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 마인드가 적폐… 중장기 목표로 교육개혁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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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인 제이(J)노믹스의 한 축을 이루는 게 혁신성장이다.
△일자리 중심 경제 △소득 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 경제가 J노믹스의 경제 성장 네 바퀴다.
혁신성장은 일자리를 늘려 소득 주도로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동력원이라고 할 수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 대통령의 혁신성장론에 대해 "소득 주도 성장도 경제 난제를 푸는 중요한 채널이지만, 궁극적인 접근은 혁신성장"이라고 밝혔다.
혁신성장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면 정부가 마중물로 삼겠다는 81만개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도 혈세만 들인 생색내기용 정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 대응·중소기업 육성… 혁신 친화적 창업국가
J노믹스 혁신성장의 키워드는 중소기업과 제4차 산업혁명, 개방 확대다. 일자리 창출력이 높은 중소기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4차 산업혁명 대응, 개방 확대로 생산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기존 성장론이 대기업·수출을 주요 성장동력으로 삼았다면 혁신성장은 창업-중소·벤처기업을 동력원으로 한다는 게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했다. 정책을 일원화하고 지원사업의 유사·중복을 조정해 중소기업을 세계 강소기업으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초 골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 등 선도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려 자율자동차·스마트공장·드론산업 등으로 활용도를 높여나간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는 중소기업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자 네트워크형 정책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컨소시엄·공급체인 등 기업 네트워크에 대출·투자·경영 컨설팅을 종합 지원해 중소·중견기업의 협업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협업을 가로막는 제도도 개선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공동행위를 공정거래법상 담합 금지 규정에서 배제하는 식이다.
약속어음의 단계적 폐지, 별도 연구·개발(R&D) 금융 지원 신설 또는 확대 등으로 자금 조달 여건을 개선한다. 중소·벤처기업의 해외 직접 판매 촉진과 온라인 수출 통합 플랫폼 구축 등으로 세계 강소기업을 육성한다.
인력난 해결을 위해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우수 학생을 기초 R&D 전문인력 등으로 양성하는 영마이스터 육성 과정을 신설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선 지난 11일 공식출범한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통해 지능정보기술 비율을 선진국 대비 75%에서 9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수요자 중심의 R&D 혁신, 청년 과학자와 기초연구 지원 등을 확대해 과학기술 생태계를 구축한다.
5G, IoT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소프트웨어 공공시장 혁신 등 4차 산업혁명 선도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제조-정보통신기술(ICT)-서비스 융합을 통해 2022년까지 스마트공장 2만개를 보급하는 등 미래형 신산업 육성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에서 이런 정책 방향을 묶어 '혁신 친화적 창업국가'를 언급했다.
그는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지능정보사회로 급속히 발전해가고, 지능 정보화의 진전이 산업 지도와 우리 삶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며 "신기술·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창업할 수 있어야 하고, 공정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혁신 친화적 창업국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기업투자촉진법을 제정해 2022년까지 신규 벤처펀드 5조원을 조성하고, 벤처투자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 등 제도를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창업기업의 부담금 면제범위를 확대하고 공공기관의 창업기업제품 의무구매제도 확대, 벤처기업 확인제도 개편 등도 추진한다.
신산업 분야는 일정 기간 규제 없이 사업할 수 있는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한다. 규제샌드박스는 법으로 금지할 것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다.
중소·벤처기업 기 살리기 기조는 지난 18일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과도 일맥상통한다. 정부는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혁신형 창업을 촉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수·연구원 등의 혁신형 기술창업을 활성화하고, 내년 상반기부터 정책금융 영역에서 연대보증을 없애 사업실패 부담을 줄여준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나 불공정거래 행위를 막고 중소기업 전용 연구·개발(R&D)을 2배 확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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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혁신 주체돼야… 네거티브 규제 방식 필요
그러나 J노믹스 혁신성장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초기부터 불안한 모습들이 연출된다.
정부는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인선에서부터 내정자가 낙마하는 사태에 맞닥뜨렸다.
최근 진행된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혁신성장에 대해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은 지난 19일 열린 기획재정부 국감에서 "소득주도 성장은 이론도 실체도 없다"며 "다행스럽게 혁신성장이 정부 과제로 채택됐지만, 역시 실체가 분명치 않다"고 지적했다.
