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행정벌 vs EU-형사벌 중시 해수부, 과징금 도입 법률 개정 추진중흥진실업에 행정처분했다 재량권 남용 패소
  • ▲ 유럽연합(EU) 수산총국 대표단이 2014년6월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부산지원을 방문해 실사를 마친 뒤 건물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 유럽연합(EU) 수산총국 대표단이 2014년6월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부산지원을 방문해 실사를 마친 뒤 건물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이 한국을 예비 불법 어업(IUU, 불법(Illegal)·비보고(Unreported)·비규제(Unregulated))국으로 분류한 가운데 추가적인 제재 수단으로 행정벌(과징금)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 유럽연합(EU)의 예비 IUU 지정에 따라 사법 처벌 수위를 강화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미국과 EU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며 이중처벌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23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하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지난 20일(한국시각) 의회에 제출한 2019 '국제어업관리 개선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예비 IUU 국가로 분류했다. 2015년 2월 예비 IUU 국가 명단에서 빠진 지 4년6개월여 만이다.

    한국 원양선박인 홍진실업의 서던오션호와 홍진701호는 2017년 12월 어장이 폐쇄된 남극 수역에서 조업을 계속해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보존조치를 어겼다. 해수부가 수사를 의뢰한 결과 홍진701호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서던오션호는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초범이고 불법조업 기간이 짧아 위반 정도가 중하지 않다고 봤다.

    미국은 지난해 10월21일 열린 CCAMLR 연례회의에서 한국의 행정적 제재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한국이 2차례 법을 고쳐 징역·벌금·몰수 처분 규정을 마련했으나 실제 집행이 이뤄지지 못해 불법 어획물이 유통됐고, 불법 어업 한 선주가 결과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봤다는 견해다. 미국은 불법 어획물로 인한 부당이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벌 도입을 요구한다. 해수부는 과징금을 도입하기로 했다. 법률 개정안은 지난 4월 발의돼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다.
  • ▲ 해수부.ⓒ연합뉴스
    ▲ 해수부.ⓒ연합뉴스
    일각에서는 행정벌 도입이 이중처벌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은 2013년 EU의 예비 IUU 국가 지정과 관련해 형사 처벌 수위를 높였다. 500만원 이하였던 과태료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수산물 가액의 최대 5배와 5억~10억원 중 높은 금액의 벌금으로 강화했다. 개정안은 위반행위에 따라 처벌수준을 4단계로 나누고 매우 중대한 위반사항은 형사벌과 과징금을 함께 적용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불법 어업 관련 행정처분이 공권력 남용으로 이어진 경우가 없지 않다. 이번에 문제가 된 홍진실업은 2013~2014 어기 때 아르헨티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메로(이빨고기) 어획량 허위보고 의혹이 제기돼 과태료와 함께 해수부로부터 3년간 CCAMLR에 입어 추천 자체를 제한하는 행정처분을 받은 바 있다. 홍진실업은 처분이 과하다며 2015년 행정소송을 냈고 2017년 대법원판결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은 어획량 허위보고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고 절차적 하자도 있다며 홍진실업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불법행위보다 행정처분이 과도해 (해수부의) 재량권 남용에 해당한다면서 비례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형사벌과 행정벌을 함께 적용하는 사례가 많지도 않다. 해수부 관계자는 외국 사례에 대해 "대부분 (국가에서) 벌금과 과징금을 함께 부과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면서 "미국도 형사벌과 행정벌을 모두 하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해양캠페이너로 한국의 IUU 문제를 깊게 들여다봤던 한 NGO(비정부기구) 관계자는 "현재는 처벌 규정이 과거 예비 IUU 국가로 지정됐을 때와 비교해 많이 강화된 상태"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형사·행정벌을 모두 시행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이중처벌 논란이 불거진 배경에는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EU가 서로 다른 곳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해수부 설명으로는 미국은 벌금보다 행정벌을 더 강화하는 분위기다. EU는 불법 어업에 대한 억제력을 높이고자 벌금형을 강조한다. 한국은 미국과 EU 사이에 끼어 양쪽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