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공감하지만… '게임업계, 빠른 트랜드 변화 특수성 고려 없어'R&D-기획-TF팀' 등 근무자 '장기간 집중 근무' 불가능… "업무차질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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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는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한달 앞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겪게 될 삶과 근무환경의 변화를 미리 살펴본다.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 등 부정적 영향도 예상되고 있지만, 워라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기대반 우려반이 공존하고 있는 곳도 있다. 주52시간 시행이 가져올 각 분야별 변화를 기획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국내 대형 게임사 스튜디오에서 신규 게임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A씨는 최근 업무에 대한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는 중이다. 언론과 수많은 유저들 사이에서 올해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는 신규 콘솔 게임의 출시 일정이 자칫 어긋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올해를 플랫폼 다각화의 원년으로 삼고 있는 만큼, 이번 신작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이미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해 신규 수익원을 창출하겠다는 목표까지 대대적으로 발표한 상태지만, 당장 6개월 후 결과물을 내보여야 하는 A씨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하다.

    A씨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겉으로 내색도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워라밸' 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은 A씨 역시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바다.

    무엇보다 팀 내 업무 분위기도 이전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 게임사 입사 후 자연스럽게 포기해야만 했던 개인 여가활동도 어느샌가 차츰 자리를 잡으면서 직원들간 커뮤니케이션도 강화됐다.

    다만 게임업계를 포함한 일부 업계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은 너무나 아쉽다. 하루에도 수십에서 수백개의 경쟁작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게임업계 현실이다. 

    수년간 수많은 개발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내놓은 대작들도 어느새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으며, 개발 완료 단계에서 프로젝트가 와해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만큼 시장의 트렌드가 어느 업계보다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기획 단계부터 개발, 운영까지 한 치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 곳이 게임사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면서 유명 글로벌 개발사들과의 경쟁을 눈 앞에 둔 상황이지만, 근로시간 단축으로 경쟁에 나서기도 전 우려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신작 출시 및 대규모 업데이트를 앞둔 시점에선 일부 '크런치모드(장기간 집중 근무 형태)'가 불가피하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입밖에 꺼내는 순간 일명 '꼰대'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동료 PD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대해서도 개발진들과 상의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이 몰리는 시기에는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일이 없는 시기에는 단축해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기준에 맞춘다는 취지지만, 법에서 정하는 단위 기간은 최대 3개월뿐이다. 게임 개발 특성상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인원들이 개발까지 도맡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행 3개월의 기간으로는 진행에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몇몇 직원들은 타 부서와의 형평성까지 거론하며 일률적인 근로 가이드라인을 요구하는 등 아직까지도 모두가 만족해하는 협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과 업무의 균형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이로 인해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이 주 52시간 근무제의 가장 큰 목적이지만, 정작 경쟁력 약화에 대한 위기감만 더해지는 모습이다.

    오후 5시, 절반 가량의 팀원이 자리를 비웠지만 A씨는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신작 출시 일정에 맞춰 날마다 '엑스' 표시를 해둔 달력은 어느새 십수 장을 넘어섰다. 지난 7월 이전과 이후의 모습을 자꾸만 비교하게 되는 모습에 A씨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