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협회 참여, 이동중지명령 등 이해관계 얽혀당일 심사, 요식행위 지적도
  • ▲ 가축방역심의위원회.ⓒ연합뉴스
    ▲ 가축방역심의위원회.ⓒ연합뉴스

    가축방역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사공이 많아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생산자단체를 포함해 구색 갖추기로 위원회를 구성하다 보니 방역을 강화해야 할 때 거꾸로 고삐를 느슨하게 푸는 등 어이없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얼추 결론을 내놓고는 정책적 판단 오류에 대한 위험을 위원회에 떠넘기려는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3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8일부터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농가 반경 3㎞(보호지역) 이내에서 산란계(알 낳는 닭) 농장의 식용 달걀 반출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정부는 앞서 21일부터 운송차량에 의한 산란계 농가의 수평 전파를 막고자 전국 AI 발생지역을 대상으로 보호지역 내 모든 농장에서 일주일간 달걀 반출을 금지해왔다.

    이런 AI 확산 방지 조처는 농식품부가 아니라 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위원회는 2014년 H5N8형 고병원성 AI로 큰 피해를 겪은 뒤 그동안 단순 자문 역할에 그쳤던 가축방역협의회를 격상한 것이다. 수의사뿐 아니라 의학, 철새, 경제학 등 다른 분야 전문가를 포함하고 방역과 관련한 심의·의결 기능을 부여했다.

    그러나 위원회가 제구실을 못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신속한 조처를 논의하는 자리에 생산자단체 등 이해관계자가 다수 포함되다 보니 방역에 방점을 찍어야 할 위원회의 기능이 퇴색된다는 견해다.

    위원회에는 대한양계협회, 한국오리협회, 한국육계협회, 한국토종닭협회 등 생산자단체가 포함됐다. 전체 구성원 22명 중 18%에 해당한다.

    위원회 심의·의결 방식은 이견 조율을 통한 만장일치에 가깝다. A위원은 "거의 만장일치 수준으로 의결한다"며 "달걀 유통금지 등의 결정에는 생산자단체 반대가 심한 편이지만, 조정을 통해 협의안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생산자단체의 반대가 거셀 경우 방역대책의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A위원은 "처음 이동중지 명령(스탠드 스틸)을 내릴 때 48시간 얘기가 나왔지만, 36시간으로 줄었다"며 "유통에 타격을 주지 말자는 의견이 나왔다. 어차피 주말에 하루 쉬니까 주말까지만 하자는 얘기였다"고 귀띔했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과 충북 음성에서 접수한 AI 의심 신고가 고병원성으로 확진되자 18일 위원회를 열고, 금요일인 18일 자정부터 일요일인 20일 정오까지 36시간 동안 이동중지 명령을 발동했다.

    농식품부가 생산자단체의 의견을 경청하다가 방역에 허점을 드러낸 사례는 또 있다. 살아 있는 닭(토종닭) 유통과 관련해 오락가락 행정을 펼친 게 대표적이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19일 살아 있는 토종닭의 시장 유통을 금지했다가 현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달 15일 생닭 유통을 다시 풀었다. 토종닭협회가 자체적으로 소독을 강화하고 유통 상황을 모두 기록해 보관하겠다는 의견을 내자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정부가 AI 위기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올린 날이었다.

    농식품부는 당시 토종닭의 AI 발생 사례가 없고 장기간 유통금지로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현장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I 확산으로 위기단계를 강화한 날 감염 위험이 큰 생닭 유통을 풀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위원회에 생산자단체를 포함하다 보니 정부가 이동중지 명령을 공식 발동하기 전에 이해관계자들이 미리 알게 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경우에 따라선 이동중지 명령 전에 닭이나 달걀을 유통·반출하는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AI 전문가는 "위원회의 목적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데 이해관계자가 많다"며 "위원회를 구성할 때 구색 갖추기로 생산자단체를 끼워 넣다 보니 방역을 강화하기 어려운 의사결정 구조"라고 꼬집었다.

    그는 "비전문가 등 참여 인원이 너무 많다. 1인당 발언 시간을 3분으로 제한해도 1시간 넘게 사견만 듣게 된다"며 "발언 내용도 대부분 '몰라서 묻는데…' 하는 사람이 많다. 토의가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신속한 의사결정과도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소신 있게 정책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판단 실수의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위원회를 이용한다고 주장한다. 제공되는 정보는 부족한 가운데 사실상 정부가 방향을 통보하는 수준이다 보니 위원회가 거수기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AI 전문가는 "대부분 전날 긴급회의 소집을 알리는데 관련 자료는 미리 주지 않는다"며 "당일 현장에서 나눠주는 자료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정부가 방향을 설명하고 참석자 동의를 구하는 식으로 반대할 분위기가 아니다"고 전했다.

    위원회에는 검역본부 AI 역학조사위원회의 대학교수 4명도 참여한다. 하지만 역학조사위도 현장 역학조사나 검증작업 없이 검역본부의 발표내용을 단순히 듣는 수준에 그치다 보니 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AI 전문가는 "밖에서 볼 때는 전문적인 논의를 거쳐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부가 전시행정으로 연막을 친 뒤 정책적 판단 실수의 위험을 위원회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일본은 총리가 책임지고 판단해 신속하게 조처하는 데 우리나라는 장관이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