다수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 에쓰-오일 온산공장 전경 ⓒ에쓰-오일
    ▲ 에쓰-오일 온산공장 전경 ⓒ에쓰-오일

     

    에쓰-오일(S-OIL) 또한 지난해 재고평가손실 영향으로 매출액 28조5576억원, 영업손실 2589억원을 기록하며 원유 정제시설 상업 가동 첫해인 1980년 이후 34년만에 처음으로 영업손실을 냈다.

    주력인 정유부문에서 698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석유화학 1820억원, 윤활기유 2578억원의 영업이익에도 불구하고 큰 폭으의 적자를 기록했다. 재고평가손실액만 3100억원에 달했다.

    국내외 시장에서 판매 활성화 노력으로 재고보유를 최소화하고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 상승 및 사우디아람코의 아시아지역 원유 판매단가(OSP) 인하로 적자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정유부문 실적 악화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에쓰-오일은 조직 내 각 팀마다 한 명씩 리스크관리 담당자를 두고 있으며 총 규모는 1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추락하는 국제유가를 예측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국제유가 예측이나 리스크 관리 등은 어느 한 팀에서 전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모든 조직과 부서가 연관이 돼 있다"면서 "타 정유사들도 회사 내 전 조직이 유기적으로 연결 돼 국제유가 예측과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각 사별로 시스템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 현대오일뱅크 FCC 공장 전경 ⓒ현대오일뱅크
    ▲ 현대오일뱅크 FCC 공장 전경 ⓒ현대오일뱅크

     

    예측불가 석유시장 "시설 투자 지속 및 다변화로 극복해야" 

    올들어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수준에서 서서히 바닥을 확인하는 모습이지만 안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번 유가 폭락의 요인이었던 셰일가스 역시 유가가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이 작년과 같은 최악의 성적표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원유도입 및 수출 다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최근 1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투자해 왔지만 절대 멈춰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선진국들의 경우 이미 50%가 넘는 고도화비율을 보이고 있지만, 국내 정유사들의 고도화 비율은 아직도 30% 수준으로 아직도 갈길이 멀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국제유가의 경우 각 사별로 가격 추이와 동향을 수시 체크하지만 수십년 경험의 전문가들조차도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면서 "규모가 큰 정유사일수록 예측이 조금만 빗나가도 엄청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조금이라도 싼 원유 도입과 좀 더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한 시장 다변화는 물론, 시설투자를 통한 설비효율성 개선과 운영노하우 축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