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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제2금융권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증권사, 캐피탈사 못지않게 부동산신탁사들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20년부터 초저금리 부동산 활황기를 맞아 책임준공형 신탁 상품 수주 경쟁이 치열했는데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리스크를 떠안아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 부동산신탁사들이 지금껏 이런 성격의 리스크에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향후 사태 전개 과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수탁고 3년간 161.4조 급증…400조 육박 =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14개 부동산신탁사의 2022년말 현재 수탁고는 392조원으로 전년말 대비 14.5%(49조6000억원) 증가했다.

    2019년 말까지만 해도 수탁고는 230조6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초저금리 기간을 거치면서 2020년말 277조5000억원(+20.3%), 2021년말 342조4000억원(+23.4%)으로 급증했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400조원을 바라보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부동산 활황기를 맞아 최근 3년 동안 무려 161조4000억원이 증가한 것이다.

    덕분에 신탁사의 수입인 신탁보수 규모는 2020년 8081억원(+2.4%)에서 2021년 9037억원(+11.8%)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도 1조472억원(+15.9%)으로 그 추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업계 수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업비용 또한 급증해 수익성은 크게 향상되지 못했다. 14개사의 영업비용은 2020년 6569억원(-1.6%), 2021년 7750억원(+18.0%), 2022년 8850억원(+14.2%)으로 최근 2년간 크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부동산 파티'가 끝난 뒤 두려움에 떨 정도의 청구서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급격한 금리인상 등으로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올해 수익성 악화는 명약관화한 상태다. 일부 신탁사의 경우 생존이 위태로울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매출 급증에도 불구하고 비용 증가로 큰 재미도 못봤는데 엄청난 부실 부담을 떠안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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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3개사 신규인가…'책준형 상품' 경쟁 과열 = 2018년까지만 해도 부동산신탁사는 KB부동산, 교보자산, 대한토지, 무궁화, 아시아, 우리자산, 코람코자산, 코리아, 하나자산, 한국자산, 한국토지 등 11곳이었다. 하지만 2019년 3개 회사(대신자산, 신영부동산, 한국투자부동산)가 추가로 금융당국의 부동산신탁업 인가를 받으면서 총 14곳으로 늘어났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금융위원회는 당시 본인가를 결정하면서 '차입형 토지신탁 업무는 인가 2년 후부터 영위할 것'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시행사를 주요 고객으로 하는 부동산신탁사는 토지신탁, 담보신탁, 분양관리신탁 등이 주요 수입원인데, 토지신탁은 다시 차입형과 관리형으로 나뉜다. 차입형은 신탁수수료는 높지만 부동산 개발 자금을 직접 차입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크다. 큰 사업장의 경우 시공사가 엎어지면 신탁사도 같이 엎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금융위는 신설 회사의 차입형 업무에 '2년 유예 조건'을 단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경쟁은 '관리형 토지신탁' 업무에 쏠렸다. 특히 2016년 하이브리드형에 가까운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상품(책준형 상품)'이 새롭게 출시된 영향으로 신규 진입한 부동산신탁사들도 수주를 늘리며 빠르게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한국신용평가의 분석에 따르면 작년 9월말 총 사업비 기준 책준형 진행사업장 규모는 약 62조원으로, 차입형 사업장 규모(26조원)의 약 2.4배에 달한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책준형 상품이 차입형 상품보다 리스크가 낮다. 하지만 경기가 나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차입형에 비해 미분양 리스크는 지지 않아도 되지만 단어 그대로 '준공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시공사가 부실해지면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금리 인상, 원자재값 인상 등 다양한 요인으로 건설사가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 이후 발생하는 추가비용은 고스란히 부동산신탁회사가 떠안아야 한다. 시공사가 부도라도 나면 대체 시공사를 찾는 노력과 비용도 모두 신탁사 몫이다. 실제로 작년 하반기부터 기한 준수를 어기는 건설사들이 속출하고 있고 올해 이런 분위기는 더 심화되는 추세여서 부동산신탁사의 자산건전성에 적색 경보가 켜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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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자본 38배까지 책임진 곳도…"리스크 예의주시" = 금감원은 2020년 3개사 신규 인가 당시 "수탁고 증가 등 외형 확대만을 위한 과열 경쟁을 지양하고 건전성 제고를 위한 내실있는 경영을 추구하도록 감독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지만 3년 뒤 현재 상황은 공염불에 가깝다.

    한신평에 따르면 2021년말 기준 부동산신탁사의 자기자본 대비 책준형 사업장에 실행된 PF 대출잔액은 적게는 4.8배, 많게는 19.4배에 이른다. PF약정액을 기준으로 할 경우 6.9배에서 38.0배까지 치솟는다. 부동산신탁사들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책준형 상품 영업에 나섰는지 알 수 있다.

    책준형 사업장은 차입형 사업장에 비해 시공사의 시공능력도 떨어진다. 전체 사업비 기준 시공능력 100위를 하회하는 시공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차입형의 경우 약 16%인 반면, 책준형은 70%에 달한다. 책준형 사업장의 21%는 시공능력이 500위를 하회하는 건설사인 것으로 조사됐다. 책준형 사업의 아파트 비중이 낮은 것도 우려 사항이다. 차입형의 경우 아파트 비중은 약 71%지만 책준형은 20%에 불과하다. 미분양 우려가 높은 오피스텔, 상가 비중이 훨씬 높은 것이다.

    여윤기 한신평 수석애널리스트는 "책준형 상품의 경우 2016년 출시된 이래 위험 사례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올해 어떤 방향으로 사업이 전개될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며 "다만, 자기자본에 비해 사업장 규모가 지나칠 정도로 크고 시공사 리스크가 매우 높아진 점을 감안하면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 확약과 관련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책임준공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PF 부실이 신탁사로 전이될 가능성은 없는지 세부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말 기준 토지신탁 규모는 101조5000억원인데 이 가운데 관리형이 90조원 수준"이라며 "별도로 공표하고 있지는 않지만 90조원 가운데 책준형 신탁 규모는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