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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이 시행되면서 금융소비자보호는 업계의 화두가 됐다.
금융소비자보호를 관리·감독할 금융감독원의 역할도 그만큼 커졌다. 윤석헌 금감원장 취임 이후 바짝 고삐를 죄었던 금융소비자보호가 반석 위에 자리잡기 위한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하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30일 '2020년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71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현장점검한 결과 은행 5곳, 보험 2곳, 증권 4곳 등 총 11곳이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기업은행, 부산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삼성생명, KDB생명, 대신증권, 신한금융투자, KB증권, NH증권 등 11곳이다. 이 가운데 9곳은 사모펀드 사태를 초래한 은행과 증권사이고, 그 이외는 삼성생명과 KDB생명 뿐이다.
삼성생명에 대해서는 요양병원 암보험금 미지급 관련 소비자피해를 유발해 사회적 물의를 초래했다며 종합등급을 1등급 하향해 '미흡'으로 평가했다. KDB생명은 민원발생건수 등 4개 부문에서 저조한 평가를 받아 종합등급 '미흡'에 해당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결과를 통보받은 이후 2개월 이내에 개선계획안을 금감원에 제출해야 한다. 지난 29일이 마감 시한이었으며, 삼성생명과 KDB생명은 그동안 준비한 개선계획안을 금감원 금융상품분석국 소비자보호점검팀에 제출했다.
문제는 금감원의 구태의연한 마인드다. 금감원은 이들이 제출한 개선계획안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별 기업 내용을 밝히기 어렵고, 과거에도 이를 공개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소비자보호실태 결과에서 왜 미흡한 평가를 받았는지 설명하고, 해당 기업들이 소비자보호를 등한시한 것처럼 낙인을 찍은 것은 금감원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살펴볼 수 있도록 막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삼성생명과 KDB생명도 소비자보호 미흡 평가에 대해 억울한 측면도 있을테고, 개선계획안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줄 필요도 있다. 그래야 고객들도 다시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금소법 시행으로 금융소비자보호가 핫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금감원의 대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금소법이 안착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혼란과 논란이 예상되지만, 이런 마인드로 금감원이 어떻게 관리·감독하겠다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아울러 삼성생명은 사실상 괘씸죄가 적용된 측면이 컸다.
지난해 금감원은 삼성생명에 대한 종합검사를 실시해 500여건의 암 입원보험금 청구가 부당하게 거절된 사실을 적발하고, 제재심의원회를 열어 '기관경고'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금감원은 삼성생명에 과태료와 과징금을 부과할 것을 금융위원회에 건의하고, 임직원에 대해 3개월 감봉·견책 등을 조치했다.
당시 금감원 관계자는 “삼성생명에 대한 종합등급 '미흡' 평가는 중징계를 내렸던 제재의 연장선 상으로 보면 된다”며 괘씸죄 일환임을 시인한 바 있다.
괘씸죄로 철퇴를 내리고 소비자보호 '미흡'이라는 낙인까지 찍어놓고 개선 과정에 대해 고객들은 몰라도 된다는 식이다.
금감원은 개선계획안 이행 여부를 체크할 것이고, 연말에 다시 소비자보호실태 조사 결과를 지켜보면 개선됐는지를 알 수 있지 않겠냐고 해명했다. 그동안 고객들은 삼성생명과 KDB생명의 노력들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금소법 시행이 금융소비자보호에 방점이 찍히지 않고, 금융회사 제재로 변질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우려된다. 금감원의 마인드 전환 없이는 금소법 조기 안착은 묘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