바른정당 정병국 의원은 "혁신성장은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란 이름으로 발표한 4차 산업혁명 대응대책과 거의 비슷하다"며 "순서와 용어만 조금 바꾼 것 외에는 차이가 없다"고 성토했다.
전문가들도 혁신성장이 기존 정부가 내세운 성장론과 다를 게 없다고 평가한다.
관건은 과감한 규제 완화에 달렸고, 이를 위해 변화해야 하는 건 민간영역이 아니라 관이라고 말한다.
안기돈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없던 게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어서 혁신성장의 내용이 기존 정부와 차이 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혁신 주체에 대한 인식과 의지는 문재인 정부가 더 좋다"고 부연했다.
그동안 의견은 있었지만, 실천이 뒤따르지 않았던 중소벤처기업부 승격이나 민간 출신 4차 산업혁명위원장 선임, 산업현장 중시 기조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혁신성장의 과제로 공무원과 교육 개혁, 규제 혁파를 꼽았다.
안 교수는 "혁신 주체는 기업이다. 벤처기업의 혁신역량은 대기업보다 20배 이상 높다고 본다"며 "문제는 대통령과 장관의 인식이 바뀌어도 정작 정책을 추진하는 공무원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성장의 경험을 보면 관이 주도한 게 많아서 여전히 관이 이끌어야 한다는 (공무원) 마인드가 강하다"며 "애플·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세상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기업들을 보면 기업이 혁신의 주체였지 정부나 대학, 공공연구소가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안 교수는 "9급 공무원 채용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이지만, (우리나라) 정책의 맹점은 (공무원이) 현장을 모르고 현장의 고민을 정책에 반영하는 정책 프로세스도 없다는 것"이라며 "현장 체험자 채용 비율을 높이는 등 공무원 채용방식에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창업을 준비하다 보면 현장에서 느끼는 정책 수뇌부와 일선 현장 공무원의 괴리감이 크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에서는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그 속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며 "제품을 양산하려면 시험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규제에 막혀 허송세월할 때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시장에 나온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규제샌드박스 도입을 언급했지만, 네거티브 규제방식 얘기가 나온 건 오래전이므로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규제프리존 등이 제시됐었다"며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를 목표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안 교수는 끝으로 4차 산업혁명을 지속해서 이끌려면 교육 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앞으로는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로, 꿈꾸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대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시험 보는 거다. 팀 과제를 내면 싫어한다. 세상을 바꾼 시가총액 상위권의 디지털 혁신기업들이 왜 하필 미국에서 나오는지 그들의 교육 체계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대학교육이 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의 상아탑은 전공 교과목 잘 따라올, 성적 좋은 학생을 뽑는다"며 "어떤 인재를 양성해 사회에 내보낼 것인지는 등한시한다. 교수 채용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구체적으로 산학협력 중점교수 채용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장기적 안목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 창의력 인재를 양성하려면 산학협력을 강화하고 산업현장에서 젊은 피를 수혈해 커리큘럼을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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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장의 과제로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과 대중영합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는 것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규제 개혁하고 벤처 육성한다고 구호를 외치면서 반대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시장 안착에 필요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만 해도 어정쩡한 상태이고, 공정거래위원회·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 등도 시장에 직접 개입하면서 기업을 옥죄고 있다"며 "노동시장과 기업 지배구조 관련 규제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시장의 자율적인 혁신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혁신은 민간이 주도하는 것이다. J노믹스는 외국과 달리 시장의 경제 자유도를 줄이는 쪽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며 "관치나 힘의 우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가지고 혁신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국회의 대중영합주의도 경계대상으로 꼽았다. 그는 "과거 정부도 규제를 암 덩어리에 비유하며 규제 완화와 벤처 육성 등을 추진했지만, 잘되지 않았다"며 "대통령 의지보다 이익집단의 로비 등으로 국회가 인기영합주의로 흐르면서 발목을 잡아 왔다. (과거 정부에서) 현 집권당의 반대로 규제 완화에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혁신성장의 당위성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다만 J노믹스의 이념적 편향성 때문에 신산업을 일으킬 혁신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