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건설사, 50대 CEO 득세… "능동적 대처, 혁신 기대감"10명 중 7명 재무통… "시장 불안감 방증, 구조조정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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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로부터) 이영호 삼성물산 사장, 박동욱 현대건설 사장, 김대철 HDC현대산업개발 사장. ⓒ각 사
대형건설사 CEO들이 젊어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대처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능동적이고 혁신적인 젊은 리더십을 기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현장경험이 많은 이들보다 기획·재무 등 숫자에 강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국내 주택경기는 물론 공공공사 발주현장이나 해외 발주시장 여건이 불확실한 만큼 '보릿고개'를 대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CEO들의 평균 나이는 59세로, 지난해 62세보다 3살 젊어졌다.
삼성물산은 최근 단행한 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건설부문 사장에 이영호 부사장을 임명했다. 이 신임사장은 1959년생으로, 최치훈 전 사장(1957년생)보다 2살 어리다.
현대건설은 더 젊어졌다. 정수현 전 사장이 1952년생인 반면, 박동욱 신임사장은 1962년생으로 10살이나 더 어리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말 김대철 사장을 새로 앉혔다. 김 사장은 1958년생으로, 김재식 전 사장(1951년생)에 비해 7살 어리다.
이밖에 조기행 SK건설 부회장·송문선 대우건설 사장(1959년생), 강영국 대림산업 사장(1960년생), 임병용 GS건설 사장(1962년생) 등도 50대다.
이 같은 '젊은 CEO'의 등장은 재계에 부는 세대교체 바람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재계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젊은 리더십을 통해 기업 체질을 개선하고, 글로벌 기업들의 합종연횡으로 경영환경이 치열해지면서 이를 넘고 성과를 이끌어내려는 의지로 50대 CEO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건설업 특성상 60대가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혁신을 통한 체질 개선으로 녹록치 않은 경영환경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전통 산업인 건설업계도 예전과 달리 변수가 워낙 많아 리스크에 빨리 대응할 수 있는 CEO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 만큼 세대교체 등에 크게 연연하는 것은 구시대적 자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상대적으로 젊다는 점 외에도 '재무통'이라는 교집합이 있다.
과거 건설업계에서는 건축·토목·해외사업 등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사가 주로 회사를 이끌었다. 수주관리가 우선시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현장형보다 관리형 CEO들이 약진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건설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수장 선임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대책·입주물량 공급과잉 등으로 국내 주택시장 여건은 악화되고 있고, 공공 발주 여건이나 해외 발주시장 역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의 재무운용이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재무통' 건설사 CEO선임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영호 사장은 삼성물산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와 건설부문 경영지원실장을 겸했다. 그는 삼성물산의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키우고 성장기반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최 전 사장과 함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을 주도한 경영·재무전문가로 알려졌다.
박동욱 사장은 2011년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당시 인수실사팀장으로 현대건설에 복귀해 6년간 CFO로 근무했다. 회사 안팎에서는 CFO출신인 박 사장이 해외사업 수익성 제고와 재무 안정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보고 있다.
김대철 사장 역시 현대자동차 국제금융팀장·현대산업개발 기획실장·HDC자산운용 대표이사 등 기획과 재무 분야에서 주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이들의 가세로 10대 건설사 CEO 가운데 재무전문가 출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이들 신임사장 외에도 현재 송문선 사장, 임병용 사장, 하석주 롯데건설 사장, 조기행 부회장 등이 재무전문가로 꼽힌다. 10개사 중 6곳의 CEO가 재무전문가 출신인 셈이다.
지난해 8월부터 대우건설 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송문선 사장은 전형적인 '산은맨'으로 역시 재무통이다. KDB산업은행 투자금융부문장 부행장·기업금융 부문장 부행장·경영관리부문장 부행장 등을 역임했다.
임병용 사장은 업계 대표적인 재무전문가다. 법조인 출신이지만 둥지를 재계로 옮겨 LG그룹 구조조정본부·GS건설 CFO를 역임했다. 2013년 6월 사상 초유의 '어닝쇼크'로 오너가인 허명수 사장이 퇴진하면서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임 사장 취임 이후 GS건설은 14개 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는 등 안정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다.
하석주 사장 역시 단국대 회계학과와 고려대 회계학 석사학위를 받는 등 재무전문가로 통한다. 지난해부터 대표직을 맡은 하 사장은 앞서 그룹 경영개선실을 거쳐 롯데건설의 주택사업본부장과 경영지원본부장을 지냈다. 지난해에는 주택사업을 바탕으로 사상 첫 매출 5조원을 달성한 바 있다.
재무전문가로 꼽히는 조기행 부회장은 SK텔레콤 사장을 거쳐 2012년 SK건설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장을 맡은 지 4년 만에 주택사업을 중심으로 SK건설을 흑자전환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처럼 재무전문가들이 경영전면에 나서게 되면서 건설기업들은 공격적 수주를 통한 외형확대 보다는 리스크관리·경영 효율성 개선 등 내실 다지기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비용을 절감해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인력 및 사업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건축·토목·해외 플랜트를 경험하지 않은 사장이 거의 없었다. 보수적인 업계 관행을 감안하면 재무통 출신의 대두는 건설경기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할 것"이라며 "예전과 달리 변수가 워낙 많이 생기고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이어 "재무에 정통하고, 리스크 관리 능력이 있는 이들이 전면에 나서서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두고 긴축경영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각 조직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 셈"이라고 덧붙였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설업은 전통적으로 수주산업이지만, 이제는 시공은 기본이고 기획이 중요해지면서 자금을 끌어오지 못하면 사업을 할 수 없는 구조가 돼 금융과의 결합을 통해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해졌다"며 "정부 금융지원 관련 공사나 민관협력 방식인 PPP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금융이나 재무 경험이 있는 대표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7년간 현대건설을 이끌면서 업계 최장수 CEO로 알려진 정수현 전 현대건설 사장은 현대차그룹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상근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고,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이끌어낸 김재식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도 이달부터 상근 고문으로 물러나게 됐다.
세대교체 바람을 피하지 못한 최치훈 전 삼성물산 사장은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하지만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