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영표 금리개편 한 달 만에 제동 … 내부 시뮬레이션도 잠정 중단5대 은행 신용대출 108.3조, 빚투·주담대 급증에 총량관리 비상“금리 낮추라더니 대출 줄여라” … 포용금융·가계부채 정책 충돌국책은행도 멈춘 실험 … 취약차주 지원보다 총량규제 우선 논란
  • ▲ 장민영 IBK기업은행장 ⓒ기업은행
    ▲ 장민영 IBK기업은행장 ⓒ기업은행
    장민영 IBK기업은행장이 야심차게 꺼내든 저신용자 금리체계 개편이 한 달 만에 멈춰 섰다. 포용금융 확대를 주문한 정부가 동시에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강화하면서 국책은행의 실험마저 접히는 정책 충돌이 현실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최근 내부적으로 추진해온 신용대출 금리 산출 방식 개편 검토를 잠정 중단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저신용 차주가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금융 구조를 비판한 직후 가장 적극적으로 화답했던 정책금융기관이지만, 가계대출 관리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면서 방향을 틀었다.

    장 행장은 지난달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신용등급과 금리의 관계가 타당한지 살펴보려 한다"며 "처음부터 저신용자라는 이유만으로 고금리를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신용등급에 따라 가산금리를 부과하는 현행 체계를 넘어 성실 상환 이력과 대출 규모 등을 반영하는 보다 정교한 금리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실제 기업은행은 개인신용평가(CB) 점수 기준 하위 50% 이하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대출 금액 구간별 금리 차등 적용이 가능한지 내부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실 상환 고객에게 추가 금리 혜택을 주거나 대출 규모별로 금리 부담을 달리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기업은행은 은행권에서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주요 시중은행들이 건전성과 연체율 부담을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보인 반면, 기업은행은 신용평가 체계 자체를 손볼 수 있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포용금융 확대의 선봉에 섰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가계대출 급증이었다. 올해 1분기 감소세를 보였던 은행권 대출은 2분기 들어 급반등했다. 주식시장 활황에 따른 '빚투' 수요와 수도권 주택 거래 회복이 겹치면서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이 동시에 증가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 18일 기준 108조 3000억원으로 4월 말보다 약 4조원 늘었다. 전체 가계대출도 5월 한 달 동안 9조 3000억원 증가하며 2024년 8월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금융당국이 비상관리에 나설 정도로 증가세가 가팔랐다.

    정부는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1.5%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주요 시중은행들의 경우 증가율 목표가 1% 안팎까지 낮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지난해 말 기준 정책대출 제외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644조 9342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증가 허용 규모는 약 6조 4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기업은행도 방향을 틀었다. 기업은행은 23일부터 신용대출 금리감면 한도를 축소하고, 30일부터는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금리감면 폭도 최대 0.5%포인트 줄이기로 했다. 취약차주의 금융비용 부담을 낮추기보다 대출 수요 관리에 무게를 둔 조치다.

    장 행장의 금리체계 개편 구상은 가계대출 관리 강화 국면에서 사실상 제동이 걸렸다. 저신용 차주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의 제도 개편이 신용대출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취임 이후 생산적 금융 300조원 공급과 포용금융 확대를 강조해온 기업은행으로서는 적지 않은 변화다. 취약차주 지원과 가계부채 관리라는 두 정책 목표가 현장에서 충돌하는 모습을 드러낸 것.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례가 현 정부 금융정책의 구조적 딜레마를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대통령실은 저신용자가 고금리를 부담하는 금융 구조 개혁과 포용금융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반면,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율을 1.5% 이내로 관리하기 위해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강하게 조이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취약차주 지원을 늘리라는 주문과 위험자산을 줄이라는 지시를 동시에 받고 있는 셈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총량 규제가 우선순위가 되면서 국책은행조차 관련 논의를 멈춘 것은 정책 간 충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며 "취약차주 지원과 가계대출 억제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추진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