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RI 주행시험장에서 의도치 않은 가속 시 대처 시연가속페달 조작 상황에서도 EPB 지속작동하면 차량 멈춰최악상황 대비한 스위치 위치확인, 사용방법 숙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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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페달을 끝까지 밟고 있는 차량이 시속 100km/h 전후에서 ‘전자식 주차브레이크(Electronic Parking Brake, 이하 EPB)’를 당긴다. 주행 중 EPB 사용을 감지한 경고음이 울리고, 차 내부에는 브레이크 패드가 타는 냄새가 가득하다. 도저히 차를 멈출 수 없을 것 같던 위급상황에서 EPB는 내 차를 어떻게든 멈출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8일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주행시험장에서 의도치 않은 가속상황을 가정한 ‘비상상황 대응요령 시연’이 진행됐다.최근 전기차 택시를 필두로 한 차량 급발진 의심사고가 접수되면서 의도치 않은 가속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사고 차량을 운전하던 기사들이 속도를 줄이려 했지만, 풋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음은 물론 시동이 꺼지지도 않았다고 진술하면서 불안감은 증폭됐다.의도하지 않은 가속은 가속페달이 끝까지 눌려있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차량의 기계적 결함뿐만 아니라 외부 물체 끼임이나 바닥매트 걸림 등 외부적 요인도 작용하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로도 판명되는 추세다.이날 실험은 가속페달이 눌린 상황을 전제로 진행됐다. 변속기어가 P단으로 설정된 상황에서, 물통이나 물티슈 등 이물질이 가속페달에 끼어있는 상황을 재연하니 엔진 회전수가 급상승했다. 다만 브레이크 페달만 제대로 밟고 있다면 D단으로 바꾸더라도 차는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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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멈춰 있으면 브레이크만 잘 밟으면 되지만, 문제는 주행 도중에 의도치 않은 가속이 계속될 때다. 가장 효과적인 대처 방법은 당연하게도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는 게 우선이다.마치 시동이 꺼져있을 때 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유압식 브레이크 부스터(하이드로백)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페달을 힘껏 밟으면 어느 정도 제동력을 보장할 수 있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평소에 브레이크를 밟던 힘보다 훨씬 강하게 밟기 위해 두 발을 모아 밟는 방법을 추천했다.주행 중 두 발로 제동페달을 힘껏 밟았을 때도 속도가 줄지 않는다면 비상 상황이다. 차가 마음대로 제어되지 않는 상태에서 운전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고, 그 사이 속도가 더 붙게 되면 차를 제어하기는 더 어려워진다.이때 사용해야 할 장치가 EPB다. EPB는 국내 판매 중인 전기차(15개 제조사 364개 차종)에 모두 적용돼있다. 내연기관의 경우 생산연도나 차급, 옵션에 따라 기계식 주차 브레이크가 적용돼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기계식 주차 브레이크는 주행 중 사용을 권고하지 않는다. 기계식은 브레이크 디스크에 톱니를 거는 물리적 방식으로 운전자의 힘으로 작동한다. 제동력에 차이가 있을뿐더러, 순간적으로 강하게 작동하면 차가 회전하거나 전복되는 더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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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EPB는 순차적으로 제동하게끔 프로그램된 시스템이어서 안전하다는 설명이다. 자동차 제동장치는 주 제동장치인 브레이크와 주차제동장치로 구성돼있으며, 각각 독립적으로 작용하도록 만들어졌다. 주 제동장치인 풋브레이크가 듣지 않더라도, EPB는 전자제어를 통해 반드시 작동하게 돼 있다.특히 주차제동장치는 주행 중에도 제동시킬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제조사가 배포한 차량 사용자 매뉴얼 상에서도 EPB의 주행 중 긴급 작동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상적인 제동거리보다 길어질 수 있고, 비상시 사용하는 만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의 문구도 포함됐다.이날 EPB 작동 시험은 7개 제작사 15개 차종이 준비됐다. 특히 EPB가 장착된 전기차를 위주로 구성된 가운데 가솔린과 디젤, 하이브리드까지 대부분의 파워트레인을 대상으로 시연을 진행했다.제네시스 GV60 조수석에 탑승해 의도치 않은 가속 상황에서 EPB를 사용하는 상황을 직접 체험해봤다. 시속 80km/h 속력에서 EPB를 한 번 당기니 마치 브레이크를 밟은 듯한 느낌이 들었고, 자세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이후에도 끝까지 가속페달을 밟은 상태로 EPB만 지속적으로 작동시켰더니 속도가 줄던 차는 결국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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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B만으로 차를 세우기 위해 주의할 부분은 잠깐 사용하는 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작동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차브레이크로 사용하듯이 잠깐 작동하면 브레이크를 약하게 누르는 정도의 제동력만 가해지기 때문이다.운전자가 위급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여유가 있다면 변속레버를 N단(중립)으로 바꿀 시 제동거리를 좀 더 줄일 수 있다. 시동을 끄는 것도 주행 중에는 N단이 체결이 되기 때문에 같은 원리다. 패들시프트를 활용한 엔진브레이크나, 전기차는 원 페달 방식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하지만 비상상황에서는 EPB를 우선 활용하는 것이 급선무다. EPB를 활용한 제동력이 먼저 들어가면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운전자에게 심리적으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PB부터 작동한 이후에 변속레버를 중립으로 바꾸는 방법이 추천할 만하다.시동을 끄는 방법은 동력 전달을 차단한다는 데서 의의가 있지만, 주행 중 사용하기에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각 제조사별로 주행 중 시동을 끄는 방식이 달라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다. 대표적인 방법은 3번 눌러야 꺼지거나, 2초 이상 누르는 식인데 위급상황에 하다보면 오작동으로 인해 다시 시동이 켜지는 걸 인식하지 못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또한 운전자가 EPB를 조작하면 차를 세우려는 노력을 한 부분이 참작된다는 점에서도 도움이 된다. 운전 중 EPB 작동은 차량 기록에 남고, 블랙박스로도 EPB 경고음이 녹음된다. 이렇게 되면 의도치 않은 가속 상황에서 운전자의 오조작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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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 중 비상상황 대응과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제조사와 소비자의 노력이 모두 필요할 전망이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제작자와 소비자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권고했다.제작자는 차량 판매 시 EPB 작동 방법을 안내할 필요가 있으며, 장착 위치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날 시연에 활용된 차량 중 같은 제조사더라도 송풍구 쪽에 EPB 버튼이 위치하거나, 센터콘솔 쪽에 자리한 경우가 있었다. 주행 중 비상제동 장치 작동 시 동력이 차단되게 하거나, 제동거리를 단축하도록 시스템이 개선될 필요성도 제기된다.운전자는 비상 상황 시 EPB 사용법을 숙지하고, 의도치 않은 가속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운전석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EPB 작동 방법을 숙지하기 위해 평소에도 주차브레이크 작동을 생활화해야 한다. 또한, EPB를 위급상황에 작동시켰다면 반드시 서비스센터에서 차량 점검을 받을 필요가 있다.권용복 한국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주행 중 발생할 수 있는 비상상황으로부터 교통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제작자와 소비자 모두 권고하는 사항을 조치하고 숙지해주시기 바란다”며 “안전대응과 조치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소비자와 제작자에 권고해 교통사고 예방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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