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우디, 연말까지 원유 감산 연장…유가↑IMF 총재 "각국, 인플레이션 싸웠지만…현재 통화정책 차이"'경기부양-물가안정' 선택 기로…韓, 재정여력 부족고물가에 민간소비도 '흔들'…政, 내수활성화 안간힘
  • ▲ 사우디 아람코 원유시설 ⓒ연합뉴스
    ▲ 사우디 아람코 원유시설 ⓒ연합뉴스
    최근 2%대까지 내려왔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치솟으면서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 전환 시점이 늦어지는 모습이다. 저성장 우려 속에 폭염과 폭우로 인한 먹거리 물가와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제불황 속 물가 상승)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5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감산을 최소 한 분기 이상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7월부터 시작한 일 100만 배럴의 감산을 오는 12월까지 3개월 연장하고, 러시아도 석유 수출 규모를 일 30만 배럴 축소하는 방안을 연말까지 유지한다고 밝혔다.

    감산 연장 발표에 따라 유가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이날 거래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1.14달러 상승한 배럴당 86.69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11월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북해산 브렌트유 역시 이날 10월 선물 가격이 장중 한 때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이런 결정에 대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원유의 주요 수요처인 중국의 경제가 나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는 월가의 우려가 더욱 커졌다"고 분석했다.
  • ▲ 한 대형마트 ⓒ연합뉴스
    ▲ 한 대형마트 ⓒ연합뉴스
    유가 상승은 곧바로 물가에 부담이 된다. 전날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8월 물가는 1년 전보다 3.4% 상승했는데 여기에는 과실(과일) 물가가 13.1% 상승한 것과 석유류 물가 하락 폭이 축소된 영향이 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국제 유가는 계속 상승하며 지난해 7월까지 물가를 크게 끌어올렸지만 지난해 8월 이후부터는 유가가 안정세를 보였다. 지난해 높은 물가에 따른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8월 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실제 8월 석유류 물가는 1년 전보다 11% 하락했는데, 전달 -25.9%에 비하면 하락 폭이 두 배 이상 축소됐다.

    유럽연합(EU)도 유가 상승으로 인한 물가 인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8월 유로존의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5.3% 상승했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세계 각 국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달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세계 각국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동일하게 싸운 이후 현재는 국가별로 통화정책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 안정에서 경기 부양으로 정책을 '턴(전환)'할 시점을 언제로 잡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오는 10월부터 수출플러스를 달성하는 등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며 1.7~2%대 경제 성장도 가능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상저하고' 전망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꺼내들 재정 여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7월까지 국세수입은 1년 전보다 43조3000억 원이 부족하지만,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는 대신 20조 원쯤의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을 끌어와 세수부족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외평기금의 목적은 환율시장이 불안할 때 달러 매매를 통해 외환시장 안정을 도모하는 것인데, '세수부족'이라는 급한 불을 끄겠다며 외환시장 불안에 대응할 카드를 미리 써버리는 것이다. 이른바 '카드 돌려막기'인 셈이다.

    그렇다고 통화정책으로 경기부양을 꾀하기에는 물가가 불안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가 2%대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금리를 인하하겠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 ▲ 제주 면세점 찾은 중국 단체관광객 ⓒ연합뉴스
    ▲ 제주 면세점 찾은 중국 단체관광객 ⓒ연합뉴스
    결국 지난 1분기 경제성장을 주도하던 민간소비 외에는 기댈 곳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물가가 좀처럼 안정세를 찾지 못하면서 소비심리는 위축된 상황이다. 실제 지난 2분기 민간소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1%를 기록,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정책 카드가 없는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민간소비를 활성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전날 국무회의를 주재해 10월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추석 명절부터 개천절로 이어지는 6일간 연휴를 통해 국민께 휴식과 재충전 시간을 드리고,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내수 진작을 위한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 4일 내수진작을 위해 '중국인 방한 관광 활성화 방안'을 발표, 중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수수료를 면제하고 부가가치세 즉시 환급 서비스 등의 정책을 통해 중국인 관광객 150만 명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통해 GDP 성장률 0.16%포인트(p)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