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EF 공급망 협정 타결… 中 "인위적 시장 교란 행위" 경계미·중 패권경쟁 심화… 韓, 국익 지킬 방안 마련 고심 31일 'IPEF 민관협의회' 개최… 정부·민간 머리 맞대
  • ▲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7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7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가입국들이 공조 강화에 속도를 내자 중국이 즉각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우리 정부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어느 쪽도 척지지 않으면서 국익을 최대한 지켜야 하는 '고차방정식' 숙제를 떠안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지난 27일 우리 정부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IPEF 장관회의'에 참석해 총 14개 가입국들이 연합한 공급망(필라2) 협정을 타결했다. 이번 협정은 공급망과 관련한 최초의 국제협정이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호주·뉴질랜드 등의 가입국들은 공급망 위기가 발생할 경우 '위기대응 네트워크'를 가동해 상호 공조를 요청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 밖에도 공급망 다변화·안정화와 공급망 관련 노동환경 개선 등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는 공급망 협정에 대한 의의와 기대효과를 높이 평가했다. 이번 협정은 한국이 그간 체결한 협정 중에서 참여국의 경제 규모가 가장 큰 협정이다. 이를 인·태지역 국가와 실질적 경제협력을 증진해 나가는 초석으로 삼고, 14개국과의 공조를 통해 공급망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핵심광물 등 주요 원부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위기에 쉽게 노출되는 특성이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애초 IPEF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조직한 협의체로, IPEF 가입국이자 동시에 중국을 주 교역국으로 삼고 있는 나라들은 중국의 반응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 ▲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연합뉴스
    ▲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연합뉴스
    산업부는 이번 공급망 협정과 관련해 중국이 반발할 요소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은 달랐다. 지난 29일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을 열고 "인위적으로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는 정상적인 경제·무역 행위를 정치화하며, 반도체 등 산업 관련 협력에 인위적으로 장애물을 만든다"며 "이야말로 공급망 안정에 영향을 주는 최대 위험"이라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중국의 이런 경계태세는 갈수록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주의가 요구되는 사안이다. 21일 중국은 미국 최대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의 제품 구매 중지 조치를 내렸다. 마이크론 제품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돼 안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지만, 미국이 중국으로의 반도체 기술·장비 수출을 금지하자 보복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우리 정부는 신중한 반응이다. 미국이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를 두고 주요 7개국(G7) 등 동맹국들과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자, 우리 대통령실은 25일 브리핑에서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협의해 나가는지 보면서 우리도 그에 맞춰 잘 대응해 나가겠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고수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27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 회의'에서 우리 정부와 회담한 이후, 한국과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다소 일방적인 입장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산업부는 보도자료에 "중국 측에 교역 원활화와 핵심 원자재·부품 수급 안정화를 위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는 원론적인 내용만 담았다. 우리 정부와의 반도체 협력을 적극 강조한 중국과 달리 공급망 확대 측면일 뿐이었다며 한 발 물러난 태도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점차 격화됨에 따라 우리 정부는 '편가르기' 식의 압박을 받을 공산이 더 커졌다. 당장 미국은 마이크론 제재에 따른 빈자리를 우리 기업인 삼성과 SK하이닉스 등이 메우지 말라고 요구하는 상태다. 한국이 반사이익을 차지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미·중 양국과 모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양국 갈등에 따른 우리 기업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이익은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최대 과제로 꼽힌다. 산업부는 오는 31일 'IPEF 4차 민관협의회'를 열고 IPEF에 관한 주요 의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을 필두로 관계부처, 업종별 협의회, 민간전문가 등이 참석한다. 회의에서는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부와 민간 차원의 방안이 적극 논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