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시스템 속 수혈 못 해 사경 헤매는 암환자전국 곳곳에서 릴레이 응급실 폐쇄 등 불안감 형성코로나19 ‘부수적 피해’ 대응책 정비 필수
  • ▲ 코로나19 원인으로 수혈이 필요한 암환자들에게 제대로 혈액공급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연합뉴스
    ▲ 코로나19 원인으로 수혈이 필요한 암환자들에게 제대로 혈액공급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연합뉴스
    # 이름 : 박홍규, 환자코드 : 21227476. 혈액형 AB형 혈소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국민과 보건당국 그리고 의료기관은 코로나19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보니, 수혈이 필요한 암환자가 외로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 놓여 있습니다. 적십자, 혈액원, 대학병원 등 각계에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원론적인 대답뿐이었습니다. 각 기관들은 전국의 모든 의료기관에 혈액이 부족해 지정수혈을 간청하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꺼져가는 생명에 온정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죽음의 터널을 벗어나도록 도와주십시오. 

    위의 내용은 지난 26일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한 희귀 암환자의 실제 사례다. ‘골수이형성증후군’이라는 희귀 혈액암을 앓고 있는 이 환자는 약 2주간 지속적인 수혈이 없으면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현재 모 대학병원 무균실에서 입원 중이다. 

    최근 보건당국에 따르면 코로나19(우한 폐렴)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혈액 수급이 악화되면서 혈액 보유량이 이달 5일 2.9일분까지 떨어졌으며 20일 기준 혈액 보유분은 4.4일치 수준이다. 

    1회 헌혈 시 성인 남성은 400㎖, 여성과 청소년은 320㎖를 채취하기 때문에 평균 360㎖로 계산하면 작년 대비 부족한 혈액량은 5만378ℓ에 달한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혈액사용량이 연간 1000유닛 이상인 280여개 주요 혈액 사용 의료기관에 ‘혈액 수급 위기대응 체계’ 마련을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년과 달리 혈액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이는 안정적 의료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암 등 중증질환자, 희귀질환자, 응급환자 등은 수술 및 치료 과정에서 수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안정적 치료가 필요한 암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불안에 떨고 있다. 국가적 재난사태이므로 코로나19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백번이고 맞는 말이지만 그 이면에 중증환자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급하게 수혈이 필요한 박홍규씨의 경우는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매우 아쉽고 힘든 부분이다. 박씨뿐만 아니라 수많은 암환자들이 정상적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언급했다. 

  • ▲ 코로나19 확진자 방문으로 폐쇄된 응급실 현장.ⓒ연합뉴스
    ▲ 코로나19 확진자 방문으로 폐쇄된 응급실 현장.ⓒ연합뉴스
    ◆ 연속적인 대학병원 응급실 폐쇄, 돌아가는 환자들

    코로나19 확산 사태는 혈액 수급 문제를 시작으로 견고하던 국내 의료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생사를 오가는 시급한 상태의 환자들부터 악몽은 시작됐다. 

    실제로 확진자가 다녀간 병원은 즉각 폐쇄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신속한 방역체계를 유지하기 위함인데 이 과정에서 중중환자는 이리저리 이동을 해야 한다. 응급환자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서울대병원 응급실도 25일 오후 사망한 몽골환자 진료 건으로 일시 폐쇄조치를 진행했다가 풀었다. 

    경기남부권역응급의료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아주대병원,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인 고려대안암병원과 한양대병원, 서울 노원구 종합병원인 상계백병원 등 응급실 임시 폐쇄조치가 이어졌다, 확진자 5명이 나온 은평성모병원은 잠정폐쇄된 상태다. 

    특히 대구·경북지역에서는 경북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원 등 주요병원 응급실이 모두 한동안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소위 빅5 병원으로 분류되는 병원 중 서울대를 제외한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은 아직 응급실 폐쇄조치를 할만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예의 주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 부수적 피해로 인한 의료쳬계 붕괴 ‘두려움’ 

    코로나19는 그 자체가 아닌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로 국내 의료체계를 위협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원활하지 못한 혈액수급’, ‘대학병원급 이상의 응급실 폐쇄’ 등은 부수적 피해로 규정되고 있다. 

    결국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운영 가능한 범위(surge capacity)’를 넘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코로나19 확산시기부터 이 부분에 대해 의견을 냈던 김우주 교수(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는 “부수적 피해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아질 수 있다. 견고한 감염병 전달체계를 만들지 않으면 중증, 응급환자들이 피해를 보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금부터라도 감염병 대응을 위해 1차(거점의원), 2차(도립 및 시립병원), 3차(국립대병원) 등 전달체계 확립을 명확히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기반으로 건강보험 체계 내 의료전달체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방지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감염병병원운영 센터장 역시 확진자 치료 및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감염병 전달체계 확립을 필수 과제로 설정했다. 

    그는 “경증환자는 자가격리로 전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폐렴이 있고 중증인 환자는 2차 및 3차 의료기관, 심각한 환자는 인공호흡기 등 중환자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각각 배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