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포퓰리즘이 건보 근간 해쳐… 급여 인상·자격기준 강화"노동개혁 드라이브… "연장근로 '주'→'월·분기·연'등 다양화"화물연대 파업 '전화위복'… 원칙 세우며 정책추진 동력 얻어
  • ▲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연합뉴스
    ▲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충분한 논의 없이 진행됐다는 비판을 받는 주 52시간제 등 이른바 '문재인표' 정책 손보기에 본격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도한 노동계 동투(冬鬪·겨울철 투쟁)에 원칙대로 맞서면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반등하는 등 동력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 보루인 건강보험에 대한 정상화가 시급하다"면서 "건보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보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됐다"면서 "혈세를 낭비하는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켜 건보 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대대적인 손질을 예고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큰 틀의 접근법도 제시했다. 건보 급여와 자격 기준을 강화하고 의료행위 남용에 따른 건보 재정 누수를 막겠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중증 질환처럼 고비용이 들지만, 필수적인 의료는 확실히 보장되도록 하는 게 건보 제도의 요체"라며 "(건보 개혁을 통해) 절감한 재원으로 의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분들을 두텁게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앞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보 관련 개혁방안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복지부는 지난 8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필수의료대책·건보 지출효율화 방안' 공청회에서 건보 적용을 받는 급여 항목 중 남용이 의심되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초음파 검사에 대해 급여 적용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케어로 광범위한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가 이뤄지면서 꼭 필요치 않은 데도 MRI를 찍는 등 의료 현장에서 과잉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문재인 케어로 의료 서비스 접근성 향상이라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불필요한 의료 남용 등 부작용으로 건보 재정에 악영향을 줘 결과적으로 국민 부담만 키웠다는 판단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12월29일 발표한 '2020년도 건보 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건보 보장률은 전년보다 1.1%포인트(p) 오른 65.3%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총진료비 102조8000억원 중 건보에서 67조1000억원을 부담했다. 건보 재정수지는 문재인 케어가 본격 시행된 2018년 이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와 올해는 각각 2조8000억원과 1조원 흑자를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병원 방문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부터는 다시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데다 문재인 케어로 고정 씀씀이마저 늘어난 상황이어서 건보 적립금은 오는 2028년 마이너스 6조4000억원으로 고갈될 것으로 추산된다.

    보험료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보험료 수입은 2017년 49조5138억원에서 2020년 63조4901억원으로 3년간 28.2% 급증했다. 건보료는 박근혜 정부 때 최대 인상 폭이 1.7%였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2배 수준으로 커졌다.
  • ▲ 건겅보험 재정추이.ⓒ연합뉴스
    ▲ 건겅보험 재정추이.ⓒ연합뉴스
    주 52시간제(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도 수술대에 오를 예정이다. 주 52시간제는 지난 2018년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적용된 후 지난해 전면 시행됐다. 친노동계 일변도의 정책을 쏟아냈던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이어 주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급격히 줄였다. 당시에도 코로나19로 영세기업의 인력난이 심화한 가운데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어서 논란이 컸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가 전날 노동개혁 과제로 제시한 정부 권고안에 대해 "권고 내용을 토대로 조속히 정부 입장을 정리하겠다"며 "우리 사회의 노동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연구회는 권고문에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바꿔 기업·근로자가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연구회는 장시간 연속 근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장근로시간 총량을 관리단위에 따라 비례적으로 감축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 주당 연장근로 12시간을 월 단위로 환산하면 52시간이 된다. 연구회는 분기 단위는 월 단위 대비 90%인 140시간, 반기 단위는 80%를 적용한 250시간, 연 단위는 70%에 해당하는 440시간으로 줄여나가자고 제시했다. 아울러 연장근로 후 11시간 연속휴식을 주도록 제안했다.

    연구회는 또한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여러 해 근무한 공로)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바꿀 것을 제언했다. 우리나라 임금체계는 기본적으로 오래 근속한 근로자에게 유리한 구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내놓은 '2022년 임금조정과 기업 임금정책에 대한 권고' 보고서에 따르면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의 임금은 근속 1년 미만 근로자의 2.95배에 달한다. 일본(2.27배), 유럽연합(EU·15개국 평균 1.65배)보다 높다. 연공형 임금체계와 노조 프리미엄으로 인해 생산성을 초과하는 대기업의 높은 임금인상이 누적되면서 상대적으로 지급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공성 임금체계가 고성장 시기 장기근속 유도에는 적합하지만, 이직이 잦은 저성장 시대에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윤 대통령은 연구회 권고안에 대해 "근로시간 제도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높이고 임금 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하는 한편,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문제 등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포함됐다"고 긍정 평가했다. 이번 권고안이 사실상 노동개혁의 밑바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 주52시간제.ⓒ연합뉴스
    ▲ 주52시간제.ⓒ연합뉴스
    일각에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총파업)가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기폭제가 됐다고 분석한다. 소위 귀족노조의 정치·불법 파업에 법과 원칙을 내세워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동력이 확보됐다는 견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바닥권에 머물던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며 5개월여 만에 40%를 넘어섰다. 정부가 지난 6월 화물연대의 1차 총파업을 반면교사로 삼아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던 자유시장원리와 함께 사법체계를 바로 세운 것이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은 이날 화물연대 사태와 관련해서 "파업 기간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며 "경찰 등 법 집행기관은 엄중한 책임 의식으로 불법·폭력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국가가 이를 방치한다면 국민과 근로자, 사업주는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제 임기 내 불법과의 타협은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