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동의의결 자진시정안 기각 후 3개월 만에 제재브로드컴, 삼성전자에 연 7.6억 달러 부품 구매 강요공정위 "브로드컴, 전력 없고 조사 협조해 검찰고발 안 해"
  • ▲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미국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이 삼성전자에 스마트폰 부품 장기 계약을 강제한 행위로 19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셀프시정안인 동의의결 절차가 기각된 지 3개월 만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1일 브로드컴이 부품 선적 중단 등 불공정한 수단을 통해 삼성전자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장기계약(LTA) 체결을 강제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91억 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브로드컴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에 사용하는 최첨단, 고성능 무선통신 부품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진 반도체 사업자다. 지난 2018년부터 경쟁업체가 등장하자 삼성전자에 장기계약 체결 압박을 시작했다.

    브로드컴은 스마트기기 통신 주파수의 신호품질을 향상하는 부품인 'RFFE' 부품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졌으며, 삼성전자는 2019년 다른 업체의 RFFE 부품을 일부 채택해 사용했다. 이에 따라 브로드컴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에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에 커넥티비티 부품을 100% 공급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RFFE 부품을 독점 공급하기 위한 장기계약 전략을 세웠다. 커넥티비티는 스마트기기와 다른 장치를 연결해주는 부품으로 와이파이(Wi-Fi), 블루투스(Bluetooth), GPS(위치정보시스템), NFC(근거리통신) 등이 이 부품을 통해 구현된다.

    삼성전자가 장기계약 체결 요구를 거부하자, 브로드컴은 2020년 3월부터 삼성전자에 공급하는 모든 부품의 선적을 중단하고, 개발과 생산단계에서의 기술지원과 삼성전자에 공급하는 RFFE와 커넥티비티 부품의 생산을 중단했다.
  • ▲ 삼성전자 ⓒ연합스
    ▲ 삼성전자 ⓒ연합스
    결국 삼성전자는 브로드컴의 부품을 최소 연간 7억6000만 달러 이상 구매하고 이에 미달할 경우 차액을 배상하는 내용의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브로드컴은 경쟁사업자를 '증오스로운 경쟁자'라거나 삼성전자에 압박을 가한 행위를 '폭탄 투하' 또는 '핵폭탄'에 비유했다.

    장기계약 체결로 삼성전자는 부품 공급 다원화 전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부품 선택권이 제한됐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갤럭시 S21에 애초 경쟁사의 부품을 탑재하기로 결정했지만, 장기계약 이행을 위해 브로드컴의 부품으로 변경했다. 계약 이행을 위해 삼성전자는 경쟁사 제품을 브로드컴 부품으로 전환하거나 보급형 모델에 브로드컴 부품을 탑재하고, 다음해 물량을 미리 구매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공정위는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모델인 갤럭시 S21, S21FE, S22 모델의 관련 부품 구매단가 인상으로 안건 상정 시점인 지난해 1월 기준 최소 1억6000만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브로드컴은 공정위가 해당 사안을 심사하던 도중 동의의결을 신청했지만, 브로드컴이 낸 자진시정안이 삼성전자의 피해를 복원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공정위는 지난 6월 이를 기각했다.

    브로드컴은 동의의결안을 통해 2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상생기금을 조성하고 삼성전자에 대한 품질보증·기술지원 확대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피해구제가 미흡하다고 반대 의견을 냈고 공정위는 브로드컴의 기술지원이 무상이 아닌 유상으로 진행되는 데다, 기술제공 여부도 브로드컴 자의적으로 판단해 삼성전자에 제공하겠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동의의결이란 사업자가 제안한 시정방안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조사 중인 사안이라도 법 위반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브로드컴의 자진시정안을 기각한 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시정명령과 19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과징금은 삼성전자가 브로드컴을 통해 구매한 모든 매출액에 대해 과징금 부과 기준율 2% 상한을 적용해 산정했다.

    다만 브로드컴의 불법행위에 대해 검찰에 고발하진 않았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브로드컴이 과거 법 위반 전력이 없고 조사 전반에 협조한 점, 법 위반행위가 생명·건강 등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점과 더불어 불공정거래 행위 중에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가 한국이나 일본 등 일부 국가에만 적용되는 법제라는 점을 고려해 고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