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통신 기반 자율운항·원격조정 기능 갖춰 해경, 불법조업 감시 업무 중 선체 훼손·망실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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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자동차처럼 스스로 경로를 인식하고 장애물을 피하는 자율운항 기능의 첨단 무인선박이 국내 기술로 개발됐다.
일각에선 일촉즉발의 돌발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해상에서 고가의 장비를 보호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선박 훼손이나 망실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해양수산부는 경남 거제시 장목항에서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자율운항 무인선 '아라곤Ⅱ호'의 시연회를 했다.
이날 장목항을 출발한 아라곤Ⅱ호는 무선통신 기술에 기반을 둔 자율운항 시스템과 원격 조정을 통해 설정된 경로를 이동하다 정면과 좌·우현 방향에서 접근하는 선박을 자동으로 피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무인선에 달린 레이더와 카메라 등이 접근하는 선박을 인식했다.
아라곤Ⅱ호는 이후 불법조업 선박으로 의심되는 어선에 다가가 경고·안내 방송을 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육상 관제소에 전송했다.
해수부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는 2011년부터 총사업비 270억원을 들여 '다목적 지능형 무인선 국산화 개발사업'을 벌여왔다. ㈜세이프텍리서치 등 민간기업 11곳과 연구·개발을 진행했다.
아라곤Ⅱ호는 2014년 말 개발한 아라곤Ⅰ호에 이은 두 번째 시제품이다. 스스로 경로를 인식하고 장애물을 피해 운항하는 자율운항 기능과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육상에서 경로를 조정하는 원격조정 기능을 갖췄다.
무게 3톤, 최고 속도 43노트로, 최고 파고 2.5m에서도 운항할 수 있다. 아라곤Ⅰ호보다 0.4톤 가볍고 속도는 10노트쯤 빨라졌다.
아라곤Ⅱ호는 조업감시 업무를 비롯해 해양 관측·조사, 오염방제, 수색구조 등 다양에 분야에서 활용될 예정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사람이 탑승해 업무를 보기 어려운 지역에서도 활동이 가능하다"며 "해양조사 업무에 무인선을 투입하면 선박 운항, 유지·관리에 필요한 인력을 줄일 수 있어 운영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수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3단계 무인선 개발과 성능 검증을 마치고 해양 감시·조사 업무 등에 실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무인선 선형 설계, 유체성능 추정기술 등 핵심 기술은 민간기업에 이전할 방침이다.
해수부는 무인선 기술을 바탕으로 방위사업청과 함께 군용으로도 쓸 수 있는 무인수상정도 개발하고 있다.
조승환 해양정책실장은 "소형 무인선에서 한발 더 나아간 대형 자율운항선박 개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연구를 추진할 예정"이라며 "세계 각국의 개발 경쟁이 치열한 무인 화물선 분야에서도 우리나라의 입지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아라곤Ⅱ호가 불법조업 감시 업무를 수행하는 도중 예기치 않게 선박이 훼손되거나 망실될 가능성이 있지만, 뾰족한 방지책이 없다고 지적한다.
최악에는 레이더 등 고가의 첨단장비를 갖춘 무인선이 무단으로 예인되거나 잃어버릴 위험도 있으나 현재로선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관계자는 이런 우려에 대해 "해양경찰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점을 지적했었다"며 "현재로선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경은 지난달 불법조업 감시 업무와 관련해 단속현장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험악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불법조업 어선이 무리를 지어 무인선을 에워싸거나 선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불법조업 현장을 촬영한 증거를 없애기 위해 무리수를 던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아라곤Ⅱ호에 비싼 첨단장비가 장착된 만큼 아예 무인선을 예인해 달아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설명으로는 아라곤Ⅱ호는 주·보조·위성통신으로 무선통신이 3중화돼 있어 통신 두절로 말미암은 사고 위험은 없다.
하지만 고화질 카메라 영상을 전송하는 주통신 범위가 20㎞여서 이 범위를 벗어난 지역으로 예인돼 첨단장비가 망실되는 경우 수습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