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특정회사를 타깃 삼아 추진하던 보험업법 개정안(이른바 삼성생명법)에 대해 "일반적인 법 체계에 반한다" 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진정구 수석 전문위원은 25일 법안심사 소위 심사자료로 만든 검토보고서에서 "과징금 규정은 바람직 하지 않다"는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진 위원은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특정 생명보험사는 약 14조4,000만원의 계열사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면서 "해당 보험회사가 자율적으로 수립해야 할 초과분 실행계획에 과징금을 두는 것은 일반적인 법체계상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단 대규모 물량 매도에 5년 간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은 타당하다고 봤다.
정무위원회 소속 수석전문위원들이 낸 보고서는 강제력을 띠진 않으나 법안 논의 과정에서 심사자료로 쓰이며 실제 입법 과정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
이날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는 개의한 지 10여 분 만에 파행돼 이 법안은 상정되지 못했다.◆ 법 통과 땐 삼성家 주식 '14조' 시장으로…지배구조 '흔들'
이 의원이 지난해 4월 내놓은 이 법안의 골자는 보험회사의 자산운용 비율을 산정하기 위해 필요한 ▲총자산 ▲자기자본 ▲채권 또는 주식소유 합계액을 '시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현재 자산운용과 관련해서는 총자산과 자기자본은 시가를 기준으로 하고, 채권 또는 주식은 취득 원가를 각각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개정안은 보험업과 보험업감독규정은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이나 채권을 총 자산의 3%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한도(3%)를 초과해 주식·채권을 보유한 보험사는 5년 안에 이를 매각하도록 했다.
우리나라 보험회사 중 계열사 주식을 3% 이상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삼성생명이 유일하다. 법안의 출발점부터 삼성을 겨눴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 14조원을 처분해야 해야 한다. 자산이 214조(2014년 기준)에 달하는 삼성생명의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는 3%인 7조원대로 뚝 떨어진다.
삼성생명이 삼성에버랜드에서 출발하는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삼성그룹 지배구조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7.6%에 달한다. 삼성물산 5.1%, 삼성중공업 3.6%, 에스원 5.5%, 호텔신라 7.5% 등의 지분도 각각 갖고 있다.
-
◆ 與 "계열사 주식 적법한 보유"…野 "특정 재벌 지배구조 개선"
이 법안을 대하는 여야 간 의견은 뚜렷하게 갈린다.
지난 4월 열린 법안소위에서 이종걸 의원은 "보험회사의 자산운용비율 규제시 총자산은 시가를 적용하고 주식 또는 채권의 소유금액은 취득가액을 적용함에 따라 동일한 규제에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음으로 기준을 통일시킬 필요가 있다"며 처리를 주장했다.
또 같은 당 김기식 정무위 간사도 "보험 산업의 발전 논리와 상관없이 특정 재벌의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불합리한 자산운용비율 규제가 적용되고 있음으로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반면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은 "보험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면서 "시가를 기준으로 투자한도를 규제하게 되면 주식 가격의 변동에 따라 자산운용 비율 한도 규제의 준수 여부가 결정돼 투자의 안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김용태 새누리당 간사 역시 "보험회사의 자산운용을 규제하는 관계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계열회사의 주식을 보유했음에도 개정안의 시행에 따라 대량의 보유 주식을 강제로 매각하는 경우, 신뢰보호 원칙에 반할우려가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 측은 대주주 및 계열회사에 대한 투자 한도 규제는 연혁상으로나 규제 목적상으로 취득 시점의 규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보험업은 장기 투자를 해야 하는 업종의 특성상 현행대로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맞다”면서 "기준을 바꿔버리면 법적 안정성이 완전히 해이해져서 주가가 움직일 때마다 자산을 처분하고 다시 사들이는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 野 경쟁적으로 '삼성 때리기' 선봉장은 이종걸 원내대표
새정치연합의 삼성그룹을 겨냥한 법안 발의는 계속되고 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기업의 자사주 매각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인이 합병·분할할 때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하거나 주주에게 배분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이다.
기업의 구조 변환 때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도 있으나 발의 시점을 두고는 지적이 잇따른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각에 반발하면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맹공을 펴는 가운데 등장해 삼성생명법에 이은 '제 2의 삼성 때리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법안이 통과될 때는 국내 대기업들이 자사주 매각을 통해 우호 지분을 모으는 길은 완전히 막히게 된다. 국내 대기업들이 자사주를 더이상 '경영권 방어'를 위해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 정우택 정무위원장은 "삼성물산과 엘리엇처럼 경영권 공격과 방어 상황이 벌어지는 데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대한 수단이 강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내용의 법이 올라온 것은 조금 시기적으로 안 맞다고 본다. 신중하게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밖에도 같은 당 박영선 의원은 최근 법인세법 개정안을 내고 기업 분할로 자사주에 분할 신주를 배정할 때 양도차익을 과세하도록 했다. 지난 2월에는 김기준 의원이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내고 대기업 계열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분할할 경우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