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분양제, 투기 등 소비자 피해 양산…"후분양제, 시장원리 충실해질 것"주택건설업계 "건설기업에 자금 부담… 내수경기 위축 악순환 낳을 우려"
  • ▲ 영남권 한 주택 공사 현장. ⓒ성재용 기자
    ▲ 영남권 한 주택 공사 현장. ⓒ성재용 기자


    11·3대책 여파로 서울 강남권 등을 제외한 주택시장이 실수요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선시공 후분양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단기투기세력이 줄어들고 있는 지금이 후분양제로의 전환에 적기라는 분석이다. 다만 주택건설업계에서는 공사비 부담이 건설사에 가중되면서 내수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건설사가 주택 공급시 후분양제다 선분양 예약제를 선택하도록 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이달 발의할 계획이다.

    정동영 의원은 "최근 드러난 불법전매 실태는 정부가 시살상 투기를 장려한 결과"라며 "후분양제나 예약제를 시행하면 불법전매 방지는 물론, 분양원가 검토 등 계약여부 결정까지 소비자에게 검증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분양제는 아파트 건설이 거의 끝난 뒤 분양을 하는 방식으로, 투기세력 개입과 부실시공을 차단할 수 있고, 적정 분양가 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후분양제 도입은 2004년에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2004년부터 공공 부문이 공급하는 경우에 한해 후분양 시범사업을 우선 시행하고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후분양제를 의무화하겠다고 했지만, 경제위기와 주택시장 침체 등을 이유로 2008년 도입 계획이 폐지됐다.

    현행 주택공급 방식인 선분양제는 주택사업자가 대지소유권을 우선 확보한 뒤 분양보증을 받고 청약을 통해 입주자를 모으는 방식이다. 주택사업자 입장에서는 전체 사업비의 5%만 부담하면 돼 공급자를 위한 제도라는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단 분양권이 소비자에게 주어지고 거래도 가능함에 따라 여기에 웃돈이 붙고 투기도 가능해졌다는 것이 후분양제 논의의 출발점이다. 또 홍보와는 다른 시공이나 허술한 마감 등과 같은 소비자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수억원대의 주택을 완성품 없이 견본주택만 보고 구매해야 하는 위험한 제도라는 지적이다.

    이밖에 건설업체의 부도 위험을 수요자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점, 공사비를 외부에서 끌어오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이자비용이 분양가에 포함돼 적정 분양가 산정이 불가능한 점도 지적됐다.

    실제로 아파트 하자로 인한 분쟁 건수도 해마다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 집계 결과 올해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하자 신청 건수는 지난 10월까지 3236건이었다. 2009년 위원회가 발족된 이래 분쟁 건수는 △2010년 69건 △2011년 327건 △2012년 836건 △2013년 1953건 △2014년 1676건 △2015년 4244건 등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11·3대책 이후 투기수요가 줄었지만, 과잉공급 공포와 함께 후분양제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국토부 자료를 보면 주택 인허가 실적은 2013년 44만여가구에서 2014년 51만5000가구, 2015년 76만5000여가구로 증가 추세다. 주택보급률도 2002년 100.6%로 처음 100%를 넘어선 이후 2014년 118.1%에 달할 정도로 증가세다. 필요보다 많은 주택이 공급되는 만큼 후분양제를 통한 적극적인 공급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도 현 시점이 수요자의 보호라는 정부 정책 기조와 궤를 같이하는 후분양제의 도입을 준비할 적기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입주 전 차익을 노린 단기투기가 어려워 투기를 해결할 수 있다. 또 새 아파트에 의해 기존 아파트값이 따라 오르는 부작용도 해결되면서 집값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게다가 미국의 금리인상과 주택공급 과잉 등의 악재로 2018년부터 부동산시장이 본격적인 하락기에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주를 이루면서 후분양 활성화 논의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선분양제는 고도성장기에 공급 편의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며 "부동산 투기, 주택의 질 저하, 과잉공급, 주택시장 경기 변동성 확대 등 현 주택시장의 해묵은 문제들도 선분양제와 맞닿아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주택을 산업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산업 중심·공급 위주의 선분양제도에 수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도 "주택공급이 부족할 때는 공급을 원활히 한다는 차원에서 선분양이 일정 수준 기여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상황에서 투기적 요소를 제거하고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후분양제로 가는 것이 맞다"며 "무엇보다 실수요 위주로 부동산시장을 재정립하는 게 중요하다. 전매제한 강화와 함께 후분양제 도입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 부장은 "후분양제가 정착돼야 건설사들도 잘 지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후분양제 도입으로 분양권 전매시장 소멸, 주택품질 강화, 정부의 주택시장 직접 개입 필요성 약화 등 시장 윈리에 충실한 주택시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주택건설업계에서는 공사비의 상당 부분을 건설사가 떠안아야 하는 후분양제 도입에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주택협회 관계자는 "후분양제는 자금 여력이 녹록치 않고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열위한 중견·중소건설사들에게 큰 악재로 작용할 뿐더러 소비자들에게도 선분양시 업체들이 부담했던 이자비용, 건설원가 등이 떠넘겨질 것"이라며 "건설산업의 위축은 내수경기 침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정책 입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건설 관계자 역시 "자금력이 부족한 건설업체는 공급량을 줄일 것"이라며 "이는 건설업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기존 주택 가격 상승을 부러와 서민들이 전세자금대출을 더 많이 받아야 하는 악순환에 놓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