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 공동논의 중단… 협의체 회의 단 한차례 그쳐“가계대출, 실수요자 기준 마련 시 부작용 더 커”획일적 실수요자 규정, 더 큰 논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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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요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결국 각 은행이 알아서 판단하기로 결론지었다.금융당국도 가계대출 관리에 대해 ‘은행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어 앞으로 어느 대출을 어느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지 소비자가 일일이 알아봐야 하는 일이 일반화될 전망이다.◇ 은행권 가계부채 실무협의체, 소리 소문없이 중단19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가계대출 실수요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은행권 가계부채 실무협의체’가 지난 9월 6일 첫 회의 후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획일적 기준마련에 따른 부작용이 더 크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면서 사실상 논의가 중단된 것이다.은행권 관계자는 “실수요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했었는데 그 이후에는 은행권 공동 협의 진행은 안 되고 있다”면서 “논의를 한 결과 실수요자에 대한 공통 기준이 마련될 경우 부작용이 더 큰 것으로 판단돼 은행별 (총량관리)상황에 따라 각자 판단에 맡기는 것으로 방향이 잡혔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모든 은행이 특정 사례에 대해 실수요자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면 여기에 포함되는 분들은 우리나라에서 어느 은행에 가도 대출을 못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애초 협의회는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면서도 실수요자들에게 원활한 자금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동기준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당시에는 각 은행별로 가계대출에 대응하다 보니 서로 풍선효과를 우려해 경쟁적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게 되는 문제에 대한 공감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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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입’→‘자율’… 당국 태도변화에 협의체 동력 상실부작용 우려에 따라 논의가 중단됐다는 설명이지만 회의가 단 한차례에 그쳤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입장 변화가 협의체 동력 상실의 결정적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권의 급격한 가계대출 규제로 실수요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지난 9월 4일 직접 간담회를 열고 “은행장들과 만나 가계대출 실수요자 보호 방법에 대해 중지를 모으겠다”고 밝혔다.당시 이 원장은 "당장 은행에서 가계대출 급증 추이를 막기 위해서 상품 운영이 들쭉날쭉한 측면이 있는데 이를 일률적으로 하기도 어렵지만 은행 자체적으로 기준들을 맞춰야 소비자들도 좀 혼선이 없지 않을까 싶다"고 말해 사실상 실수요자에 대한 공동기준 마련을 주문했다.또 가계대출 대응책을 보완‧지도하기 위해 은행권 가계부채 실무협의체에 금감원 담당자가 참여하기로 했다.그러나 이 같은 개입이 또 다른 관치논란을 일으키자 이틀 뒤인 9월 6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직접 긴급브리핑을 열고 ‘은행권 자율관리 방침’을 밝혔고, 이 원장도 이에 보조를 맞춰 ‘개입’ 대신 ‘자율’로 무게추를 옮겼다.이에 따라 가계부채 실무협의체 내 금감원 참석자도 “실수요자에 대해 개별은행 판단이 가능하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실수요자 대출절벽 문제에서 금융당국이 발을 뺀 마당에 또 다른 논란만 불러일으킬 ‘실수요자 기준’을 은행들이 나서서 내놓는 위험이 더 커진 셈이다.다만 내년부터 금융당국의 주문에 따라 은행권의 연중 가계대출 관리가 시작되는 만큼 금융소비자들이 예측 가능한 규제 일관성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실수요자들은 장기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데 갑자기 대출을 못 받게 되면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 “대출문을 닫고 자율규제를 하더라도 은행권이 이사나 분양아파트 구입 등 실수요자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꾸준하고 일관성 있게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