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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 이후 당국은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을 강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걸었다.
반면 일관된 규제 정책에 금융권은 성장을 위한 기회까지 잃어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저하됐다.
3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생존과 발전을 위해 새롭고 혁신적인 투자처와 수단 발굴은 지속되고 있지만 관련 법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해 업계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질적으로 위험 부담은 크지만 그만큼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증권업계도 규제에 몸살을 앓고 있다.
당국이 겉으로는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 경쟁력을 키우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막상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나 부동산 등 PF 부문에서 고강도의 규제를 걸어둬 여전히 브로커리지 부문의 수익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증권업계는 최근 몇 년 간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갇히면서 수익이 급감하자 그 대안으로 부동산PF 카드를 꺼내든 바 있다.
ELS 등 각종 파생상품을 통해 수익을 내려 했지만 이 마저도 당국의 판매 규제때문에 판로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 증권사들이 부동산 PF에 잇따라 참여하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5일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우발채무와 관련된 제재 방안을 마련하며 업계의 숨통을 다시 조이기 시작했다.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말 기준 증권사들의 우발채무는 23조원으로, 이중 부동산 PF와 관련된 신용공여 규모는 17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근거로 증권사들에게 의무적으로 충당금을 쌓도록 한 것.
이에 따라 그동안 회수율이 비교적 높은 요주의나 정상 단계에서는 충당금을 쌓지 않았던 증권사들도 2분기 중 모든 단계에서 충당금이 필요해져 그만큼 부담도 높아졌다.
증권업계는 이같은 규제가 과도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업계가 최근 3년간 부동산 PF의 채무보증을 이행하면서 손실을 본 사례는 4건, 금액은 747억원에 불과해 안전한 투자처"라며 "대다수 증권사들이 부동산 관련 우발채무 리스크가 자기자본으로 손실을 감내할 수준이고 향후 위험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에서 당국의 규제는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증권사에 충당금을 쌓으라는 당국의 지시에 대해 업계는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로 당국이 홍역을 치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고 있다.
당시 저축은행들은 무더기로 부동산 PF에 참여했다가 사고를 내 10만명이 50조원에 이르는 피해를 양산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불법대출, 회계조작 등 불법행위를 찾아내지 못한 금감원의 업무태만과 금감원 출신이 저축은행의 낙하산 사외이사, 감사 부임 등으로 금피아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반면 증권업계는 추진 중인 PF 사업이 당시 저축은행의 불법과 같은 잣대로 위험성을 판단해 규제를 가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주도로 증권업계에 도입한 각종 정책들은 잇따라 시장에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실패사례로 남고 있다는 점도 당국의 무지와 무능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지난 14일로 출시 첫돌을 맞았던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의 경우 I'국민 재산증식', '만능통장'으로 표현하며 금융당국이 대대적으로 가입을 권유했던 상품이지만, 소득공제장기펀드(소장펀드), 재형저축에 이어 당국주도 상품 실패의 흑역사만 다시 쓰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1년 만에 은행, 증권 등 금융권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ISA에 대한 무용론과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낮은 수익률 대비 높은 수수료로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는 상품이 속출하자 고객들의 금융사에 대한 불신이 오히려 높아졌고, 대다수 은행과 증권사들도 ISA 판매를 사실상 접은 상태다.
ISA 이전 소장펀드, 재형저축 등도 상대적으로 소득이나 연령이 낮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당국이 자산 증식을 시켜주겠다는 목적으로 출시됐지만 모두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소장펀드, 재형저축이 ISA와 마찬가지로 연 총급여 5000만원 이하의 근로자를 가입대상으로 두고 있는 점, 최소 5년 이상의 가입기간을 유지해야 하는 점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 반면 수익률은 금융사 자체적으로 판매하는 상품에 비해 턱없이 낮아 자연스럽게 업계에서 잊혀졌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금융위원회의 주도로 지난해 4월 시행된 '중기특화증권사'제도가 올해 금융당국이 추진한 정책 중 사실상 실패사례로 남게 될 전망이다.
참여한 중소형 증권사들 모두 가시적 성과가 없어 동력을 잃었고 크라우드펀딩 사업의 경우 오히려 제도시행 이후 실적이 이전 실적에 비해 뒷걸음질 쳤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P-CBO(채권담보부증권) 발행 등 이미 수익성이 어느 정도 확인된 사업은 제도시행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진행해온 증권사들이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중소형 증권사들이 불필요한 규제에 오히려 도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기특화 증권사 평가항목에 크라우드펀딩을 추가한다는 계획과 관련해서도 수익성이 불확실한 크라우드펀딩을 필수항목으로 지정해 내년 평가때 까지 안고가도록 만든 것에 불과하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당국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용만 쓰면서 자격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