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19(우한 폐렴)를 대비하려고 '한국판 뉴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혈세 풀 궁리 대신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범유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진 않으나 경제활력을 위해 관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민간이 주도할 수 있게 멍석을 깔아주고 상품·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혁신을 뒷받침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7일 정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주재로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 △언택트(비대면)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 등을 한국판 뉴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데이터·5세대 이동통신(5G)·인공지능(AI) 관련 인프라를 구축·강화하고 이를 토대로 비대면산업 육성, 낡은 SOC 디지털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다음달초 프로젝트별 세부사업을 확정하고 앞으로 2~3년간 집중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홍 부총리는 "디지털 기반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민간투자와 시너지 효과가 크면서 경제 전영역의 생산성, 경쟁력 제고와 직결되는 일종의 성과 프로젝트 성격"이라면서 "기존 토목사업 위주의 경기 부양성 뉴딜과는 개념이 확연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
경제전문가들은 큰 틀의 접근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방법론에서 정부 주도 사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세종대 김대종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19 범유행으로 말미암아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진 않다"며 "정부가 밝힌 디지털 인프라 구축, SOC의 디지털화뿐아니라 전통적인 방식의 SOC 사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매출 발생 10억원을 기준으로 했을때 교통분야는 15명, 건설·토목분야는 1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김 교수는 "현 정부는 투자와 소비에 있어 20%쯤을 (이미) 정부 주도로 끌어가고 있다"면서 "관 주도의 경기 활성화는 구축효과를 낳으므로 바람직하진 않다"고 경고했다. 구축효과는 경기를 활성화하려고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려 사업을 일으키면 이자율이 상승해 기업 투자와 민간의 소비가 위축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나친 관 주도의 경기부양은 과유불급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지 말고 각종 규제를 풀어 민간이 주도적으로 시장을 만들어갈 수 있게 무대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충남대 안기돈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디지털경제와 관련해 투자를 확대하기로 방향을 잡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스마트시티내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이동공유서비스(MaaS·마스)에 관심이 많다는 안 교수는 "자율차의 경우 아직 우리나라의 제작 수준은 낮지만 플랫폼 서비스를 접목하면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안 교수는 "정부가 직접 나서 무엇을 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용을 활성화하려면 기업이 일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안 교수는 "세계적인 추세를 봐도 정부가 전면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비즈니스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정부가 앞장설 테니 믿고 따라오라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카이스트 이병태 경영대 교수는 "디지털 대전환은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가야 할 방향으로 국민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라며 "이런 변화를 '뉴딜'이라는 말로 포장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관 주도의 사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뉴딜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대규모 수요를 일으키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인프라스트럭처(기본시설)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면서 "어떤 부분에선 애플리케이션(앱)도 없는데 네트워크만 깔아서 과잉투자한다는 지적도 있다"고 부연했다.
이 교수는 '타다' 서비스를 예로 들어 문재인 정부의 디지털경제 난맥상을 꼬집었다. 이 교수는 "(타다는) 공유경제를 통한 디지털경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요를 예측해 요금을 탄력적으로 변동시키는 '가변가격제'를 적용하려면 AI를 통해 빅데이터를 분석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현 정부는 (일명 타다금지법을 통해) 혁신·디지털경제사업을 못하게 막았다"고 질타했다.
이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와 관련해 한국이 구축해야 할 것은 기술이나 시설 인프라가 아니라 제도적 인프라라고 역설했다. 그는 "정부는 돈 쓸 궁리에, 관 주도의 사업을 벌이기보다 규제를 과감히 풀어 민간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면서 "노동개혁과 상품시장 개혁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제조업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게 불가능하다. (인건비가 싼) 해외에 공장을 짓기 때문이다"며 "결국 서비스·의료·에너지·금융·교육 등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각종 규제를 철폐해 경제자유화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정부의 개혁 의지다. 설상가상 내년 여름 무렵부터는 본격적인 차기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다 보니 각종 규제를 뜯어고쳐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여러 이해집단의 반발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원격의료의 경우 과거 의료계 반발에 막혀 도입하지 못했다"면서 "현 정부는 특히 노동문제 등에 있어 이념적 지향성이 강해 이해집단의 강력한 반발에 맞닥뜨렸을때 규제를 풀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했다. 원격의료 산업은 지난 정부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좌초됐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정책 일관성을 두고도 논란이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