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주 예정 35곳 중 32곳 자금 부족 … 14곳·1.4만 가구 보증 불투명면목역 추가 이주비 7.5%·갈산동 기본 9000만원 … 이주·착공 차질 우려李, 각종 편의봐 준 29억원 매각과 대비 … 이주비 막힌 조합원들 '발동동'
  • ▲ 서울의 한 재개발지역 모습.ⓒ연합뉴스
    ▲ 서울의 한 재개발지역 모습.ⓒ연합뉴스
    정부의 대출규제로 수도권 소규모 정비사업 조합원들이 이주비를 마련하지 못해 집을 비우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시공사의 지급보증을 받아도 추가 이주비 금리가 연 7.5%까지 치솟고, 인천 일부 사업장은 기본 이주비가 9000만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 부부는 분당 재건축 아파트를 29억원에 매도하면서 매매계약 이틀 만에 소유권부터 넘겨줬다. 대신 매수인을 상대로 채권최고액 17억7000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일반 조합원들은 이주비 대출에 막혀 대체주거지를 구하지 못하는 반면 대통령은 매수인의 잔금 마련을 기다려주고 담보를 잡는 이른바 '집주인 대출' 방식으로 재건축 아파트 매각을 마무리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서울시와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가 올해 이주를 앞둔 정비구역 35곳, 3만1075가구를 전수 점검한 결과 32곳이 은행권 대출만으로 필요한 이주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사업장의 91.4%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5곳은 시공사로부터 추가 이주비 지급보증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고 9곳은 지급보증 여부를 협의하고 있다. 전체 35곳 가운데 14곳, 약 1만4000가구의 추가 이주비 조달 여부가 불투명하다. 지급보증을 확보한 18곳의 추가 이주비 대출금리도 연 4~7%대로 집계됐다.

    현재 서울 등 규제지역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은 1주택자에게 LTV 40%가 적용되고, 다주택자는 은행권 기본 이주비 대출이 제한된다. 기본 이주비만으로 부족한 조합원은 시공사의 지급보증을 통한 추가 대출에 의존해야 하지만 사업 규모와 시공사의 재무 여건에 따라 보증 자체가 어려운 곳도 적지 않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 86-3 일대 모아타운에서도 이주비 문제가 사업 일정을 흔들었다. 일부 구역은 관리처분인가까지 마쳤지만 대출규제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었다. 최근 DL건설이 지급보증에 나서면서 사업을 다시 진행할 수 있게 됐지만 추가 이주비 금리는 연 7.5%로 책정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을 적용한 기본 이주비 금리가 연 3%대인 점을 고려하면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추가 이주비로 6억원을 빌리면 연간 이자는 4500만원, 월 이자는 375만원이다. 연 3% 대출보다 연간 2700만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면목동 사업장 4개 구역의 조합원은 총 811명이다. 이 가운데 다주택자 296명은 은행권 기본 이주비 대출이 막혔다. 나머지 515명이 받을 수 있는 기본 이주비는 총 860억원으로 추산됐지만 원활한 이주에 필요한 금액은 약 2480억원이다. 자금 공백만 1620억원에 달한다.

    수도권 외곽 소규모 사업장은 기본 이주비 자체가 대체주거비에 못 미친다. 인천 부평구 갈산동 183-1 일대 소규모재건축사업은 기존 107가구를 철거하고 234가구를 짓는 사업이지만 아직 이주 개시 일정도 정하지 못했다.

    갈산동 조합원들의 종전자산평가액은 약 1억5000만~2억원으로, 실제 받을 수 있는 기본 이주비는 약 9000만원에 불과하다. 시공사로부터 추가 이주비 지원도 어렵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이 남아 있는 조합원은 기본 이주비로 해당 대출을 먼저 갚아야 한다. 9000만원을 받더라도 기존 대출금과 세입자 보증금을 빼면 공사 기간 거주할 전셋집이나 월셋집을 구하는 데 사용할 금액은 수천만원에 그칠 수 있다.

    서울의 한 소규모 재건축사업 관계자는 "요즘 조합원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게 이주비가 실제로 얼마 나오느냐는 것"이라며  "주변 전셋값은 몇억원씩 하는데 그 돈으로 어디 가서 살라는 건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이주가 지연되면 철거와 착공은 시작할 수 없다. 사업 일정이 길어지는 동안 사업비 이자가 늘고 공사비까지 오르면 추가 비용은 다시 조합원 분담금에 반영된다.

