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권자 채무 재조정 성공시 2.9조원 지원… 유동성 위기 탈출실패시 P플랜으로… 피해규모는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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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소재 대우조선해양빌딩.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의 '운명의 날'이 하루 남았다. 오는 17~18일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회사채 투자자들이 채무 재조정에 찬성해야 대우조선은 유동성 위기를 넘기게 된다. 채무 재조정에서는 신규 자금 2조9000억원 지원 여부를 결정짓는다. 만약 사채권자들이 채무 재조정에 반대한다면 대우조선은 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Pre-packaged Plan)으로 직행하게 된다.
두 가지 모두 대우조선의 몸집을 줄여 생존 가능한 회사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시도다. 다만 채무 재조정을 전제로 한 자율적 구조조정은 연착륙에 방점이 찍혀 있는 반면, P플랜은 처음 시행되는데다 일종의 디폴트 선언이라는 점에서 예기치 못한 '경착륙' 가능성이 제기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은 17~18일 총 다섯 차례의 사채권자 집회를 연다. 이들 회사채에는 '한 곳에서 지급불능이 발생하면 다른 채권자도 일방적으로 지급불능을 선언할 수 있다'는 크로스 디폴트(Cross default, 연쇄지급불능) 조항이 걸려 있어 대우조선은 이틀 내내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국민연금·우정사업본부·사학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회사채 1조3500억원 중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만기를 3년 연장해주면 대우조선은 큰 고비를 넘기게 된다.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 가결 조건으로 시중은행도 무담보채권 80% 출자전환, 20% 만기 연장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무담보채권 1조6000억원을 100% 출자전환하게 된다.
사채권자 집회가 성공하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이달 말께 바로 대우조선에 대한 한도성 대출을 시작할 계획이다. 대우조선의 유동성 위기를 촉발한 21일 만기 회사채(4400억원) 상환을 유예한다고 해도 월말 부족자금 800억~900억원가량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산은과 수은이 지원하는 신규자금 2조9000억원은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처럼 쓸 수 있는 개념이다.
우선 대우조선의 자구노력으로 부족자금을 충당한 뒤 그래도 모자라는 돈만 마이너스통장에서 꺼내 쓰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신규자금 지원은 대우조선의 선박 건조 등 운영비와 협력사 납품대금 결제 용도로 먼저 쓰인다.
국책은행과 시중은행, 사채권자는 상반기 중 출자전환도 마무리할 예정이다. 출자전환 규모는 총 2조9100억원이다. 출자전환이 마무리되면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732%에서 300%가량으로 떨어진다.
금융당국 계획대로 채무 재조정이 진행되면 대우조선 보유지분은 △산은 56% △사채권자 17.5% △시중은행 13.5% 등으로 정리된다. 지금은 산은이 79%를 보유하고 있으며 금융위원회는 3.5%, 소유주주는 16.4%를 들고 있다.
금융당국은 출자전환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면 대우조선이 오는 9월 한국거래소 상장 실질심사를 통과해 주식거래를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산은은 채무 재조정과 신규자금 지원이 마무리되는 대로 대우조선 경영정상화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내년 말까지 자회사 대부분을 매각하고, 현재 1만명인 직접고용인력(정규직)을 2018년 상반기까지 9000명으로 축소해 몸집을 줄이기로 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해양 플랜트 사업은 사실상 정리하고, 경쟁력 있는 고부가가치 선박과 잠수함 등 방위산업에 주력하는 구조로 사업을 재편한다.
이 같은 계획이 차질 없이 이뤄지면 대우조선 매출은 2021년 6조~7조원으로 줄어든다. 지금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와 산은은 경영정상화를 거쳐 내년 말부터 대우조선 매각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지금의 현대중공업·대우조선·삼성중공업 '빅3' 체제를 '투톱' 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산은 측은 "빅3의 독자생존 방식으로는 공급과잉과 호황기에 고착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빅3 간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M&A를 통한 업계 재편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 재조정 안건이 부결된다면 대우조선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인 P플랜에 들어가야 한다. P플랜은 법정관리의 장점인 법원의 강제성 있는 채무조정과 워크아웃의 신규자금 지원 기능을 결합한 것으로, 지난달 막 회생법원이 출범하면서 걸음마를 뗀 제도다.
단기 법정관리를 통해 채무 재조정을 한 뒤 기업을 다시 워크아웃 절차로 되돌려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회생계획안을 미리 짜 놓은 뒤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때문에 절차가 신속하다는 게 장점이다.
P플랜에 대비한 회생계획안 작성을 완료한 금융당국과 산은은 채무 재조정 실패시 대우조선을 오는 21일 전후로 P플랜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법원인가는 최소 4주일에서 길게는 3개월 가까이 소요된다.
P플랜에 돌입하면 일단 법원 주도로 강도 높은 손실 분담 작업(채무 재조정)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금융권 손실 예상액은 4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자율적 구조조정시 손실액 3조1000억원보다 1조3000억원가량 많다.
손실액으로 따지면 수은이 1조5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국민연금 등 회사채가 1조3500억원, 시중은행은 9000억원이다. 그러나 채권액 대비 손실률로 따지면 회사채 투자자은 원금의 90%를 까먹게 돼 손실률이 가장 높다.
산은과 금융당국은 대우조선에 3조3000억원 이상을 신규 투입해 짓던 배를 완성해 내보내고, 발주 취소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P플랜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발주취소 물량과 수주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될 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회생에 방점을 찍는 구조조정 방식이라지만 P플랜도 법정관리의 일종인 만큼 여려가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주들이 무더기로 선박발주를 취소하는 경우가 가장 큰 문제다. 실사 결과 P플랜 신청시 8척 정도의 발주취소가 예상됐으나 지난해 말 현재 대우조선 수주잔량 114척 가운데 96척에 부도시 주문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P플랜이 선언됐을 때 발주계약을 취소하겠다고 나설 선주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피해금액은 극과 극을 달리게 된다.
조선업황이 좋지 않은데다 국제유가 역시 오를 조짐이 보이지 않아 대우조선이 P플랜 돌입 이후 신규수주를 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발주취소 규모가 늘어나고, 신규수주도 제대로 되지 않으면 대우조선은 더 큰 폭으로 인력감축을 할 수밖에 없다. 협력업체와 지역경제 피해도 함께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