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시평순위·신용등급 등 까다로운 조건 내세워"수의계약하기 위한 편법… 발목 잡을 수도"
  • ▲ 서울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 서울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서울시내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단지에서 시공사 선정이 연이어 유찰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조합 측이 까다로운 절차를 내세워 원하는 시공사와 사업을 벌이려는 복안인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으로 얻는 이익이 조합원 1인당 평균 3000만원을 넘을 경우 이를 제외한 초과이익의 최대 50%를 부담금 형태로 정부가 환수하는 제도로, 2013년 부동산 거래 위축을 이유로 올해 말까지 유예된 상태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2일 발표한 '실수요 보호와 단기투자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하 8·2대책)'에 추가 연장 없이 내년 1월부터 예정대로 시행한다고 밝히면서 부활이 확정됐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서초구 방배5구역 재건축 조합은 최근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를 열었으나, 현대건설만 참여하면서 유찰됐다. 제한경쟁입찰 기준 5곳 이상의 건설사가 참여해야 입찰이 성립되는데,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방배5구역의 시공사 선정 실패는 이번이 세 번째다. 일반경쟁으로 치러진 1차 입찰에서는 현대건설만 참여해 유찰됐고, 제한경쟁으로 전환한 2차 입찰에서는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만 얼굴을 내비쳤다.

    조합은 동일한 조건으로 붙인 입찰이 세 차례 이상 유찰될 경우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다. 이에 조합은 세 번째 입찰공고를 냈으며 8일 치러질 현장설명회에서도 유찰된다면 수의계약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수의계약 대상자로 유력하게 지목되고 있는 곳은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은 일반경쟁입찰에 제안서를 제출한 유일한 곳일 뿐만 아니라 이후 진행된 현장설명회에 빠짐없이 참가해 관심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의계약을 하고 싶은 상황에서 법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 빨리 유찰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조합원 입장에서는 사업 지연에 따른 추가비용 발생이 부담스러운 상황인데, 호흡이 맞는 건설사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면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조합은 이번 시공사 입찰 조건으로 보증금 400억원과 계약 45일 이내 현금 1100억원 지불 등을 제시했다. 또 입찰자격을 △2016년 시공능력평가 상위 15위 이내 업체 △한국신용평가 기준 회사채 신용등급 평가 'A+' 등으로 제한했다.

    역시 세 차례 시공사 선정 입찰이 무위로 돌아간 강남구 일원대우 재건축 사업의 경우 수의계약으로 가닥을 잡았다. 조합은 3차 시공사 현장설명회에 참석했던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GS건설, 대림산업에게 사업참여 제안서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현대건설만 유일하게 제안서를 제출했다.

    조합 측은 "포스코건설, GS건설 등이 사업에 참여하겠다면서 기한을 더 연장해달라고 요청해왔지만, 초과이익환수제가 부활하기 전까지 관리처분계획 신청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기간이 빠듯해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이달 중 총회를 개최해 시공사 선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사업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총회는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열릴 예정이다.

    서초구 신반포22차도 세 번째 시공사 선정 입찰이 유찰됐다. 조합은 3차 입찰공고에 입찰보증금 30억원 중 5억원을 현장설명회 전까지 현급납부해야 한다는 입찰참가자격을 내걸었으나, 현장설명회 전까지 현금납부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조합 관계자는 "현장설명회에 나타난 건설사는 있었지만, 아무도 보증금을 걸지 않아서 응찰에 해당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재건축 조합들이 시공사 선정입찰에 너무 깐깐한 기준을 꺼내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단지의 경우 처음부터 특정업체와 수의계약을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입찰 문턱을 높인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만큼 경쟁입찰을 통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려는 입법 취지와 어긋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추이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미분양 리스크가 없는 강남권 재건축이라는 특수성과 함께 최상위 아파트 브랜드를 유치해야 향후 미래가치도 높아진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강남권의 경우 재건축 사업이 유일한 사업물량 확보 통로인 만큼 건설사들이 다소 무리한 조건일지라도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조합들이 공동시공을 금지하고, 자금여력을 갖춘 건설사만 입찰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수주 문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다만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건설사가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조건이 되레 발목을 잡아 유찰되는 경우도 많아질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 ▲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전경. ⓒ연합뉴스
    ▲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전경. ⓒ연합뉴스


    한편, 정부가 8·2대책을 통해 초과이익환수제 부활을 못 받으면서 시공사 선정 절차가 가시권에 있는 단지들을 중심으로 사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연내 강남권에서 시공사 선정을 앞둔 단지는 10여곳으로, 이 중 예상공사비가 역대 최대 규모(2조6411억원)인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는 이르면 9일 관할인 서초구청에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도 관리처분인가 신청을 조만간 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 조합은 이번에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하면 8·2대책에 따라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조합은 거래상 제약이 생기더라도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8·2대책으로 이주비 대출의 LTV(주택담보인정비율) 상한이 40%로 제한되면서 이주에 차질이 생길 것을 걱정하는 주민이 많다"면서도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해 사업 수익성 저하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5000여가구가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는 여의도 일대 아파트와 이미 조합설립을 마치는 등 상당 부분 진척된 송파구 일대 단지들도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절차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