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식민지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겠다"1992년 메모리 강국 일본 제치고 세계 1위 올라서1990년대 초 대규모 투자 통해 초격차 전략 시작
  • ▲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30년 기념 서명을 하고 있는 고(故) 이건희 회장 모습.ⓒ삼성전자
    ▲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30년 기념 서명을 하고 있는 고(故) 이건희 회장 모습.ⓒ삼성전자
    "언제까지 그들(미국, 일본)의 (반도체)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

    지난 1987년 취임 이후 이 회장에게 그룹 수뇌부가 반도체 사업 포기를 건의하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이 같이 말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92년 삼성은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임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에 승부수를 던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뚝심이 결실을 본 순간이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역사는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내 전자 산업은 단순 조립 수준에 그쳤다. 삼성전자는 TV도 제대로 만들지 못할 정도의 기술력 부족을 겪고 있었다.

    여기에 외부 환경도 녹록치 않았다. 오일쇼크로 가전 수출길이 좁아지면서 삼성전자는 위기를 겪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우리나라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첨단기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뛰어들게 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만이 삼성이 30년 이상 장수할 수 있는 미래라고 본 것이다.

    당장의 성과는 따르지 않았다. 일본의 NEC, 히타치, 도시바 등이 미국 인텔에 도전하면서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자 곧바로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기술 부족도 걸림돌이 됐다. 전자시계용 반도체 정도는 문제 없었지만 조금만 더 복잡해도 생산은 어려운 정도였다.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 싸움이라고 판단한 이 회장은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웠다.

    이런 아들의 지속적인 설득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마음을 돌렸다. 이내 1977년 이병철 선대회장은 한국반도체의 나머지 지분을 인수하면서 한국반도체는 삼성반도체로 탈바꿈했다. 이후 삼성은 원진그룹의 용인 공장과 영등포 구로 공단의 미국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조립공장도 함께 인수했다. 이어 1980년에는 삼성반도체를 삼성전자로 합병했고, 1982년에는 한국전자통신으로 합병해 삼성반도체통신을 설립했다.  


  • ▲ 2004년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故)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삼성전자
    ▲ 2004년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故)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삼성전자
    자신감을 얻은 이병철 선대회장은 대규모 투자를 결심하게 되고 이때 '2.8 도쿄 선언'도 함께 나온다. 결국 삼성은 기흥에 터를 닦고 반도체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샤프에서 기초 기술을 배워 64K D램 개발에 나섰다. 삼성은 그해 말 제품 개발에 성공했고 곧바로 제품 판매에 나섰다.

    이런 기대와 달리 1987년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이 선대회장이 타계하면서 반도체 사업에도 시련이 닥친 것이다. 당시 삼성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에 세계적인 불황까지 겹치며 위기감은 그 어느때보다 컸다. 

    이에 반도체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확고했다. 반도체야말로 삼성이 나아갈 중요한 사업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듬해부터 반도체 시장에 드리운 먹구름도 점점 걷히고 있었다.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반도체 가격도 폭등해 삼성전자는 비로서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하게 된다.

    반도체 호황이 이어지면서 이건희 회장은 본격적인 육성 드라이브를 걸게 된다. 

    지난 1991년 4500억원, 1992년 8000억원을 투자하며 기술 경쟁력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삼성전자의 초격차 전략이 시작된 것도 이 시기다.

    삼성전자는 1992년 64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D램 선두로 올라서게 된다. 삼성의 이 같은 전략은 낸드플래시 메모리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2002년 1위를 석권한 낸드플래시는 D램과 같이 선두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지난 2003년에는 플래시 메모리 전체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반도체 명가로 거듭났다. 

    이 같은 배경에는 2001년 세계 최초 4기가 D램 개발, 세계 최초 64Gb NAND Flash 개발(2007), 2010년 세계 최초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 2012년 세계 최초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 등의 기술이 있었다. '기술에 의해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 회장의 믿음에 의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