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투자·소비심리 위축 불가피국제 증시·유가 급락하며 요동… 환율도 상승, 수출 한국 '비상'미국, 급여세 면제 추진… 일본·호주·홍콩 현금 지원책 마련경제전문가 "이동 금지 등으로 현금살포 효과 제한적일 것"
  • ▲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11일(현지시각) 다우, 5.86% 폭락 마감.ⓒ연합뉴스
    ▲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11일(현지시각) 다우, 5.86% 폭락 마감.ⓒ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확산 사태를 '팬데믹'(세계적 범유행)으로 공식화했다. 지구촌은 WHO의 공식 선언으로 심리적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각국은 발 빠르게 경기부흥책 마련에 착수했다. 미국은 감세 카드, 일본과 홍콩 등은 현금 지원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다. 일부 경제전문가는 코로나19가 수요와 공급을 모두 위축시키고 있어 단순한 현금 살포성 지원책은 효과가 제한적일 거라는 의견이다. 당장 돈을 뿌리기보다 우선 방역에 치중해 감염 속도를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늦춘 뒤 감세 등을 통해 가처분소득을 높이는 게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WHO, 팬데믹 공식 선언… 늑장 대응 비난도

    WHO는 11일(현지 시각) 코로나19 사태를 팬데믹으로 선언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언론브리핑을 통해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특징 지어질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번 선언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으킨 첫 번째 팬데믹으로 기록됐다. WHO 팬데믹 선언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H1N1) 대유행 이후 11년 만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68년 홍콩 독감, 1918년 스페인 독감 등이 팬데믹으로 분류되는 사례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지구촌의 공격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모든 나라가 여전히 팬데믹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상태로, 통제될 수 있는 첫 번째 팬데믹"이라며 "이는 단순히 공중보건의 위기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위기로, 모든 부문과 개인이 싸움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HO는 한국과 중국 등의 대처를 모범사례로 꼽았다.

    일각에선 WHO가 이번 상황을 보수적으로 지켜보면서 늑장 대응에 나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WHO가 주저하는 사이 공중보건 비상사태 발동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31일 중국 우한에서 첫 코로나19가 발병한 이후 불과 70여일 만에 확진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12만명에 육박하고 피해국도 110개국을 훌쩍 넘고 있다.
  • ▲ WHO 팬데믹 선언.ⓒ연합뉴스
    ▲ WHO 팬데믹 선언.ⓒ연합뉴스
    ◇글로벌 증시 출렁… 환율·국제유가 불안

    세계 경제는 WHO의 팬데믹 공식화 여파에 몸살이 심해졌다. 가뜩이나 폭락세를 보였던 뉴욕증시는 낙폭이 더 커졌다. 11일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1464.94포인트(P)(5.68%) 내린 2만3553.22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1700P 가까이 밀렸다가 그나마 장 막판에 낙폭을 줄였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는 140.85P(4.89%) 내린 2741.38,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390.20P(4.70%) 하락한 7952.05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다우지수는 지난 9일 폭락했다가 10일 바로 급반등했지만, 하루 만에 다시 폭락세로 돌아섰다. 미국 언론은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11년간 이어진 초장기 강세장이 종료됐다고 평가했다.

    유럽 증시는 그나마 WHO의 팬데믹 선언 이전에 장이 마감돼 도미노 하락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프랑스 CAC40지수는 전날보다 0.56% 내린 4610.25로 장을 마감했다. 영국 FTSE100지수는 1.40% 하락한 5876.52를 보였다. 독일 DAX30지수도 0.35% 내린 1만438.68로 장을 끝냈다. 범유럽 지수인 유로스톡스50도 2905.56으로 0.15% 하락했다.

    코스피도 출렁였다. 코스피는 12일 다시 한번 1%대 급락세로 출발했다. 장중 1890선도 무너졌다. 투자심리가 얼어붙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개인과 외국인이 순도매에 나섰다. 외국인은 이날까지 6거래일 연속으로 순매도했다.

    원/달러 환율도 상승세를 보였다. 이날 오전 9시6분 현재 전날 종가보다 2.6원 오른 달러당 1195.6원에 거래되고 있다. 금융전문가는 WHO의 팬데믹 선언에 따른 위험회피(리스크 오프)와 위안화를 필두로 한 아시아 통화 약세가 맞물려 환율이 상승 마감할 거라고 예상했다.

