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비용 절감”…당국, 신속한 사적화해 주문은행권, 자율배상 검토 분주…배상액 산정 난항"스스로 죗값 정해야"…배임 등 법적 리스크 우려과징금 조 단위 부과 가능성
  • ▲ 금융감독원 앞에 모인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자들ⓒ 연합뉴스 제공
    ▲ 금융감독원 앞에 모인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자들ⓒ 연합뉴스 제공
    '먼저 매를 맞는 사람이 적게 맞는다(?)'

    은행권이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의 자율배상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

    스스로 선제적 자율배상에 나설 경우 주주 이익 침해 등 배임의 여지가 있는 반면 시기를 놓칠 경우 수조원 대의 징벌적 과징금을 물어낼 수 있어서다. 

    하지만 25만개에 달하는 계좌에 대한 배상액 산정과 타당성 법률검토 등을 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통상 2~3달 걸리던 대표사례 분쟁조정위원회 개최를 서둘러 다음달 중 개최하기로 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한 은행들은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을 바탕으로 자율배상 법률 검토 및 대책회의를 진행 중이다.

    금감원이 판매사들의 자율배상, 즉 사적화해를 권고하는 이유는 다수의 투자자가 모두 법적인 절차를 밟게 될 경우 갈등이 장기화하는 등 무시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1일 분쟁조정기준안을 공개하며 “분쟁조정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으로 각 판매사는 이 기준안에 따라 자율적으로 배상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며 “판매사의 고객피해 배상 등 사후 수습 노력은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과징금 등 제재 수준 결정시 참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은행 입장에서 과징금 경감 등 유의미한 자율배상이 되려면 규모 못지않게 얼마나 빨리 나서는지가 핵심인 셈이다.

    하지만 당국의 기준안에 따른 배상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어 배상금액 산정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당국에서 기준을 주기는 줬으나 어떤 식으로 적용해야 할지 그런 부분들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적합성 원칙 위반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지 로펌을 통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매사·투자자 책임에 따라 0~100%까지 가능한 기준안을 적용하다 보면 항목별로 위법이나 부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자의적 판단에 의한 자율배상은 배임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또 고객이 자율배상을 거부할 경우 향후 소송 과정에서 크게 불리해질 수 있어 기준안 적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죗값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법률적인 검토만 하고 있는 상태이고 (배상금액 산정) 시뮬레이션은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도 이를 모르고 있지 않다. 법률적 근거에 충실한 배상안임을 강조하면서 판매사들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판매사들 입장에서 고민하는 부분은 책임을 제 3자가 확정해 주느냐,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배상해 가느냐 하는 고민일 것”이라며 “선제적으로 사적 조정을 할 것이냐, 소송 등으로 확장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냐는 각 판매사가 책임 있는 결정을 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오는 18일 은행연합회에서 예정된 이복현 금감원장과 은행장들의 간담회 이후 자율배상과 관련한 은행권의 선언적 제스쳐가 나올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조 단위로 예상되는 과징금을 고려하면 결정이 어렵다고 해서 마냥 미뤄두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설명의무 위반, 부당권유 등이 적발되면 수입(판매액)의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15조원에 달하는 은행의 홍콩 ELS 판매액을 고려하면 산술적으론 7조5000억원까지 과징금 부과가 가능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