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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그냥 놔두고 왜 합법만 못살게 구냐. 합법을 엄격히 규제 할수록 풍선효과로 오히려 불법 시장만 커진다." 카지노와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등을 영위하는 국내 합법사행산업 기업들이 정부의 '매출총량제' 준수 압박에 반대하며 내놓는 논리다. '매출총량제'는 합법 사행산업 기업들이 한 해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다. 지난 2009년 마련됐으며,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설정·관리한다.
합법 사행산업 기업들이 펴는 논리의 기저에는 '사감위가 불법도박 시장의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합법 시장은 기업의 매출 등을 기반으로 시장 규모를 추정할 수 있지만, 불법 시장은 공식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감위에 따르면 합법 사행사업 시장 규모는 20조5000억으로 거의 명확하다. 하지만 불법 도박은 최소 83조8000억원에서 최대 169조7000억원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추정치 조차도 최소 수치와 최대 수치의 차이가 80조원 이상 나는 상황이어서 신뢰도가 의심받고 있다.
사감위가 11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서울대학교와 공동으로 '불법도박 규모산정 표준모델 개발 세미나'를 개최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사기관별로 산출한 불법도박 시장 규모가 달라 통계 자료에 대한 신뢰성을 저하시키는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불법도박 규모를 산정하는 표준모델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불법도박 단속 방안도 수립할 수 있다는 게 사감위의 판단이다.
사감위 관계자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불법 사행산업 시장 규모를 합리적으로 산출하고 제대로 된 단속 방안을 수립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에는 동양미래대 최성락 교수와 충북대 경제학과 이연호 교수가 주제발표자로 나섰다.
최성락 교수는 불법 도박 시장 규모 추정 모델로 법원 판례에 적시된 매출과 수익 자료 등을 활용할 것을 주장했다. 판결문은 모든 불법적인 사행산업 전체에 대해 동일한 기준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사행산업간 방법론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최 교수는 "전체 불법시장 중 일정 부분이 경찰과 검찰에 신고되고, 신고된 사건 중 증거가 확실하게 채집된 사건에 한해 법원에서 처벌을 받게 된다. 즉 전체 불법시장은 법원에서 처벌받은 사건과 신고됐지만 법원에서 처벌받지 않은 사건, 신고되지 않은 사건으로 분류될 수 있다"며 "신고돼 처벌된 시장 규모를 신고율과 처벌률을 곱한 값으로 나누면 총 불법시장 규모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방법으로 총 불법시장 규모를 추정해 보면, 신고율 15%를 가정했을 때 169조7000억원, 신고율 20%는 127조3000억원, 25%는 101조8000억원으로 산정됐다.
최 교수는 다만 "도박 시장 규모는 일반적 시장과 산정 방법이 달라 불법사행산업 규모를 일반적 시장 규모에 대응해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존재한다"며 "불법사행산업 규모를 일반 시장 규모 산정 방식과 동일하게 추정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합의가 요구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총합 방식으로 산정할 때 불법사행산업 규모는 현재보다 크게 감소하지만 실제 다른 경제 부문과 비교해 경제적 비중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총합 방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연호 교수는 도박 참여자 기준의 추정방식을 제안했다. 설문조사 등을 통해 도박 실태를 파악하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충분한 불법도박 유형별 표본 수를 확보해 국민 전체에 대한 대표성과 추정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다"며 "면접자 수 확대와 객관적 자료의 활용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추정의 주관적 판단을 축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