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콜 통해 "내재화 목표" 밝혀"차급과 용도, 성능, 가격별로 최적화"국내외 업체와 전략적 협업
  • ▲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 ⓒ현대차그룹
    ▲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 ⓒ현대차그룹
    현대자동차가 ‘배터리 독립’을 선언했다. 전기차 시장이 급팽창하는 가운데 지금의 배터리 외부 공급에 의존해서는 주도권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웃인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회사 간 셈법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현대차는 22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연 1분기(1~3월) 경영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이 같은 의지를 내비쳤다. 구자용 현대차 전무(IR담당)는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와 개발 현황을 묻는 질문에 “기술 내재화를 목표로 개발 중에 있다”고 밝혔다.

    구 전무는 “차급과 용도, 성능, 가격별로 최적화한 배터리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전고체 배터리 개발 역시 당사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업계는 현대차의 이러한 발언을 사실상 ‘기술 독립’에 속도를 내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 현대차는 지난해 말 전고체 배터리 개발과 설계, 품질 확보, 안전성 평가 등을 담당할 인력 확보에 나선 바 있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그룹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은 한 기자간담회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다”며 “때가 되면 최신 기술을 선보일 것”이라고 공개하기도 했다.

    만약 배터리까지 직접 만든다면 현대차는 수익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 내외에 달한다. 

    전고체 배터리는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지금 널리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전해질은 액체다. 액체 전해질은 과도한 열이나 충격, 압력을 받으면 팽창하거나 흘러내려 폭발할 수 있다. 화재 위험이 있는 데다 배터리 수명과 연관되는 에너지 밀도도 낮다.

    반면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해 폭발 위험을 없앤다. 나아가 크기를 줄여 배터리 내부의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고 주행 가능 거리를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 전기차의 최대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짧은 주행 거리를 단번에 해결하는 셈이다.

    현대차의 배터리 독립은 전고체 배터리가 시작점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현재 전 세계 배터리 공급의 85%가량을 차지하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과 바로 맞붙기엔 기술적 장벽이 높고, 막대한 투자비가 든다.

    직접 개발 중인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하면, 현대차 입장에선 배터리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5년 이후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기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사업 체제가 바뀌는 데 따른 일자리 감소의 좋은 대안이 되기도 한다.

    현대차는 2025년 전고체 배터리를 시범 생산하고, 2년 뒤 양산을 준비할 계획이다. 본격적으로 양산에 나서는 시기는 2030년을 목표로 잡았다.

    일각에선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 간 합작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내연기관처럼 철저한 수직계열화 산업 구조를 완성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구 전무도 이날 “국내 배터리 3사, 해외 기업과 협업해 시장 요구에 최적화한 배터리를 탑재하겠다”면서 “전략적 협업을 할 것”이라고 말해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 배터리 공급 부족으로 인한 불만이 많다”며 “전기차 사업의 핵심을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코나 전기차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와 관련한 책임 소재 갈등도 내재화를 부추기는 ‘트리거(방아쇠)’가 됐다고 분석했다.

    세계적으로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직접 생산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배터리 유형을 각형으로 통일하고, 유럽에 6개 배터리 공장을 지어 전기차 300만 대에 탑재할 수 있는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은 LG에너지솔루션과 1조원씩 출자해 배터리 합작 법인을 세웠고, 최근 제2공장에 투자하기로 했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배터리 직접 생산을 논의하고 있다”고 공식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도 “2022년부터 배터리를 공장 여러 곳에서 자체 생산해 공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