    서울시는 정비사업 이주비를 주택 구입 목적 대출과 동일하게 규제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에 LTV를 현행 40%에서 70%로 높여 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올해 이주비 융자 예산 500억원을 편성하고 조합원 1인당 지원 한도를 최대 5억원으로 확대했지만 전체 사업장의 부족분을 채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합원들은 이주비가 부족해도 집을 팔고 사업장에서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 서울시 부동산정책개발센터의 지난 3월 정비사업 추진 현황에 따르면 서울에서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된 정비사업장은 128곳이다. 재건축 79곳과 재개발 49곳이 규제에 묶였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인가 이후 건축물이나 토지를 취득해도 조합원 지위를 승계받지 못하고 현금청산 대상이 될 수 있다.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렵거나 직장 이동과 자녀 교육 등으로 집을 팔아야 하는 장기 보유자까지 재산권 행사가 제한된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해당 규제를 3년간 한시적으로 완화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일반 조합원들은 이주비 대출에 막혀 대체주거지를 구하지 못하는 반면, 이 대통령 부부는 매수인의 잔금 지급을 기다려주는 대신 해당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매각 절차를 진행했다.

    이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공동 소유했던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양지마을 금호1단지 전용면적 164㎡는 지난 14일 29억원에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소유권은 이틀 뒤인 16일 매수인 2명의 공동명의로 이전됐다.

    이 대통령 부부는 소유권 이전과 동시에 해당 주택에 채권최고액 17억7000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은행이 아니라 매도인인 이 대통령 부부가 근저당권자가 되고 매수인들이 채무자로 이름을 올린 형태다.

    매수인이 매매대금을 모두 마련하기 전에 소유권을 넘겨받고 미지급 대금을 담보하기 위해 매도인이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한 것이다. 다만 등기부에 적힌 17억7000만원은 실제 대출액이나 미지급 잔금이 아니라 채권자가 담보를 통해 우선 변제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인 '채권최고액'이다.

    청와대는 "등기상 내용은 매수자의 사정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수인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지 못해 잔금을 한꺼번에 마련하지 못했고 오는 10월 말까지 잔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매수인도 이 대통령과 개인적인 관계가 없으며 중도금 성격으로 약 13억원을 먼저 지급한 정상적인 거래라고 반박했다.

    다만 매도인이 수개월간 잔금 지급을 기다려주려면 매매대금이 당장 들어오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별도 거처와 상당한 자금 여력이 필요하다. 새집 잔금이나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 주택을 파는 일반 매도인은 소유권부터 넘기고 매수인의 잔금을 기다려주는 같은 방식을 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주비조차 구하지 못하는 정비사업 조합원들과 비교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논란은 계약 체결 이틀 만에 소유권 이전이 이뤄진 시점에도 집중됐다. 해당 아파트는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에 포함돼 사업시행자 지정 절차를 앞두고 있다. 정비업계에서는 지정 고시 이후 소유권이 넘어가면 매수인이 재건축 권리를 승계하지 못할 수 있어 소유권 이전을 서둘렀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결국 이 대통령 부부는 매수인이 잔금을 모두 마련할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소유권을 먼저 넘기고 근저당권을 설정해 재건축 권리 승계의 불확실성을 없앴다. 반면 서울 128개 정비사업장 소유자들은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으로 주택 처분이 막힌 데다 이주비 대출 규제까지 겹쳐 사업을 계속 부담해야 하는 처지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해당 아파트를 29억원에 매물로 내놓을 당시 "부동산 시장 정상화 의지를 국민께 몸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 조합원들은 이주비 대출과 주택 처분 양쪽에서 규제에 묶인 반면, 이 대통령 부부는 별도 거처와 자금 여력을 바탕으로 매수인의 잔금을 기다려주며 소유권을 먼저 넘겼다. 대통령에게는 가능했던 거래를 일반 매도인은 선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부동산 규제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매도인과 매수인의 자금 사정 및 이사 일정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려운 게 요즘 부동산 시장"이라며 "일부 조합원들은 '대통령도 관저에 살지 않았으면 이번 거래가 어려웠을 것 아니었겠느냐'며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