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발전법 10년… 기업형 식자재마트 골목상권 장악대형마트·SSM과 달리 규제 없어 사각지대서 활개정부 ‘식자재마트’에도 칼 드나 "실태 조사해 입장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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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의 한 기업형 슈퍼마켓(SSM) 바로 옆 건물에 A 식자재마트가 문을 열었다. 기업형 슈퍼마켓이 유통산업발전법으로 월 2회 일요일마다 문을 닫지만, 바로 옆 식자재마트는 365일 내내 손님들로 북적인다. 또 새벽 장사가 불가능한 슈퍼마켓과 달리 식자재마트는 24시간 운영하며 근방의 손님을 모으고 있다.

    ‘유통규제’가 시작된 지 올해로 10년째다. 2010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으로 대형마트엔 ▲월 2회 의무휴업 ▲새벽 장사 금지 ▲신규 출점 제한 등 다양한 규제가 씌워졌다. 대형마트를 옥죄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자연스레 살아난다는 취지에서다. 

    반면 대기업이 진출하지 못하는 골목상권 틈을 비집고 식자재마트, 도매마트, 할인마트 등의 이름을 단 중대형 슈퍼마켓이 급증하고 있다. 갈수록 대형화돼가는 식자재마트도 대형마트와 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연매출 ‘1兆’ 식자매마트… 대형마트·SSM 안부럽네

    2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식자재마트는 면적이 3000㎡를 넘지 않으면서 각종 식재료를 저렴하게 팔아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도 많이 찾는다. 최근에는 생활용품과 가전제품 등 다양한 상품까지 취급하고 있고, 포인트 제도와 배달 서비스까지 운영하고 있다. 사실상 일반 대형마트와 차이점이 없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도매상과 일부 소매업자가 운영하는 중형 마트가 전국에 6만 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국 각지로 뉴타운 등의 분양이 몰리면서 대규모 상권이 생긴 것도 중형 마트를 성장시킨 계기가 됐다. 

    그러나 대형마트나 SSM(기업형 슈퍼마켓)처럼 의무휴업일이나 영업시간 제한 등 유통산업발전법상의 규제 적용받지 않다 보니 주요 식자재마트 업체들은 최근 수년간 빠르게 성장하며 골목상권을 잠식하고 있다. 

    이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록된 주요 식자재마트 업체들의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부산·경남에 기반을 둔 유통업체 탑마트(서원유통)는 전국에 77개에 점포를 두고 있다. 2010년 지역 유통업체 최초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매출 1조5488억원, 영업이익 722억원을 기록하며 대기업 계열과 비슷한 규모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에 15개 점포를 운영하는 장보고식자재마트의 경우 2012년에는 매출 1205억원, 영업이익 11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매출 3164억원, 영업이익 96억으로 영업익이 8배 이상 뛰었다. 장보고식자재마트는 오프라인뿐 아니라 ‘장보자닷컴’이라는 온라인몰도 운영 중이다. 주문금액 제한 없이 30분 안에 바로 배송이 가능하다.

    우리마트(1964억원), 윈플러스마트(1749억원), 트라이얼코리아(1232억원), 세계로마트(989억) 등도 대표적인 기업형 식자재마트다. 

    ◇ 규제 사각지대서 활개… 정부 ‘식자재마트’에도 칼 드나

    업계는 2012년부터 식자재마트가 본격 확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무렵 대형마트와 SSM 규제가 강화되자 대기업들이 움츠러든 반면 규제를 받지 않는 중형규모로 좋은 위치에 점포를 늘렸다는 설명이다.

    규모경제를 앞세운 식자재마트는 골목상권을 빠르게 장악했다. 한국유통학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매출액 100억원 이상의 식자재마트는 전체 슈퍼마켓 점포 수의 0.5%에 불과하지만, 전체 매출액의 24.1%를 차지했다. 식자재마트는 2014년보다 74.3% 증가했고, 매출액 5억원 미만 소형 슈퍼마켓은 같은 기간 4.6% 감소했다.

    식자재마트가 들어서면 품목이 겹치는 기존 상인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지방자치단체들도 나서서 식자재마트의 무분별한 점포 개설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대구시가 최초로 규제를 제도화했다. 대구시는 2015년 ‘서민경제 특별진흥지구 지정·운영 조례’로 전통시장 1㎞ 내에 식자재마트 진입을 제한했다. 조례에는 영업을 시작하기 전 사업자는 구청에 ‘상권영향 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식자재마트 규제를 놓고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진행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식자재마트는 새로운 형태의 유형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기존 법 규정과 다른 형태라 유통법상 강제할 수 있는 등록 규정이 없는 실정”이라며 “실태조사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입장을 정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업계는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의 규제 논리가 제대로 된 시장 조사 보다는 소상공인들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포퓰리즘에 가까웠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기업형 식자재마트가 최근 몇 년 새 몸집을 불렸다”며 “지방에 있는 전통시장 주변으로 무분별하게 출점하면서 시장 상인회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