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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숙원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 사업이 다시 한 번 발목이 잡혔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에 이어 세 번째다. 이에 따라 현실적으로 연내 착공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도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됐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열린 '2018년도 제2차 수도권정비위원회'에서 서울시가 제출한 현대차그룹 GBC 건립 계획안이 보류됐다. 민관합동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국토교통부와 국방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정부 중앙부처와 서울시, 경기도 및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위원들이 참여한다.
현대차그룹은 시와 함께 지난 3월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 보류의 주요 근거인 GBC 건축에 따른 인구유입 유발효과 재분석 및 저감대책, GBC로 옮기게 될 기존 계열사 시설들(이전적지) 관리방안 등을 보완해 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관련 대책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계열사들이 신사옥에 한 데 모이는 데 따른 인구 유발 효과,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더 세밀하게 분석하고 대응 및 사후관리 방안 등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보류 이유다.
위원회 측은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삼성동 신사옥으로 모두 모이게 되는 만큼 인구 유발 효과를 재분석하고 인구 유발을 저감할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며 "애초 쓰던 사옥의 관리방안도 구체적 내용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GBC가 들어서면 현대차 15개 계열사 등 상주인구만 1만여명이 늘어날 것으로 업계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독일 폭스바겐 본사 '아우토슈타트'를 뛰어넘는 복합단지를 조성하려는 계획을 갖고 2014년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옛 부지를 사들였다.
이 부지에는 105층 타워 1개동과 35층 숙박·업무시설 1개동, 6~9층 전시·컨벤션·공연장용 건물 3개동 등 총 5개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국내 최고층인 123층 롯데월드타워보다 층수는 낮지만 높이는 569m로, 14m 더 높다.
현대차그룹은 GBC를 설립해 현대차와 기아차뿐만 아니라 그룹의 15개 계열사를 한 데 모은 통합사옥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이다. 하지만 건립안이 또 다시 보류되면서 연내 착공에 들어가 2021년에 완공하겠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예정이다.
당초 GBC 건립계획은 서울시의 건축심의와 교통영향평가·안전영향평가·환경영향평가 심의를 모두 통과한 터라 이번 수도권정비위만 통과한다면 올 하반기 착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앞서 개발부지 인근에 자리한 봉은사와 일조권 침해 논란으로 지연되고, 105층 건축물이 전투 비행과 전파(레이더 차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국방부 측 지적으로 연일 제동에 걸렸다. 지난해 2월 말 첫 환경평가심의 이후 지하수·일조 장애 문제로 계속해서 고배를 마시다가 여섯 차례 만인 지난 4월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게 됐다.
하지만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최종 문턱인 수도권정비위원회를 넘지 못해 사업의 첫 삽 조차 뜨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위원회가 분기마다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4분기에 심의를 통과하더라고 물리적으로 연내 착공은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완공 시점을 2021~2022년으로 예상했으나 인허가 과정이 예상보다 지연돼 완공 시점이 늦어지고 있다. 2014년부터 추진해온 사업으로, 애초 착공 예정시기였던 2017년 상반기 시점도 훌쩍 넘기고 있다. 착공지연에 대한 손실금액도 상당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GBC가 들어설 부지는 현대차그룹이 2014년 한국전력으로부터 10조5500억원에 낙찰 받았다. 땅값은 현대차 55%, 현대모비스 25% 기아차 20%의 비율로 분담했다. GBC 시공계약은 2016년 12월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과 2조5604억원에 체결했다. 두 건설사는 7대 3 비율로 시공 지분을 갖고 있다.
업계에서는 부지 매입에 들었던 10조원가량을 연간 5% 정도의 수익률만 봤어도 향후 1조5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봤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계획대로 착공되지 못한 지금까지 따져도 최소 5000억원이 넘는 손실금액을 봤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GBC 사업이 정부 제동에 걸려 지연되고 있는데, 더 지연된다면 금액적인 측면에서 막대한 손실은 당연한 것"이라며 "특히 시공사로 있는 현대건설과 현대ENG가 2조원 이상 먹거리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그룹 측이나 시공사 측에서는 금전적 리스크 해결을 위해 비용절감 전략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사업은 정몽구 회장이 애착을 갖고 추진해왔던 사업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2016년 기존 건물 해체 현장을 직접 찾아 "GBC는 현대차그룹 새로운 100년의 상징이자 초일류 기업 도약의 꿈을 실현하는 중심"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2조5000억원이 넘는 프로젝트를 고대하던 현대건설도 지붕만 바라보게 됐다. 현대건설을 6년 넘게 이끌었던 정수현 전 사장이 GBC 상임 고문직을 맡고 있다.
현대건설은 심의 통과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3~4년 간 먹거리 확보로 실적 개선을 이끌 수 있을 뿐더러 그룹 물량을 직접 받게 되는 것인 만큼 사업의 좌초 위기 없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 현대건설의 지분율을 고려하면 약 1조8000억원 규모의 공사인 셈이다.
실제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시공한 롯데건설의 경우 인테리어 공사, 추가 인테리어 등을 포함 총 2조7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린 바 있다.
정부의 전방위 부동산대책으로 재건축 사업 일감을 따내기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본 사업이 현대건설의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유지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김기룡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GBC 조성사업이 건축허가 심의 등을 거쳐 연내 착공된다면 현대건설의 매출 확대 기반이 마련돼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일자리 창출이나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국토부와 서울시가 유연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업비만 10조원이 넘는데다 현대차그룹의 사업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만큼 거시경제 등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GBC 건축으로 업무·상업·전시 등 복합시설이 들어서면 삼성동 일대에 활력이 더해질 수 있다"며 "특히 수도권에 달하는 GBC 사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위원회의 심의 보류 결정이 반복되면서 사업계획 자체 문제보다 최근 강남 등 투기와의 전쟁을 펼치고 있는 국토부가 승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정부의 보유세 개편안 발표 이후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급매물이 속속 소진되면서 거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싱가포르에서 여의도·용산 개발 청사진을 공개한 후에는 서울 요지의 집값이 반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