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강대강’ 치킨게임, 피해는 국민 몫으로 삼성서울 전공의, 전원 사직서 제출… 서울대 내과, 진료 축소 결정복지부, 파업 참여한 전공의 10명에 고발장 접수… 의료계 반발 더 거세질 듯
  • ▲ 의대정원 확대 등 정책에 반대하는 한 전공의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성원 기자
    ▲ 의대정원 확대 등 정책에 반대하는 한 전공의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성원 기자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코로나19로 신음을 앓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와 정부의 ‘강대강’ 대치 상황이 벌어지며 의사들은 가운을 벗었다. 결국 환자들이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국내 중증환자의 최후 보루인 빅5병원의 수술 건수가 최대 60%까지 줄어들면서 문제의 심각성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외면한 채 강경한 대응책만을 쏟아내고 있다. 치킨게임의 끝에 의료 붕괴가 기다리고 있다.

    28일 본지가 빅5병원 현장 상황을 파악한 결과, 의료진 공백으로 인해 수술 건수가 대폭 줄었다. 

    이 병원들은 응급환자, 암 등 중증환자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진다 해도 정상적 가동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의사들과 정부의 갈등의 골이 더 벌어지고 있어 상황은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먼저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전날 오후 6시 전공의 506명 전원이 행정명령 불복 및 사직서 제출을 결의했다. 전임의 역시 사표를 제출하고 있는 상황으로 의료공백이 현실화된 상태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는 수술 건수를 10~30%로 단계적으로 줄였다. 그러다 어제(27일)부터 절반으로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었고, 오늘(28일)은 60% 이상 수술이 미뤄질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일 평균 190건의 수술이 진행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날만 예정된 100건 이상의 수술을 못 하게 된 것이다. 

    이날 서울대병원 역시 의료진 공백으로 수술 건수가 50%로 줄었다. 이 여파로 다음 주에는 내과 외래진료가 일부 축소된다. 

    코로나19 확진자, 응급환자, 중환자 등 중증도 높은 입원환자를 우선적으로 보기 위해서다.

    서울대병원 내과의국은 “8월 31일부터 1주일간 연기가 가능한 외래와 시술 등의 진료를 축소하고 입원환자 진료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 이후에도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외래 진료를 중단할 수 밖에 없다”고 결정했다.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들 병원 관계자들은 “수술 일정을 조율하고 있지만 파업 일정이 길어지면서 수술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 대략 30%~40%의 수술이 미뤄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전공의, 전임의 파업이 이어지고 또 사직서까지 제출하는 상황으로 업무를 대체하고 있는 교수, 간호사 등의 피로도는 누적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임상현장은 과부화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우려된다.  

    ◆ 의료공백으로 인해 사망한 환자 발생  

    코로나 확산과 의료계 파업 여파로 부산에서 약물을 마신 40대 남성이 응급처치를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3시간을 배회하다가 울산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의료 붕괴의 단면이 수면 위로 오른 것이다. 

    부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11시 23분께 부산 북구에서 A씨가 약물을 마셔 위독하다는 신고가 119에 들어왔다. 구급대원은 A씨 위세척 등을 해줄 병원을 찾았지만 대부분 해당 전문의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시간만 흐르면서 A씨는 심정지 상태에 이르렀고 북구 한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아 겨우 심장 박동을 회복했다.

    이후로도 119구급대원은 약물 중독 증세를 보이던 A씨를 치료할 병원을 찾을 수 없었다. 1시간 20여분간 부산과 경남지역 대학병원 6곳, 2차 의료기관 7곳에 20여 차례 이송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치료 인력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A씨는 119구급차에 실려 부산이 아닌 울산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속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한 채 길에서 3시간가량을 허비한 탓에 A씨는 중태에 빠졌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27일 오후 숨졌다.

    앞서 전공의 집단휴진이 진행된 지난 7일 강원대병원에서 수술일정이 미뤄지며 담낭암 환자 B씨가 식물인간이 됐다는 주장된 바 있다. 

    당시 환자의 보호자는 “파업이 없었다면 수술 했을 거 아니냐. 환자가 찾았음에도 의사가 오지 않은 것은 진료 거부”라며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 ▲ 지난 14일 여의도 공원에서 전국의사 총파업이 진행됐다. ⓒ박성원 기자
    ▲ 지난 14일 여의도 공원에서 전국의사 총파업이 진행됐다. ⓒ박성원 기자
    ◆ 해결책 안 찾고 문제 더 키우는 정부   

    근본적으로 이번 의정 갈등 파업 사태는 코로나19와 맞물려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27일 기준 코로나19 중환자 수는 총 58명이다. 현재 중환자가 입원 가능한 병상은 68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병상이 49개 남았다. 호남지역과 강원도에는 이미 가용할 중환자 병실이 없어 충청권이나 경상권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자체는 물론 이로 인한 부수적 피해가 극심한 가운데 의료계 파업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우선 해결해야 할 부분은 갈등 봉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오히려 의료계에 강경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는 의대정원 확충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강대강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다. 

    복지부는 28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의사단체 집단행동 관련 복지부·법무부·경찰청 합동브리핑을 통해 이날 오전 10시를 기해 전공의와 전임의 대상 업무개시명령을 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확대하고, 즉시 환자 진료 업무에 복귀할 것을 명령했다.

    앞서 지난 26일 오전 8시를 기해 수도권 소재 95개 수련병원에 근무 중인 전공의, 전임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는데, 이날 비수도권 수련병원 115개로 확대한 것이다. 

    복지부는 또 전날 업무개시명령 이행 여부를 확인한 결과 3개 병원의 응급실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10명에 대해서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김강립 복지부 차관은 고발 조치와 관련해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은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 의료계 분석이다. 

    의료계 한 고위 관계자는 “대화 없이 정책을 강행하다가 파업 사태로 번진 것인데, 이번에는 고발장까지 제출하며 의료계 압박하고 있다. 갈등 봉합은 어려울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 의료체계는 붕괴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