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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은 총재 "경제정책 프레임 '민간주도'로 바꿔야"

한국경제 대전환 기로 경기 회복세, 기존보다 약화될 것 성장과 물가 상충관계에 통화정책 운용 어려워

입력 2022-04-21 14:51 | 수정 2022-04-21 15:00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는 21일 "경제정책의 프레임을 과감히 바꿔야할 때가 왔다"면서 "민간 주도로 보다 창의적이고 질적인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 1층 컨벤션홀에서 진행된 취임식에서 "지금 한국경제는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면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과 세계화의 후퇴 흐름이 코로나 이후 뉴노멀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단기적으로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미 연준의 예상보다 빠른 통화정책 정상화, 오미크론 변이 확산 등이 통화정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한층 고조돼 경기 회복세가 기존 전망보다 약화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성장과 물가 간 상충관계(trade-off)가 통화정책 운용을 더욱 제약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정교하게 균형을 잡아가며 정책을 운용해야 할 때"라면서 "합의제 의결 기구인 금통위에서 모든 위원님들과 함께 항상 최선을 다해 최적의 정책을 결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다음은 취임사 전문 

한국은행 임직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저는 한국은행의 총재직을 임명받아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간 대학에서, 그리고 정부와 국제기구에서 일해 오다, 이제 중앙은행에 와서 금융·통화 정책의 최일선에 서게 되니 그야말로 벅찬 감회를 금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무한한 영광이지만 제게 주어진 기대와 책무를 생각하면 어깨가 참으로 무겁습니다.

먼저 이 자리를 빌려 국가경제와 한국은행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총재님들과 임직원 여러분, 그리고 금통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지난 8년 동안 한국은행을 훌륭히 이끌어 주시고 코로나19 회복 과정에서 통화정책 정상화에 선제적으로 나서 주신 이주열 총재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오랜 시간 선배님들이 쌓아 올린 국민적 신뢰와 위상을 더욱 견고하게 다져 나가겠습니다.


친애하는 임직원 여러분,

총재직에 지명되고 나서 한국경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미 연준의 예상보다 빠른 통화정책 정상화, 그리고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중국의 경기둔화 가능성 등이 통화정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 회복세가 기존 전망보다는 약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성장과 물가 간 상충관계(trade-off)가 통화정책 운용을 더욱 제약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정교하게 균형을 잡아가며 정책을 운용해야 할 때입니다. 합의제 의결 기구인 금통위에서 모든 위원님들과 함께 항상 최선을 다해 최적의 정책을 결정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이 무거운 것은 비단 당장의 정책결정이 어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보다 긴 안목에서 보면 지금 한국 경제는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가속화되고 있는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과 더불어 세계화의 후퇴 흐름이 코로나 이후 뉴노멀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신기술 확보 경쟁, 지정학적 경제 블록화 등으로 국가간 갈등이 심화되고 이 과정에서 정치·경제·안보 등 여러 이슈가 서로 연계되면서 국제정세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코로나 위기 이후 이러한 뉴노멀 전환 과정의 도전을 이겨내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고령화와 생산성 저하 추세가 이어지면서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 국면으로 빠져들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갈림길에서 우리 경제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이제는 경제정책의 프레임(frame)을 과감히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과거와 같이 정부가 산업정책을 짜고 모두가 밤새워 일한다고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민간 주도로 보다 창의적이고 질적인 성장을 도모해 나아가야 합니다. 아울러 소수의 산업과 국가로 집중된 수출과 공급망도 다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되겠지만, 이를 감수하고 구조개혁을 통한 자원의 재배분 노력을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과거 잘 달리던 경주마가 지쳐 예전같지 않은데도 과거의 성공에 사로잡혀 새 말로 갈아타기를 주저하는 누를 범하면 안 되겠습니다.

구조개혁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날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 문제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지금 디지털 기술발전에 따른 지식 집약 산업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인구고령화로 인해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 그리고 지역간 불균형도 커지고 있습니다. 지나친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켜 우리의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킬 것이기에 이에 대한 해결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당면한 또 하나의 문제는 가계와 정부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늘어날수록 경제성장에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은 줄어들 것입니다. 부채의 지속적인 확대가 자칫 거품 붕괴로 이어질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우리는 과거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습니다. 거시경제 안정을 추구하는 한국은행으로서 부채 문제 연착륙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직원 여러분!

