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 "감정원법안 처리 연계해 업계 압박 악용"… 감정원과 감정싸움에 불통 튈 조짐
  • ▲ 서동기 한국감정평가협회장이 3일 국회 앞에서 표준지공시지가 기본조사 폐지를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한국감정평가협회
    ▲ 서동기 한국감정평가협회장이 3일 국회 앞에서 표준지공시지가 기본조사 폐지를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한국감정평가협회

    공시지가 산출 근간이 되는 표준지공시지가의 기본조사제도 존폐를 두고 한국감정평가협회와 국토교통부, 한국감정원의 대립각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협회는 지난해 국토부가 기본조사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다시 강행한다는 주장이고 국토부는 폐지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태도다.

    서동기 감정평가협회장은 지난 3일부터 국회 앞에서 표준지공시지가 기본조사제도 폐지를 위한 1인 시위에 들어갔다. 서 협회장은 기본조사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4일 국토부와 감정평가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해 예산 절감을 이유로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평가방법 변경을 추진했다. 지가변동률이 낮은 지역은 표본을 추려 하는 기본조사, 그 외 지역은 지금처럼 정밀조사하는 방식으로 이원화하자는 게 핵심이다.

    애초 감정원이 국토부에 건의했던 새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방법은 최근 1년간 지가변동률이 1% 이하이고 특별한 지가변동 요인이 없는 읍·면·동지역을 기본조사지역으로 선정해 실지조사 등 감정평가의 필수절차를 생략하고 약식감정으로 대체하자는 것이었다. 기본조사 도입으로 필지별 감정평가 수수료를 낮출 수 있어 예산을 아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실지조사 생략 등 약식감정은 표준지 공시지가를 감정평가사가 직접 '조사·평가'하도록 한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국토부는 기본조사도 기존 정밀조사 방식을 따르기로 제도를 수정했다.

    협회와 감정평가업계는 기본조사와 정밀조사가 이름만 다를 뿐 결국 조사방법이나 감정평가사 업무는 같을 수밖에 없어 제도 개편의 취지와 근거가 없다며 반발했다. 감정평가업계는 표준지공시지가 업무 거부를 결의하기도 했다.

    서 협회장은 "기본조사제도는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 장관 주재 확대간부회의에서 잘못된 제도로 결론 났고 국토부와의 협의를 통해 폐지하기로 했는데 올해 다시 강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13일 국토부와 협회 관계자가 만나 기본조사제도는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는 만큼 즉각 철회해야 하지만, 이미 정부 예산이 기본조사와 정밀조사로 나뉘어 세워졌고 국가재정전략회의에도 보고된 만큼 한시적으로 기본조사 명칭은 유지하되 앞으로 관련 훈령을 고쳐 기본조사에 관한 내용은 삭제하기로 결론 냈다는 설명이다.

    협회는 지난 6월에는 국토부가 기본조사를 시행하지 않기로 확정했다고 협회에 통지까지 했다는 주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국토부는 현재 명확한 배경 설명도 없이 기본조사를 다시 강행하고 있다"며 "이에 협회 13개 전국지회 지회장은 지난달 27일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 상실을 지탄하며 공시업무 거부는 물론 기본조사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부연했다.

    2일 현재 전체 3600여명의 감정평가사 중 79.8%인 2845명이 서명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토부는 기본조사제도 도입 철회를 이야기한 적 없다는 태도다.

    국토부 부동산평가과 관계자는 "25년간 공시지가제도를 운용해오면서 업무의 효율화와 예산 절감에 대한 요구가 있어왔다"며 "(지난해) 기본조사를 해보고 시행에 무리가 있거나 미흡한 부분은 보완하거나 개선하기로 했지 도입을 철회하기로 결론 내린 바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이뤄진 기본조사에 이어 올해도 진행할 뿐 협회 주장대로 제도 도입을 철회하기로 했다가 번복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낮은 수수료 문제와 관련해선 "업계 일각에서 수수료가 낮아진 만큼 업무량이 줄지 않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정보통신(IT)기술을 기반으로 조사 대상지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고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고 있어 업무량은 줄어들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감정평가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업무 거부 사태가 벌어졌을 때 국토부와 협회가 협의한 내용을 문서화하지 않은 게 화근이 돼 1년 만에 다시 대립하고 있다"며 "국토부는 예산 절감과 공시업무 효율화를 이유로 내세우지만, 업계에서 정밀조사 수수료를 낮추는 방안도 제시했었고 기본조사가 이름만 다를 뿐 업무는 정밀조사와 같으므로 국토부가 제도 도입의 명분을 잃은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기본조사 폐지에 대한 진실공방은 협회와 감정원 간으로도 번질 조짐이다.

    익명을 요구한 감정평가업계 관계자는 "서종대 감정원장이 서동기 협회장에게 감정원이 요구하는 내용대로 법안(한국감정원법안) 처리에 동의해준다면 기본조사를 시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국토부와 감정원은 공시업무 효율화를 위해 기본조사를 한다는 주장이지만, 실상은 국회 계류 중인 법안과 연계해 업계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고 귀띔했다.

    감정원은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허위사실에 대해 협회에 항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감정원 관계자는 "알아본 바로는 서 원장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당황스럽다"며 "이런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엄중 경고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