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부족한 동네의원 VS 대규모 투자 가능한 대형병원 ‘격차’우려 코로나19 계기로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 병원계 중심으로 ‘인식 변화’政, 디지털 뉴딜 차원 전폭적 지원… 받기 힘든 개원가의 ‘한숨’
  • ▲ 의료취약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인천시 옹진군
    ▲ 의료취약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인천시 옹진군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2020년 의사 파업 사태’로 정점을 찍었다. ‘파업 종료’와 ‘원점 재검토’가 담긴 합의서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뇌관은 남아있다. 코로나 시국 속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잠시 쉬어갈 뿐이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논란의 중심인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첩약급여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육성 등 내용을 분석하고 향후 방향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원격의료 도입과 관련 논란이 발생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의약분업과 함께 지난 2000년부터 논의됐으나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의사가 다른 지역 의사에게 자문하는 형태는 가능하지만, 환자를 대상으로 하면 불법이다. 다만, 의료취약지에는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창궐하면서 비대면(Untact)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렸다. 이 과정에서 원격의료는 ‘비대면 진료’로 표현이 바뀌었고 시대적 흐름도 변했지만, 의정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서 의료계는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 집행부가 활동했던 2014년에 원격의료 도입 문제로 이미 집단휴진을 결정한 바 있다. 올해 역시 의료계가 표현하는 소위 ‘4대악’ 정책에 담겨 파업의 불씨를 댕겼다. 같은 안건으로 두 번의 집단휴진이 있었던 셈이다. 

    ◆ 왜곡된 의료전달체계와 ‘원격의료’, 동네의원의 몰락 

    원격의료 도입과 관련 논란의 중심에는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문제가 존재한다. 경증질환인데도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소위 ‘쏠림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지난 수십 년간 1차 의료기관, 즉 동네의원은 큰 병원에 환자를 뺏기는 구조가 됐다. 빅5병원을 포함한 수도권 대형병원은 붐비는 반면 상대적으로 개원가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9년 건강보험 주요통계’를 보면 전국 동네의원 3만2491곳의 진료비 비중은 전체 요양기관 중 19.6% 수준이다. 단 42곳의 상급종합병원은 18.1%를 차지했다.

    이러한 상황 속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바로 쏠림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각종 인프라를 갖춘 대형병원에 진료를 보는 경향이 더 도드라진다는 얘기다. 때문에 개원가의 반대가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의협 측은 “비대면 진료는 지리적 접근성이 무시됨으로써 병원급 의료기관 간 무한경쟁을 발생시킬 것이다. 동네의원의 몰락과 지방 중소병원의 폐업이 더욱 가속화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18대~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대체 의료서비스 제공’이 아니라 ‘산업·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관 산업계의 요구와 일자리 창출과 같은 신성장 동력의 수단으로 거론되고 있어 대병병원 쏠림현상이 가속화돼 의료전달체계 붕괴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다. 가뜩이나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동네의원 입장에서 원격의료는 독(毒)이다. 

    ◆ 코로나 계기로 ‘언택트’ 화두, 현 정부의 숙제

    코로나19 확산속도가 가팔랐던 지난 2월 24일 정부는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 일환으로 ‘전화 상담’을 허용했다. 복지부 집계자료에 따르면, 6월 말까지 총 5849개의 의료기관에서 약 43만8000건의 전화상담 및 처방이 진행됐다.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에는 기존 진찰료 100% 외 전화 상담관리료 30%를 별도 수가로 반영했다. 대면 진료보다 더 높은 수가를 책정해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유인기전을 발동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 피부과 의사가 초진은 대면 진료가 원칙 등을 무시한 채 전화통화로 탈모약을 처방하는 등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성질환자들의 진료 만족도 제고 등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물론 지금 당장 비대면 진료 일환으로 추진된 전화 상담의 효과가 있었는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오진이나 의약품 배송상 문제 등 부작용도 분명 존재하기에 면밀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진료로 패러다임이 변했다는 점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의 일환으로 2025년까지 스마트 의료 관련 사업에 5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한시적 전화 상담뿐만 아니라 화상 진료 인프라 구축 등 실질적 원격의료가 담겨있다. 

    실제로 오는 12월까지 의원급 의료기관 5000개소에 웹캠·마이크 등 화상진료 장비가 지원된다.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우려하는 동네의원을 대상으로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만들면서 분위기 전환을 시도 중이다. 
     
    비대면 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가 뚜렷하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비대면 의료서비스 등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역시 “원격의료 등 비대면 사업의 규제 혁파와 산업육성에 각별히 역점을 둘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 병원계 중심으로 인식 변화, ‘원격의료=시대적 흐름’

    의협은 대면 진료의 원칙에 위배된 원격의료 자체를 반대하고 있지만, 전국 3300여 병원을 회원으로 둔 대한병원협회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찬성한다는 입장으로 노선을 바꿨다. 결국 의료계 내부적으로 원격의료를 받아들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병협 측은 “원격 화상기술 등 ICT를 활용한 정책 발굴과 도입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적 추세 및 사회적 이익증대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을 긍적적으로 인식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다만, 전제 조건으로 ▲초진 환자 대면 진료 원칙 ▲적절한 대상질환 선정 ▲급격한 환자쏠림 현상 방지 등을 내세웠다.

    코로나19 대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원격진료 기반 구축에 나선 병원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서울대병원의 경우는 지난 3~4월 문경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하면서 첨단정보 감염병 관리 시스템의 효과와 편의성을 확인했다. 

    웨어러블 장비를 도입해 생활치료센터에 입원 중인 환자의 심전도, 혈압, 산소포화도, 심박수, 호흡수 등을 측정하고 이런 데이터가 병원정보시스템에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의료기관 간 정보 공유를 위한 클라우드 기반 의료영상 공유 플랫폼도 도입했다. 

    이 같은 시스템 구축을 통해 환자의 적절한 치료, 조기 진단·격리·치료에 이상적인 비대면 진료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평가다.

    서울아산병원은 감염병 대응을 목표로 KT, 현대로보틱스와 스마트병원 솔루션 공동 개발 및 사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현대로보틱스의 로봇 기반 자동화 설비 구축 역량과 KT의 5G 클라우드 서비스, 인공지능 역량을 결합해 비대면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현대건설과 손을 잡고 해외 근무자 원격 건강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해외 근무자들이 체온계, 혈압계, 산소포화도측정기 등을 활용해 자가 진단일지를 기록한 뒤 상담을 신청한다. 의료진은 이를 전송받아 사전 검토한 뒤 화상 상담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명지병원은 영상 감시장비 개발 등 보안 솔루션 전문기업인 ITX엠투엠과 텔레메디신·재택의료, 헬스로봇 플랫폼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비대면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원격의료를 치매환자에 적용하는 방법론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병원계는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발판을 만들고 있다. 언택트 시대에 부합하는 형태로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병원계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는 IT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임에도 이른바 ‘원격의료 쇄국정책’이 유지되고 있어 다른 나라의 발전 속도에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빗장을 어떻게 풀지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료의 영역도 (타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신기술이 도입되고 다시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서 발전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부분을 따라가지 못하면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4일 의협과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부의 의정합의로 인해 비대면 진료 육성책도 ‘원점 재검토’가 걸린 상태다. 하지만 의료계 내부적으로 원격의료에 인식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