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주 의무·처벌조항 없애… 운송사는 운임 준수 강제화물차 '번호판 장사' 퇴출… 운송실적 없으면 면허 박탈당정 협의 거쳐 '화물운송사업 정상화 방안' 발표
  • ▲ 화물운송.ⓒ연합뉴스
    ▲ 화물운송.ⓒ연합뉴스
    정부와 여당이 화물운송시장 정상화를 위해 물류대란의 빌미를 제공했던 안전운임제 대신 표준운임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표준운임제 역시 사실상 '최저운임'을 보장하는 성격이어서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와 국민의힘은 6일 당정 협의를 통해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정은 먼저 지난해 말 일몰된 안전운임제 대신 표준운임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표준운임제는 운임위원회에서 항목별 원가를 산정해 적정 최소 운임을 정하는 것이다. 얼핏 안전운임제와 같아 보이지만, 운송사와 차주 간 운임계약은 강제해 차주를 보호하는 대신 화주와 운송사 간 계약은 가이드라인만 줄뿐 강제성은 없다는 게 다른 점이다. 화주가 표준운임 지급을 어겨도 처벌하지 않는다. 기존 안전운임제가 화주까지 운임계약을 규율하면서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유발했던 점을 고려했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표준운임제는 기존 안전운임제처럼 시멘트·컨테이너 품목만 오는 2025년 말까지 3년간 운영한 뒤 일몰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다.

    또한 해당 품목의 차주 소득수준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표준운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

    표준운임은 운임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원가 구성 항목은 미리 정해 논란을 최소화한다. 그동안 화물연대 조합비, 휴대전화 요금, 세차비 등의 항목이 원가에 포함되면서 논란이 제기됐었다. 세부 원가를 검토하는 전문위원회는 이해관계자가 추천한 회계·세무전문가 등으로 구성한다.

    표준운임 지급을 어기면 시정명령 후에 위반횟수 등을 고려해 과태료를 점차 늘린다.

    차주의 소득 불확실성을 개선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물량이나 장기 운송계약을 맺을 때 화물운임과 유가를 연동하는 표준계약서도 도입한다. 유류비가 운임에 반영되는 구조여서 차주는 고유가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

    지입제도 손질한다. 지입제는 개인 소유의 차량을 운수 회사에 등록한 뒤 일감을 받아 일하고 보수를 받는 제도다. 정부는 실제 운송은 하지 않으면서 지입료만 챙기는 지입전문 운송사를 퇴출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모든 운송사는 앞으로 운송실적을 신고해야 한다. 운송회사로부터 일정 수준의 일감을 받지 못한 차주에게는 개인운송사업자 허가를 내주고, 물량을 제공하지 않은 운송사에 대해선 감차 처분이 내려진다.

    지입계약 시 차량을 운송사 명의로 등록하던 관행은 차량의 실소유자인 지입차주 명의로 등록하도록 개선한다. 지입계약이 끝나고 명의를 다시 이전하는 과정에서 운송사의 번호판 사용료(2000만~3000만원) 미반환 등 갑질이 빈번해 이를 뿌리뽑기 위해서다.

    운송사의 직영차량 확대도 유도한다. 운송사가 차량·운전자를 직접 관리할 경우 차종과 관계 없이 신규 증차를 허용하고, 직영 비율이 높으면 물류단지 우선 입주 등 다양한 혜택을 줄 계획이다.

    2004년 과잉공급 해소를 위해 허가제로 전환하면서 도입한 수급조절제도 화물차 수급상황을 고려해 개선방안을 검토한다.
  • ▲ 화물 운송산업 정상화 방안 당정협의회.ⓒ연합뉴스
    ▲ 화물 운송산업 정상화 방안 당정협의회.ⓒ연합뉴스
    그러나 이번 정부 대책을 두고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반발할 것으로 보여 진통이 예상된다. 먼저 운송사들은 최저가낙찰제가 만연한 상황에서 화주가 표준운임을 지키지 않으면 소규모 운송사도 이를 지키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견해다. 지입 차주 번호판 등록과 관련해서도 법원이 운송사 등록번호판을 재산권으로 인정하고 있어 지입제 퇴출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차주들도 표준운임제에 대해 반대하는 분위기다. 화물연대는 앞서 공청회에서 정부안이 제시되자 성명을 통해 화주 의무·책임을 삭제한 부분을 지적하고 "개악안을 폐기하고 (국회에) 계류 중인 안전운임제 연장 법안을 우선 처리할 것"을 주장했다.

    화주도 불만이 없잖다. 표준운임을 결정하는 운임위원회 구성이 여전히 화주에게 불리하게 짜졌다는 태도다. 운임위원회는 기존 4명이던 공익위원을 6명으로 늘리고 각각 3명이던 운송사와 차주 대표를 각각 2명으로 1명씩 줄였다. 하지만 화주들은 사실상 입장이 같은 차주·운송사 대표가 여전히 화주 대표보다 많아 운임위원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표준운임제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최저운임을 보장하는 기존 안전운임제와 맥락이 같다는 게 문제다. 안전운임제는 엄밀히 말해 개인사업자들인 차주들의 가격담합이고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적잖다. 가격은 상황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인데 운임을 고정하면 가격 기능이 마비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국토부는 지난 2016년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때 안전운임제의 대안으로 이해관계 기관이 함께 운송원가를 조사해 운임산정의 기준을 제시하는 참고원가제 도입을 추진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화물운임을 자율화하고 있다. 프랑스, 일본은 강제성이 없는 참고원가·운임 형태로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