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조 정부 추경안, 24일 국회 제출… 정치권 "증액" 이구동성李 "차기정부 지출조정해 35조로"…대선후보 긴급회동도 제안나랏빚 1075.7조·국가채무비율 50.1%… 나라살림 68조 적자'돈풀기'에 인플레 우려 커…억제한 공공요금 줄인상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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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정권 말 씀씀이가 커지면서 차기 정부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나랏빚은 늘고 세출예산은 깎일 가능성이 커진 데다 고물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공요금이 줄인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21일 정부는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초유의 꽃샘 추경(추가경정예산)안을 14조원 규모로 확정했다. 정부안은 오는 24일 국회로 넘어갈 예정이다.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추경이 올해 예산(607조7000억원)을 집행한 지 보름 남짓밖에 되지 않았고 추경 재원 대부분이 적자국채 발행으로 충당되는 점을 들어 정치권의 증액 요구에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홍 부총리 바람과 달리 추경 규모는 소위 '국회의 시간'을 거치며 늘어날 공산이 적잖다. 민주당은 소상공인 지원대상과 지급액을 모두 늘려야 한다며 추경 규모가 25조~30조원은 돼야 한다는 태도다. 추경을 매표행위로 규정하던 국민의힘도 실질적인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선 32조~35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지원을 받는 처지인 소상공인도 이번 추경 규모가 25조원은 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설상가상 선거를 앞두고 대선후보의 선심성 퍼주기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이날 정부의 추경안 확정 이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5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 대선후보 간 긴급회동을 제안했다. 35조원은 지난 19일 국민의힘 원내지도부가 안도걸 기재부 2차관을 만나 추경과 관련해 제시한 금액이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이 제안한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에 100% 공감한다"면서 "차기 정부 재원으로 35조원을 마련해 이번에 신속하게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이 가능하도록 모든 대선후보에게 긴급회동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민생 이슈를 선점해 지지율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로선 손해 볼 게 없는 제안인 것이 애초 정부의 추경안이 '찔끔' 수준이라며 비판했던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인 데다 설령 회합이 무산돼도 이를 빌미로 야당 후보를 공격할 빌미를 얻을 수 있다. 당장 정의당은 이 후보의 제안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
문제는 여야 합의로 추경안이 증가하면 공교롭게도 그만큼 국민 부담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번 추경 재원으로 지난해 추가로 걷힌 초과세수를 활용한다지만, 국가회계결산이 끝나지 않아 당장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중에 세계잉여금으로 초과세수가 넘어와도 지방교부금 등을 떼주고 나면 실제로 빚 갚는 데 쓸 수 있는 재원은 넉넉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14조원 규모의 정부 추경안만으로도 나랏빚은 1075조7000억원까지 불어난다. 국가채무비율은 50.1%로, 본예산 편성 당시보다 0.1%포인트(p) 더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총지출 규모도 621조7000억원으로 늘어 나라살림 적자는 더 커지게 됐다. 총수입(555조6000억원)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68조100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조세전문가인 최광 한국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과 관련해 "(다음 정권은) 손발이 묶여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운, 더 위험한 사태가 생길 수 있다"고 일찌감치 우려했다.차기 정부로선 이재명 후보의 세출예산 전용 아이디어도 달가울 리 없다. 정부로선 상황에 따라 예산을 운용하면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쓸 수도 있지만, 재정운용은 혈세를 쓰는 것인 만큼 이미 사용처가 정해진 세출항목의 조정은 임기응변보다는 정교하고 엄중하게 이뤄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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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물가와도 전쟁을 치러야 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3.7% 올라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현 정부가 설 명절을 앞두고 물가 인상을 억제하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공공요금 등이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줄인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21일 열린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버스 요금·수도 요금 등 지방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는 물가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시내버스·택시요금 조정 연구용역을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요금 동결이나 인상 시기 연기를 요청하고 있다"면서 "상·하수도, 쓰레기봉투 요금도 일부 지자체에서 올 상반기 중 인상이 예정돼 있으나 인상 시점을 최대한 늦추도록 협조 요청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앞서 정부는 가스요금 등을 올리며 인상 시점을 다음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미뤄 '생색내기'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달 27일 올해 5월부터 가정용 가스요금을 단계적으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5월에 2460원을 먼저 올리고 7월에 1340원, 10월에 다시 800원을 인상한다. 정부는 특정 분기에 물가가 집중 상승하는 것을 막고 국민부담이 급격히 늘지 않게 한다는 방침이지만, 공교롭게도 인상 시기가 차기 정부가 들어선 이후여서 눈총을 샀다.일각에선 이번 추경으로 대거 자금이 풀리면 고물가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추경으로) 재정지출을 더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소상공인의 엄중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추경 규모가 충분한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인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도 고물가와 관련해선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줄이려고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재정을 풀면 인플레 압박이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다만 우 교수는 이번 추경이 전 국민 지원금이 아닌 소상공인 피해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총수요를 많이 자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