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오를 땐 뒷짐정유사-주유소 '폭리' 프레임 씌우기알뜰주유소 '인센티브' 지원 등 '기울어진 운동장' 정부가 만들어부동산 개발 등 기회비용 따라 문 닫는 속 증가세… "차라리 규제 대폭 완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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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민석 기자

    "정부가 주유소 단속을 한다는데, 가격을 비싸게 팔든 싸게 팔든 불법은 아니지 않나. 시장 안정화를 시키는 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시장경제에도 맞지 않는 논리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5년째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최근 폐업을 결정했다. 과거에는 주유소를 하면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통상 휘발유 마진은 5~7%지만 여기에 금융비용, 임대료,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평균 영업이익률은 1~2%에 불과하다.

    여기에 인건비는 지난 5년간 급격히 오른데다 유가 급등까지 겹치자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들어진 상태다. 상황이 이런데도 기름값을 내리지 않은 주유소 단속에 나서기로 정하자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6일 유류세 추가 인하 조치에도 기름값을 내리지 않은 주유소 단속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함께 '정유사·주유소 시장점검단'을 구성하고 서울시 소재 고가판매 주유소 3개소를 점검했다. 해당 조직은 유류세 추가 인하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하고 고유가 시기 가짜석유 유통 등 불법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임시조직으로 가격·담합반, 유통·품질반 등 2개조로 구성됐다.

    당시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유류세 추가 인하 조치는 그간 지속적인 유가 상승으로 국민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이뤄진 특단의 조치인 만큼 정유사, 주유소 등 업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요청한다" "정부도 국민들이 유류세 추가 인하 효과를 빠르게 체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유가 부담 완화 취지로 지난해 11 12일부터 유류세를 20% 인하, 올해 5 1일부터 인하 폭을 30%로 확대했다. 그럼에도 기름값이 잡히지 않자 정부는 지난 1일부터 인하 폭을 37%로 더 확대했다.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한 유가 안정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시장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유류세 인하를 통한 '무언의 압박' 등 정부의 시장개입이 되레 위기를 가중시켰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의 알뜰주유소 도입이다. 정부는 지난 2011 12월 국내 유가 안정화를 위해 알뜰주유소를 시행했다. 농협과 석유공사가 정유사로부터 대량으로 유류를 구입해 일반 주유소보다 저렴하게 기름을 공급하겠다는 취지였다. 알뜰주유소 비중은 전체 주유소(11064)의 약 11.4%(1268)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주유소 간 '출혈경쟁'이라는 부작용만 심화됐다. 더 큰 문제는 알뜰주유소에 한정해 인센티브 등을 지원하고 있어 불공정 경쟁만 유발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시장개입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7일 기준 전국 알뜰주유소의 평균 휘발유-경유 가격은 각각 2078.80원과 2125.24원을 기록했다. 정유사상표 주유소는 2113.18원과 2148.14, 자가상표 주유소는 2098.50원과 2130.25원이었다. 이와 달리 일반주유소의 경우 적게는 20원에서 많게는 30원 가량 높다.

    김문식 한국주유소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국제유가가 오를때 선제적으로 방해를 안했는데 유류세를 내리면 뭐하냐" "폭리를 취하는 건 정유사와 주유소라는 프레임 씌워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는 문 닫는 주유소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주유소 간 가격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경쟁에 뒤쳐진 사업주들은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됐다.

    한국주유소협회에 의하면 전국 주유소는 지난 5월 기준 11064개다. 지난해 213개 주유소가 폐업을 한 데 이어 올들어 5월까지 전국 122개의 주유소가 장사를 그만뒀다. 올해 폐업 수가 작년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주유소 업자는 "알뜰주유소가 일반 주유소보다 저렴하게 기름을 공급하는 바람에 가격 경쟁이 가열됐다정부의 시장개입으로 많은 영세 주유소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주유소 업계는 위기 타파를 위해 이종업종간 협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규제의 벽에 막혀있는 상태다. 현행법상 주유시설 이격거리는 주유기 6m, 탱크주입구 4m, 통기관 2m로 규정돼있어 다양한 사업을 병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주유소는 물류 거점 등 사업 다각화를 위해 몸부림이다. 주유소의 넓은 공간을 각종 물건의 임시 보관이나 배송을 위한 주차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식 등이다.

    김문식 이사장은 "주유시설과 전기자동차 충전설비 간 이격거리 규정으로 주유소 기반 전기자동차 충전 인프라 확산에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나서 규제를 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해, 향후 주유소가 좀 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