한국은행 본연의 역할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인데 제가 왜 이렇게 큰 거시적 담론을 이야기하는지 의아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행의 가장 큰 임무가 거시경제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의 책임이 통화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습니다.

양갈래 길 앞에 선 우리 경제가 이러한 도전들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여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된다면 이로부터 헤어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정상궤도로의 회복을 위한 어떠한 정책수단도, 특히 통화정책의 경우 더욱이 그 효과가 제약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경제가 그러한 상황으로까지 가기 전에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화정책만으로는 안되며,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기에 이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한국은행도 통화‧금융 정책을 넘어 당면한 문제를 연구하여 우리 경제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합니다. 경제여건이 어려워질수록 중앙은행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다음의 세 가지 울타리를 뛰어 넘는다면 충분히 이를 수행해 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첫째, 우리 스스로가 전문성의 울타리를 넘어서야 합니다. 제가 IMF에 근무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어떤 이슈이든 그 분야의 전문가를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궁금한 사항에 대해 ‘one call away’, 즉 전화 한 통이면 몇 권의 책을 찾아 읽는 것보다 더 빠르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개개인이 전문성을 공유하면 IMF 조직 자체의 전문성도 높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은행 직원으로서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여러분 모두가 각자 맡은 분야의 대표선수가 됩시다. 우리는 2,400명이 넘는 많은 직원들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우리 경제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책, 관리, 현업 등 모든 부서의 직원들이 각자 자부심을 갖고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서로를 가르쳐주면 시너지를 통해 우리의 무한한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 외부와의 소통의 울타리를 넘어섭시다.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한 연구성과를 책상 서랍 안에만 넣어 두어서는 안됩니다. 경제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판단 자료를 더 많이 제공하고 커뮤니케이션 채널도 더 다양화해야 합니다. 정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의 전문가와도 더 많이 소통해야 합니다. 정부와의 소통에 대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통한다고 독립성이 저해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정부와, 시장과, 또 민간기관과 건설적 대화가 반드시 필요한 때입니다. 이를 통해 문제를 종합적(comprehensive)으로 살펴보고 조화(consistent)와 협력(coordinated) 속에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울타리에 안주하려는 생각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지금 국제사회는 디지털·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속에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대표기업들은 재빠른 대응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수출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공공 부문도 그러한지 깊이 되돌아보게 됩니다. 국내 문제에 치우쳐 국제사회 변화의 큰 흐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한국은행도 다른 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경제(digital economy)와 녹색금융(green finance) 등 새로운 글로벌 이슈가 현안이 되었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경우, 이에 따른 제반 환경변화가 공공 지급결제 인프라와 통화정책의 유효성 등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우리의 생존문제라 생각하고 철저히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해외로부터 배우기만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경험과 연구성과를 해외와 공유하고 글로벌 아젠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와 있습니다. 뛰어난 경쟁력을 갖춘 당행의 직원들이 국제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우리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한국은행 임직원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과 이와 같은 세 가지 울타리를 넘어서는 데 함께하고 싶습니다. 통화신용정책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를 가장 잘 아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로서 한국은행의 면모가 더욱 굳건해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이를 통해 한국은행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기본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민간부문의 의사결정에도 도움을 주는 ‘intellectual leader’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여러분들의 힘찬 도약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개인의 동기부여와 조직의 성과를 위해서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나 보람 못지않게 인사·조직 운영이나 급여 등에 있어서의 만족도도 중요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산이나 제도 등 여러 제약들로 인해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하나둘씩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봅시다. 

잘 아시겠지만, 저는 얼마 전 코로나19로 인해 건강상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습니다. 한국은행 총재직은 제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을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만, 국가와 한국은행의 발전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미래라는 것은 나약하고 소심한 자에게는 그저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일 뿐이나 용기 있는 자에게는 이상적인 기회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원팀(one team)이 되어 훗날 지금을 되돌아보며 한국은행이 한국경제를 전환점에서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최유경 기자 orange@new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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