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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하나금융
금융은 흐름입니다. 막힌 데 없이 구석구석 흘러가야 합니다. '이승제의 금융통(通)'은 국내 금융권에서 일어나는 돈과 정보의 흐름을 좇아가려는 시도입니다. 딱딱한 형식주의를 벗어나 금융 속에서 자유롭게 노닐고자 합니다.
#"기자님, 기사에서 회장님 고졸 출신 부분을 빼 주실 수 있을까요?"
"왜 그러죠. 전 좋은 뜻으로 쓴 건데요."
"......"
"제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
"거 참"
"회장님이 싫어하십니다. 비서실에서 앞으로 회장님 설명에 '고졸'이란 표현을 붙이지 않도록 언론 협조를 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좀 부탁드립니다."
"......"
오래된 얘기다. 2005년 어느 봄날, 당시 STX그룹 홍보실 팀장과 나눈 대화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제2의 김우중'이라 불리며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는 동대문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쌍용양회에 입사했다. 30년간 직장생활을 하던 그에게 천우신조(天佑神助) 같은 기회가 온다.
쌍용그룹 유동성 위기와 함께 쌍용중공업도 어려워졌는데, 마침 그는 이곳에서 재무 총괄 임원을 맡고 있었다. 종업원들과 힘을 모아 쌍용중공업을 인수했고 2001년 5월 STX를 출범시켰다.
강 회장은 M&A(인수합병)에 거침없었다. 여러 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재계 순위가 2007년 18위, 2008년 12위, 2010년 11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뒤돌아보지 않는 공격경영으로 그룹 내부에 각종 '쓰레기'(부실)이 쌓였고 2008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를 폭발시켰다. 2013년 9월, 강 회장은 이사회 결정으로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이후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법정을 오갔다.
돌이켜 보면, 2005년 그날의 통화에서 시작됐을지 모른다. STX그룹의 몰락은. 그룹 홍보실에서 보도자료 속에 '강덕수 회장, 고졸 출신의 샐러리맨 신화!'라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적어 놓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돌변한 것이다. 그날의 통화 끝에 느낀 감정은 찝찝함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날 STX그룹의 주춧돌에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저는 촌놈입니다. 저는 늘 변방에서, 아웃사이더로, 야전 영업으로 승부했습니다"
지난 7월 11일 열린 한국경제인협회 CEO(최고경영자) 제주하계포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이날 강연자로 나서 던진 '화두'다. '촌놈'으로서의 성장 배경과 회장 취임에 이른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결국 직원 마음을 헤아리고 손님 마음을 사는 게 디딤돌이 됐다"고 운을 뗐다.
함 회장은 충남 부여군 은산면에 자리잡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곳은 함 회장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온 깡촌이었다. 그는 논산의 강경상고를 나와 1980년 옛 서울은행에 입행했다. 서울은행과 하나은행 통합 후 하나은행 분당중앙지점장, 충남북지역본부장, 대전영업본부장, 충청사업본부장 등을 거쳐 2015년 9월 통합 KEB하나은행 초대 행장을 맡았다. 상고 출신으로 말단 행원에서 행장까지 오르며 입지전적 인물의 반열에 들었다.
그의 뛰어난 영업력은 '사람 홀리는 재주'에서 비롯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평한다. 사람 마음을 헤아려 그의 마음을 사는 재주다. 그가 지닌 최고 경쟁력은 '용심술(用心術)'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통합 KEB하나은행 행장으로서 그가 일군 성과는 이를 잘 말해준다. 당시 통합은행의 최대 과제는 물리·화학적 통합이었다. 다른 시중은행에서 나타났듯, 씨알 굵은 은행들의 통합은 숱한 불협화음과 갈등의 골로 점철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함 행장의 KEB하나은행은 사뭇 다른 길을 걸었다.
통합은행 출범 1년여 만에 옛 두 은행의 노조가 통합을 이뤘다. 금융권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발표였다. 그 과정에서 함 회장(당시 행장)의 배려와 친화력이 빛을 발했다. 함 회장은 본부장 시절 직원 1000여명의 이름과 생일, 신상, 애로사항을 기억했다고 한다. 병가 중인 직원과 가족을 직접 병문안하는 섬세함을 보였다. 충청지역 본부장 시절, 지역 영업점을 방문할 때마다 대전의 유명제과점인 성심당에서 빵을 수백개 사서 차로 실어 보낸 뒤 정작 자신은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는 일화는, 짐짓 의도된 것이었다고 해도, 안줏거리로 설왕설래(說往說來)할 만한 것이었다.
#은행권 한 전직 임원에서 들은 얘기다.
"함 행장의 회장 등극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김정태 전 회장은 대표적인 '돌격 앞으로' 유형의 리더였다. 금융그룹과 시중은행 가운데 만년 꼴찌를 다투던 시절, 김 전 회장의 결단과 돌파력은 성장의 핵심 밑거름이었다. 하지만 하나금융 곳곳에 부작용도 움텄다. 하나금융 임원 중에는 당장 사용하지 않을 집기나 물건들을 회사 공용창고에 보관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철저한 성과 중심의 인사를 단행하다 보니, 보직 발령이 나도 언제 또 이동할지 몰라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함 회장의 등장은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였다. 이래저래 쌓인 리스크를 걷어낼 최적임자였을 테니 말이다"
'돌격 앞으로' 방식의 고도성장 추진은 부실 발생이란 부작용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기 마련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역저 '총,균,쇠(Guns, Germs, and Steel)'에서 "혁신은 핵심보단 변방에서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중심의 느슨함에 맞선, 변방의 결핍과 절실함이 창의성과 혁신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결핍은 좌절과 일탈의 기폭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 위대한 도전과 응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폴레옹 보나파트르의 '위대한 콤플렉스'가 그를 만든 원천이란 분석도 있다. 오직 했으면 '나폴레옹 콤플렉스'란 단어가 만들어졌을까[사전적으론, 키가 작은 나폴레옹이 지독한 열등감을 가졌고 이것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지배하려 하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촌놈'이었던, 아니 스스로 밝히듯, 여전히 '촌놈'인 함 회장의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섬기는 리더십)은 그 나름의 결핍에 대한 반응이자 선택이라 할 것이다.
사실 서번트 리더십이란 단어엔 살짝 낯간지럽게 하는 어감이 스며있다. 어느 누가 하루종일, 1년 365일 서번트 리더십에 충실할 수 있겠는가. 대외적으론 이를 내세운다 해도, 혼자 있을 때, 사석에서 얼마든지 다른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섬기는'이란 겸손하고 이타적인 뉘앙스를 지닌 서번트 리더십은 어찌 보면 가장 위험한 리더십일지 모른다. 그 갈림길은 서번트 리더십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자리'일 뿐이다.
함 회장은 2022년 3월 취임했다. '촌놈'임을 스스로 여러 차례 강조했던, 지난 7월은 그로부터 2년 5개월이 지난 날이었다. 하나금융처럼 결코 작지 않은 조직의 수장으로 2년여 넘게 보냈다. 그날 이어진 서번트 리더십에 대한 강조, "좋은 리더가 되려면 (좋은) 인간이 돼야 한다"는 조언…… '촌놈인 게 부끄럽지 않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선언인 셈인데, 그가 차원 높은 자존(自尊)의 경지에 올랐음을 방증한다. 지난 7월 포럼에서, '촌놈' 함영주는 자신의 도전이 여전히 현재진행형(…ing)이고 서번트 리더십의 완성을 향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에둘러 겸손하게, 소리없이 확고하게 웅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