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기간 증가 따른 공사비 증액 부담에… 이미지 타격 우려"하도급사 비용 부담 도미노… '품질-안전' 직격탄"
  • ▲ 세종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인 건설 노동자. ⓒ연합뉴스
    ▲ 세종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인 건설 노동자. ⓒ연합뉴스


    "주 52시간이 적용되면 공사기간을 못 맞추게 되고, 공사기간이 늘어나면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추가수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특히나 건설업 특성상 프로젝트 단위로 이뤄지는 공사가 많다보니 대형건설사가 소규모 업체들과 함께 일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 현장에서 근로시간이 통일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

    근로시간 단축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건설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수익성 악화'로 당장 해외에 현장을 둔 건설사들은 물론 중소·지역건설사의 경우 생존 문제까지 걸려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대형·중견건설사는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여야 한다. 이들 건설사가 운영하는 국내 및 해외 현장 모두가 적용 대상이다.

    업계에서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안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개선방안을 요구하는 근본적 이유는 '공사비'와 '공사기간'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이행하면서 사전에 약속된 공사기간을 맞추려면 시공사 입장에서는 추가 인력과 장비 투입이 불가피하다. 인건비 및 임차료 등 각종 비용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막대한 공사비 상승은 오롯이 시공사에 전가될 수밖에 없는 만큼 건설사들의 시름이 깊다.

    근로시간이 대체적으로 비슷한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문제가 적겠지만,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경쟁해야 하는 해외시장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경쟁력을 잃는 빌미가 될 것이라는 게 건설사들의 우려다. 한국에서 파견된 근로자와 현지 근로자가 함께 일을 하지만, 서로 다른 근로시간 기준으로 출퇴근 시간이 맞지 않을 수 있다.

    해외건설협회는 정부에 꾸준히 '해외현장을 근로시간 단축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건협 관계자는 "해외시장에서 보는 대한민국 건설의 최대 장점은 '공기 준수'인데, 시범 시행도 하지 않고 파급효과도 검증하지 않은 채 근로시간을 대폭 축소하면 공기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며 "근로시간 단축으로 노무비까지 상승하면 해외 무대에서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해외 플랜트 등을 두고 외국계 기업과 경쟁하는데, 지금도 원가 경쟁이 힘든 상황"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인건비 등 간접비가 늘어나면 경쟁이 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법적으로 근로시간 52시간을 강제하면 1인당 주당 근무시간이 15~18시간가량 줄어든다. 해외 현장의 생명인 공사기간을 지키려면 현재보다 근무인력을 최소 50% 이상 늘려야 한다. 건설사들은 이에 따른 추가 투입 인건비를 최소 30%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투입 인원이 많은 일부 현장의 경우 증가폭이 최대 80%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 조사 결과 근로시간 단축 적용에 따라 기업이 현재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연간 12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대형건설 C사 관계자는 "1년 안에 공사를 마치기로 했는데,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 바뀌었다고 해외 발주처에 공기를 연장시켜 달라고 할 수 없다"며 "근로시간 축소에 맞춰 몇 명 더 투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근로자들 역시 근로시간 단축이 못마땅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기술자는 "국내보다 많게는 두 배 가까이 더 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생을 마다않고 해외현장을 가는데, 근로시간이 줄면 자연히 수입도 감소해 해외현장의 이점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 현장이 있는 대형사뿐만 아니라 하도급사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해외 현장만큼이나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연구원 보고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중소기업 지원방안'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연간 12조3000억원의 노동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비용부담은 전체의 70%인 8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도급업체의 경우 이미 계약이 끝난 사업에 대해 공사비 증가분을 추가할 수도 없고, 이후 최저입찰제로 이뤄지는 계약에서 입찰금액을 마음대로 올리기도 힘들다.

    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중견사들은 대형사보다 낮은 수익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는데, 인건비를 현재보다 50% 이상 투입하게 되면 회사 수익은 사실상 '제로(0)' 이하가 된다"고 말했다.

    중견건설 D사 관계자는 "당장 피해를 보는 곳은 현장 직원들이 많은 하청업체"라며 "최저입찰제로 대형사와 계약을 맺기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늘어나는 비용을 향후 입찰금액에 집어넣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건설협회는 최근 국회와 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 등 유관기관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협회는 △적정 공기·공사비 미확보 △진행 중인 공사 적용 배제 △업체 규모별 시행시기 상이 △해외건설 공사의 문제점 등을 지목했다.

    협회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시대적 과제 해결에는 공감하지만, 현장 단위로 적용되는 건설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공사 품질 저하는 물론, 안전사고 발생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을 고려하면 시공사의 공기를 보장해줄 수 있는 추가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며 "특히 촉박한 공기를 맞추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시행하는 돌관공사는 근로자의 안전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