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최저낙찰기준액 안 지켜" vs "입찰 기준 따라 문제 없어"
  • ▲ 울산항만공사에서 3월 초 해고 통보를 받은 특수경비노동자들은 세종시 해양수산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가지고 있다. ⓒ 연합뉴스
    ▲ 울산항만공사에서 3월 초 해고 통보를 받은 특수경비노동자들은 세종시 해양수산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가지고 있다. ⓒ 연합뉴스


    "특수경비 업무에 맞게 정해진 기준대로 열악한 임금을 정상화해달라고 요구했을 뿐인데, 고용승계가 거부돼 앞으로 살길이 막막합니다."

    지난 14일부터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 앞에서 9일째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전 울산항만공사 특수경비노동자들의 하소연이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공사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행정 탓에 근로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 13일로 기존 울산항만공사 용역업체인 A업체와 계약이 만료됐다. 이들은 공사와 새로 계약한 B업체에 고용승계 되지 않았다.

    B업체가 제시한 임금을 이들이 수용하지 않자 업체가 이들과의 계약을 포기한 것이다.

    공사는 "임금협상 중 문제가 생기자 노조 측에서 근무와 재계약을 거부했고 어쩔 수 없이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B업체는 다음 달 1일부터 경비 업무를 시작한다. 기존 특수경비노동자와의 고용승계 불발로 생긴 빈자리는 현재 전문성이 떨어지는 청원경찰이 대체 투입되고 있다.

    경비노동자들은 "그동안 우리는 근로자 보호 지침에 어긋난 부당한 임금을 받아왔다"며 "재계약 과정에서 정당한 임금을 정상화해달라고 시도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특수경비노동자는 특수 직종 근로자의 임금지표인 '시중노임단가'를 적용받아 임금을 책정한다. 이들의 경우 노임단가 기준을 따르면 월 236만원을 받아야 하지만, 그동안 시간당 최저 시급으로 계산된 210만원을 받아왔다.

    노동자들은 이번 집단 고용승계 불발에 따른 실직사태의 배경에는 공사의 안이한 행정과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 주장대로면 우선 공사는 경비보안업무 계약만료일을 단 2주 앞두고 새 경비업체를 선정했다. 재계약과 생계 문제가 걸린 노동자들은 계약만료 2달 전부터 재계약 문제를 거론했지만, 공사는 만만디 행정을 보였다. 그 결과는 국가중요시설인 울산항의 보안 불안으로 이어졌다.

    공사는 규칙상 청원경찰이 경비보안 업무를 봐도 하자가 없다지만, 특수경비노동자들은 청원경찰이 업무를 대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보안에 구멍은 나지 않더라도 누수에 대한 불안감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공사도 행정처리가 늦은 것은 인정한다. 다만 계약업체가 바뀌어도 대부분 고용승계가 이뤄진다며 책임을 계약업체와 기존 경비노동자에게 돌리고 있다.

    경비노동자들은 임금협상 불발에는 공사가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태도다. 애초 공사가 최저낙찰기준액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으로 새 업체와 계약을 맺은 게 문제라는 것이다.

    최저낙찰 하한률은 입찰 때 낙찰이 이뤄져야 할 최저금액을 뜻한다. 규정대로라면 입찰은 예상 비용의 87.9%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한률 준수는 경비업체의 원활한 보안업무를 위해 꼭 지켜져야 한다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공사는 최저낙찰기준액보다 낮은 72%의 금액으로 B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최저낙찰 금액에도 못 미치는 예산으로 임금협상을 벌이다 보니 시중노임단가를 준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경비노동자들은 B업체와 구두계약을 통해 3월1일까지 계약을 연장한 뒤 지난달 16일 B업체와 노임단가 적용과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을 내용으로 하는 간담회까지 열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고용승계 불가 통보였다고 하소연하는 상황이다.

    경비노동자들은 "간담회에서 언급된 내용만 믿고 계약만료일인 2월14일 이후에도 2주간 더 근무했는데 손에 쥔 건 실직뿐"이라며 "공사에 하소연해도 B업체가 태도를 바꾼 건 공사와는 무관하다는 태도"라고 말했다.

  • ▲ 울산항만공사 측에서 해고로 생긴 결원에 청원경찰을 배치하자 노조원은 울산항 보안문제를 지적했다. ⓒ 연합뉴스
    ▲ 울산항만공사 측에서 해고로 생긴 결원에 청원경찰을 배치하자 노조원은 울산항 보안문제를 지적했다. ⓒ 연합뉴스


    공사는 72%의 낮은 낙찰률에 대해 "입찰은 조달청 프로그램을 통해 공정히 진행됐고 전체 점수에 기술평가 80%, 가격평가 20%를 반영했다"며 "경비 임금 삭감을 위해 낮은 비용을 제시한 업체를 고의로 선정한 게 아니라 기술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를 선정하고 나니 낙찰가가 낮았던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공사 입찰 평가방식으로는 특수경비 업무를 위한 최소한의 예산 배정이 어려운 만큼 최소한의 가격평가를 보장하고 기술평가에 관한 부분은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고려할 만하다고 조언한다.

    경비노동자들은 앞으로도 매일 해수부 청사 앞에 모여 관련 내용을 담은 전단을 배포하고 선전 방송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4일부터는 매일 아침 울산항만공사 앞에서 출근투쟁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애초 주장했던 임금 정상화는 차치하고 다시 복직이라도 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비관적이다. B업체는 근무 거부로 말미암은 결원을 신규 채용자로 이미 채운 상태다.

    공사는 나중에라도 결원이 생기면 기존 노동자들이 추가로 채용될 수 있게 협조하겠다는 태도다.

    한편 해수부 관계자는 "울산항만공사가 해수부 소속 공기업이라도 공사의 고용 관련 문제는 관여할 수 없다"며 "다만 상위기관 차원에서 노동자와 공사의 조율에 노력하고 있고, 결원이 생기면 기존 노동자들을 우선 채용하는 방법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1963년 개항 이래 울산항에서 경비보안 업무에 문제가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 중요시설인 울산항 경비보안 업무는 줄곧 정부가 직영했다. 항만운영을 담당하는 공기업 울산항만공사가 2007년 출범한 후에도 업무를 직영하다가 2009년부터 용역업체에 맡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