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맞이 8번째 서체 전시2030 네티즌 '입소문'
  • ▲ 배민 새 글씨체 '을지로체' ⓒ 뉴데일리
    ▲ 배민 새 글씨체 '을지로체' ⓒ 뉴데일리

    “꼭 편지할게요, 매일 볼 수 있지만. 혼자 있을 땐 언제나 그대 생각뿐이죠. 더 고운 글씨로 사랑을 만드는 길. 소리 없이 내 마음을 채우고 싶어요” (박정현, 편지할게요. 1999)


    글자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옛 가요 가사처럼 진심을 담기 위해 우리는 ‘더 고운 글씨’를 찾곤 한다. 좋은 서체는 텍스트에 흥미와 리듬감을 부여하고, 힘을 싣는 역할도 한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은 매년 한글날에 자체 폰트를 개발해 무료 배포하고 있다. 앞서 발표한 서체는 7종으로, 올해 여덟 번째 배포를 앞두고 있다.

    올해 서체는 젊은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일명 ‘힙(Hip)’한 을지로를 주제로 했다. ‘힙’은 고유한 개성과 최신 유행을 겸비했다는 뜻의 신조어다. 최근 을지로는 ‘힙지로’ 등으로 불리며 예술과 젊은이의 성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 ▲ 전시장이 위치한 을지로 철공소 골목 ⓒ 뉴데일리
    ▲ 전시장이 위치한 을지로 철공소 골목 ⓒ 뉴데일리

    지난 3일 을지로 3가에 있는 배달의민족 ‘을지로체’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 밖에 붙여진 굵직한 글씨에서부터 존재감이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서니 한나체, 도현체 등 앞선 글씨체의 개발 과정을 설명해둔 전시품을 만날 수 있었다.

    배달의민족은 서체로 브랜드 정체성을 전달한다. 네모반듯한 복고풍의 대표 폰트 한나체로 쓰인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광고 카피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유다. 옥외·TV 광고에서도 텍스트 위주의 소통을 지향한다.

  • ▲ 배달의민족 TV광고 스틸컷 ⓒ 배달의민족
    ▲ 배달의민족 TV광고 스틸컷 ⓒ 배달의민족

    한글날 프로젝트는 디자이너 출신 김봉진 대표가 직접 지휘한다. 김 대표는 여행 중 만난 손글씨 간판 사진을 찍어 모으고, 샘플을 직접 그리는 과정을 거쳐 새 서체를 만들었다.

    그동안은 한나체, 도현체 등 인물 이름을 붙여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에 집중하겠다는 철학을 가졌다. 전 직원 자녀 이름 중 무작위 제비뽑기 등 서체명 결정엔 배민스러운 B급 코드를 빼놓지 않았다. 

    ‘을지로’라는 지명이 붙은 올해 프로젝트는 예년과 다르다. 배민은 을지로체를 시작으로 ‘도시와 글자’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개인을 넘어 그들이 모인 도시색을 담은 글자를 내놓겠다는 프로젝트다. 사라져가는 옛 도시 문화를 보존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오는 9일 발표할 을지로체는 을지로 철공소에서 활동하던 무명의 간판 장인에서 영감을 얻었다. 197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 을지로 인근에서 손으로 글씨를 써주던 ‘간판 할아버지’ 글씨체가 모티프다.

  • ▲ 현장 명함이벤트 ⓒ 뉴데일리
    ▲ 현장 명함이벤트 ⓒ 뉴데일리

    새 폰트는 굵고 힘 있는 붓글씨체다. 총 2350자로 구성돼 있다. 프로젝트팀은 을지로 인근에서 직접 간판 사진을 찍어 모으고, 샘플 글자 200자를 손으로 그렸다. 이후 수 개월간 폰트 제작 업체와의 소통을 거쳐 ‘을지로체’를 탄생시켰다. 총 제작에 든 기간만 1년이다.

    현장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는 “서울 도심에 위치한 을지로에 옛날 폰트 문화가 남아있다는 점이 재미있었고, 회사가 지향하는 레트로 문화와 잘 어울리는 도시라고 생각했다”면서 “제작을 위해 사진 수집은 물론, 간판을 달고 있는 점주 인터뷰를 수십 곳에서 진행하며 배경지식도 쌓았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선 원하는 글자를 직접 써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도 만나볼 수 있다. 방문객 이름으로 제작해 주는 을지로체 명함 이벤트 등이 특히 인기가 좋았다.

    이메일을 남기면 폰트 배포일에 맞춰 다운로드를 안내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전시장은 사진이 잘 나온다는 일명 ‘인생샷 존’으로 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행사는 오는 13일까지 진행한다.

    회사 관계자는 “사라져가는 손글씨 간판을 폰트화한만큼 을지로만의 고유 분위기를 오랫동안 추억할 수 있었으면 한다”면서 “이번 을지로체를 시작으로 옛 도시 문화를 디자인 유산으로 재생산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