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라이언즈 2023] 서울라이터의 칸 라이언즈 탐방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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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칸은 고요하지 않다. 아침 해는 늘 앞서 떠 있고, 밤 10시가 넘어야 겨우 어둠이 내려온다. 아침 칸의 거리는 차 소리와 새 소리, 축제의 열기에 잠 못 든 이들의 분주함으로 북적인다. 칸 라이언즈의 아침은 오전 7시 반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무려 러닝 세션! 이 세션엔 올림픽에 출전했던 전문 마라토너가 함께한다고 한다. 매일 동시다발로 펼쳐지는 50여 개가 넘는 세션 중에서 고심 끝에 고른 2일 차의 테마는 두둥! 'AI와 테크놀로지'다.광고를 시작하던 올챙이 카피라이터 시절, 선배님들은 광고를 '아트와 카피의 결혼'이라 일컬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 광고는 '스토리와 디자인, 기술의 행복한 동거'로 변모했다. 특히나 전 세계 크리에이티비티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칸 라이언즈이기에 '기술'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주요 이슈! 익숙한 키워드가 등장하는 세션들을 확인한 후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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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첫 번째 세션, 들어가자마자 화면 가득 낯익은 얼굴이 눈길을 끌었다. 엔비디아(NVIDIA)의 창업자이자 CEO인 젠슨 황(Jensen Huang)이었다. 몇 년 전 엔비디아의 메타버스 관련 연설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영감을 받았었기 때문에 WPP의 CEO인 마크 리드(Mark Read)와 젠슨 황 두 사람이 나눈 'AI는 어떻게 우리가 살고, 일하고, 창조하는 방식을 혁신하는가(How AI is Revolutionizing How we live, Work and Create)'라는 주제는 많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이 세션의 핵심 키워드는 'Super Charge', 즉 생성형 AI를 통해 우리의 크리에이티비티는 슈퍼차지(강화)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었다."무한한 콘텐츠가 무한한 창의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통해 AI가 우리의 브랜드에 맞는 콘텐츠를 생성하도록 지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젠슨 황의 부드러운 어조에는 두려움이 아닌, AI를 창의력의 최신 도구로 여기는 자신감이 묻어났다.대담의 말미에는 엔비디아와 WPP가 함께 개발하고 있는 생성형 AI 콘텐츠 플랫폼의 시연 영상을 상영했다. 생성형 AI 플랫폼은 영상 속 개체가 실사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물론 자연스러운 동작을 생성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 된다면 컷 별로 세트와 소품을 준비해 일일이 카메라로 촬영하는 대신 풀 3D 광고로 원하는 영상을 찍어내는 날이 곧 다가올 것이라 여겨졌다.마지막 경계였던 고퀄리티 영상 제작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 전문가 비전문가의 경계도 점차 허물어질 것이다. 실제 제작 현장에서 여러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처럼 이제 누구나 생성형 AI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결과물을 디렉션해 얻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콘텐츠의 민주화' 젠슨 황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살고, 일하고, 창조하는 새로운 방식은 바로 크리에이티비의 민주화였다.
- 두 번째 세션은 굿비 실버스타인 앤드 파트너스(Goodby Silverstein& Partners)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 마가렛 존슨(Margaret Johnson)과 오픈(Open AI)의 최고 운영 책임자(COO) 브래드 라이트캡(Brad Lightcap)의 대담이었다. 이 강연 현장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과연 요즘 가장 핫한 ChatGPT와 DALL-E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었다.팔레 데 페스티발, 드뷔시 극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향해 오픈AI의 COO 브래드 라이트캡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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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계신 분 중 업무에 ChatGPT를 사용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주세요."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DALL·E를 사용하는 사람은요?" 역시 많은 수가 손을 들었다. "이 둘을 동시에 사용하는 사람은?" 둘을 융합해서 쓰는 사람도 꽤나 많았다.그렇다면 이렇듯 일상 속에 급속도로 파고든 AI에 관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그는 뭐라고 답할까?"최근 AI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정말 우리의 일자리를 앗아갈까요?" 라이트캡은 대답은 '아니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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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를 도구로 사용할 때도 여전히 인간은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ChatGPT나 DALL-E와 같은 도구는 우리의 시간과 리소스, 예산을 절약하게 해 줄 것입니다. 크리에이터들이 스토리보드를 제작하는 시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대신 이제 DALL-E와 같은 도구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이미지화 할 수 있습니다. 인공 지능은 우리의 아이디어를 증폭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입니다. AI를 통해 창의성의 폭발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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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세션은 미국의 힙합 밴드 블랙 아이드 피스(The Black Eyed Peas)의 멤버이자 프로듀서인 윌아이엠( Will.i.am)이 AI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신기술과 함께 밀접하게 일하는 것은 작업 결과를 향상시키는 걸로 판명됐다"며 "어제에 얽매이고 평범함에 만족한다면 그것은 '파괴자' 이며, AI를 새로운 도구로 여긴다면 그것은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윌아이엠 역시 AI를 새로운 창조성을 위한 도구로 여기고, 여기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AI 긍정파였다."생성형 AI에 관해 제가 좋게 보는 것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창의성을 밀어붙일 수 있는 파트너가 생긴 것이죠. 이것은 단지 노래나 시를 위한 것, 이메일 작성이나 마케팅 전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AI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되고, 그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 또한 창출하도록 할 것입니다."윌아이엠은 자신이 제작한 '창의적 협업을 위한 세계 최초의 AI 기반 메신저 FYI'를 시연했다. FYI의 핵심은 창의적인 협업을 위한 모든 도구를 한 곳에 배치한 다음 AI를 활용해 작업 흐름을 간소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 역시 AI와 '슈퍼차지'라는 단어를 함께 썼다. 결론적으로 생성형 AI는 우리가 가진 크리에이티비티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힘을 부여한다고 전했다.개인적으로 AI에 대한 공포감이 극에 달했던 건 알파고와 인간의 대결을 지켜 본 이후였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AI는 이전처럼 공포스러운 존재로 다가오진 않는다. 그 이유는 주도성, 즉 알파고와 달리 ChatGPT나 DALL-E는 우리가 직접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세밀하게 결과를 조정하는 등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생성형 AI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도구로써의 AI는 나를 도와주는 친구에 가깝다. AI의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을 수 있다면 AI는 크리에이티비티를 저해하는 골치 아픈 방해꾼이 아니라 우리의 크리에이티비티를 강화해주는 새로운 힘이 될 것이다.머지않아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되는 세상을 넘어 누구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는 세상이 찾아올 것이다. '크리에이티비티의 민주화'라는 아이러니한 표현 속에서, 우리 크리에이터들은 어떻게 가장 평등하지 않은 독창성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을까. 기술이 앞설수록 크리에이터의 고민은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