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정보 등 개인정보 유출, 보험청구 거절 등 ‘부작용’ 우려보험업계, 종이 서류 기반 보험금 지급 등 행태 개선 필요성 정무위 법안소위서 여야 이견, 21대 후반기 재논의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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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손보험 가입자가 진료를 받으면 병원에서 곧바로 전산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이 11년째 국회를 표류 중이다. 이번에도 입법과정에서 관련 안건은 유보됐다.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은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 가입자의 편의와 이익을 증진하고 보험업계의 업무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마련됐지만, 의료계 반대에 문턱을 넘지 못했다. 표면적 취지 이면에 부작용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3일 의료계 및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전재수 의원과 국민의힘 소속 윤창현 의원 등이 각각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보험업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야당 간사와 일부 여당 의원까지 이견을 보였다. 법안을 합의 처리하는 정신에 따라 보험업법 개정안은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상임위 배정이 바뀌는 21대 국회 후반기에나 다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의료계, ”보험청구 거절의 근거가 될 것“

    해당 법안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매듭을 풀기 어려운 형국이다.

    먼저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을 결사반대하는 입장이다. 보험사와 환자 사이의 사적 계약과 어떤 관계도 없는 제3자인 의료기관이 의무적인 서류 전송의 주체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부당하다는 것이다. 

    보험사가 요구하는 진료기록, 진료확인서, 진단서 등의 서류는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 질병정보가 기입됐는데, 이를 전산망을 이용해 송부하는 과정에서 유출된다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측은 “보험사가 원하는 만큼 환자와 관련한 서류를 의료기관으로부터 취득하기 쉬워진다. 이렇게 축적된 개인의 질병정보는 결국 보험사의 이익을 위해 이용될 것이 자명하다. 환자의 보험청구 거절의 근거가 되거나 갱신, 가입 시 불이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높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보험업계가 소비자가 간단하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이 법안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추진해왔다는 점에서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특히 관련 법안에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과정에서 제3의 중계기관이 아닌 건강보험을 심사하는 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전산망을 활용하자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 대목이 바로 의료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다. 

    건강보험 청구 시에도 요양급여비용 삭감 등 조치가 이뤄지는데, 건강보험 대상인 아닌 비급여 행위까지 들여다보는 체계로의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부담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에 심평원이 서류전송 업무 외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하거나 보관할 수 없도록 하고 전송 업무와 관련해 의료계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각 개정안에 추가됐지만, 여전히 반발은 거세다. 

    의협은 “20대 국회에서 이미 폐기된 동 법안이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된 것에 대해 매우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 보험업계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국민을 속이는 보험업법 개악안의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보험업계·시민단체, ‘종이 서류’ 청구행태 변화 필요

    실손보험업계에 따르면, 연간 9000만건(2018년 기준)에 이르는 실손보험 청구의 76%가 팩스나 보험설계사, 직접 방문 등을 통해 종이 서류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종이 서류를 사진으로 촬영한 후 보험사 애플리케이션(21%)이나 이메일(3%)로 청구하더라도 결국 보험사에서 수작업으로 전산에 입력해야 하므로 사실상 종이문서를 기반으로 하는 청구가 99%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 속 실손보험 청구간소화가 진행되면 가입자는 보험금 청구를 쉽게 할 수 있고 숨어지는 보험금도 찾기 쉬워진다는 논리다. 

    소비자와함께 등 시민단체 역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에 찬성하고 있다. 

    정길호 소비자와함께 상임대표는 지난달 성명을 통해 “종이서류 발급은 지금과 같은 언택트 시대에 부합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보험청구 포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정보는 이미 소비자의 동의를 거쳐 제공되고 있으며 현재 일상에서 온라인으로 발급되고 있는 전자증명서에 대한 개인정보도 문제없이 잘 관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은 의료계와 보험업계, 시민단체간 상충된 이해관계로 11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아직은 의료계의 주장대로 법안이 진척되지 못한 상황이지만, 관련 법안을 추진하는 노력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최대집 의협회장은 “국민의 편의 향상을 위해서라면 먼저 현재 각 보험사마다 상이한 청구서류의 종류와 청구방식을 간소화, 표준화하는 게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