    국제유가도 불안함을 나타냈다. WHO 팬데믹 선언이 급락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1.38달러(4.0%) 하락한 32.98달러에 거래됐다. WTI는 지난 9일 10.15달러(24.6%) 폭락했다가 다음 날인 10일 3.23달러(10.4%) 반등했지만, 팬데믹 선언에 급락세로 돌아섰다.
  • ▲ 대국민연설 하는 트럼프 대통령.ⓒ연합뉴스
    ▲ 대국민연설 하는 트럼프 대통령.ⓒ연합뉴스
    ◇감세 vs 현금 지원… "뚜렷한 대책 없어"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사태의 충격파를 최소화하려고 안간힘이다. 미국은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감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 경제매체인 CNBC와 NBC방송은 10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의회를 찾아 공화당 상원의원과 비공개 오찬을 하고 올 연말까지 '급여세율 0%'를 제안했다고 백악관 관리와 의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급여세는 사회보장과 노인건강보험 재원 확보를 위해 매기는 세금으로,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와 비슷하다. 미국 공화당은 급여세 면제에 따른 경제효과(감면액)가 3000억 달러(한화 36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전략으로 해석한다.

    일본 정부는 직접 현금 지원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가계 부담 완화를 위해 육아 세대에 현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포함해 코로나19 긴급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1인당 월 1만~1만5000엔을 주는 아동수당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임시 휴교와 일시 휴직 등으로 가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세계 금융위기 때인 2008년 경기 부흥을 위해 1인당 1만2000엔 총 2조엔 규모의 현금 지원에 나선 바 있다.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다음 달부터 △중소기업 지원 △재택근무 환경 정비 △기업공급망의 중국 의존 재검토 지원 등도 검토하고 있다.

    호주도 경기 침체와 실업 대응을 위해 연금수령자와 실업수당 수혜자 등을 대상으로 일회성 현금 지원을 시행할 예정이다. 100억 호주달러(8조원)를 긴급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홍콩도 지난달 18세 이상 영주권자에게 1인당 1만 홍콩달러(155만원)를 지급하는 지원책을 발표했다.
  • ▲ 코로나19 관련 정부 대책 발표.ⓒ연합뉴스
    ▲ 코로나19 관련 정부 대책 발표.ⓒ연합뉴스
    경제전문가들은 WHO의 팬데믹 선언이 시장에 추가적이고 직접적인 충격을 가하진 않을 거라고 분석했다. WHO의 늑장 대처 비판이 나올 정도로 이미 시장은 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은 피해를 체감하고 있어서다. 다만 WHO의 공식 선언으로 기업의 투자심리나 개인의 소비심리가 더욱 위축되는 악영향은 있을 수 있다는 견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세계 6대 경제국인 이탈리아에서 6000만명 전 국민의 이동을 막는 초강수 봉쇄책을 뒀다.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 인구의 최대 70%가 감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과 일본은 이미 지난해 4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이 컸기 때문에 악재가 겹쳤다"고 부연했다. 다만 이 교수는  "WHO 팬데믹 선언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그나마 세계 경제를 받쳐주던 미국도 이미 증시 움직임이 과거 세계 금융위기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현금 살포성 대책에 대해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공급과 수요 양쪽 모두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단순히 시장에 돈을 풀어도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돈이 돌지 않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이런 상황에서 과감하게 투자를 늘릴 리도 없다. 지금 돈을 푼다는 것은 당장의 충격으로 망하는 기업을 연명하는 수단에 그칠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에 각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펴왔기에 (시중에) 자금이 모자라 경제가 안 돌아가는 건 아니다"면서 "특히 (우리의 경우) 이번 정권 들어서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해왔기에 (재난기본소득 도입으로) 돈을 푼다고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그나마 미국식의 감세 조처가 나을 수 있다는 견해다. 그는 "(단순 현금 살포보다) 감세로 소비자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면 조금 효과가 있을 수 있다"이라면서 "이번에 편성하는 추가경정예산도 급조했을 수 있으므로 심사를 꼼꼼히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뾰족한 대책은 없을 것 같다"면서 "확산 방지를 위해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데 이러면 사람 활동이 위축돼 경제 활동에도 부정적이다. 그래도 순서가 있는 법이니 일단 바이러스 창궐을 막아 사태가 진정돼야 불안감도 줄어 사람도 움직이고 소비도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새 외신을 보면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1.9→1.4%)와 S&P(1.6→1.1%)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계속 낮추고 있다"면서 "(충격을 피할 수 없는 만큼) 독일 메르켈 총리의 말마따나 일단 방역을 통해 감염을 통제 가능한 범위로 늦추고서 소비심리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의 지구촌 확산이 경기 둔화 우려를 높이고 투자 심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만큼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재정 운용을 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단순 현금 살포성 정책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적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