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9일 중처법 위반 혐의로 열린 첫 정식 재판 참석검찰 “경영상 현황 보고받고, 구체적 지시로 경영권 행사”변호인 “정 회장 CSO로 보기 어려워…안전 의무도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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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표산업의 채석장 붕괴 사고로 열린 첫 재판에서 정도원 회장을 안전관리책임자(CSO)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번 재판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처법) 시행 후 처음 발생한 사고인 만큼 법원의 판단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9일 의정부지방법원 형사 3단독(정서현 판사)은 중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종신 전 삼표산업 대표 등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오전 10시 시작한 이날 재판은 방대한 증거조사에 시간이 소요되며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정도원 회장 등은 피고인 출석 의무가 있는 첫 정식 재판이 열림에 따라 채석장 붕괴 사고 802일 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법정에 들어서기 전 첫 재판에 임하는 각오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답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삼표그룹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주력 계열사의 단일화된 회의 절차를 운영하고 있고, 주식회사 삼표를 주축으로 계열사 경영현황을 공유하고 있다. 정 회장은 경영책임자로서 현황을 보고받고 결정해 경영진에 각종 지시를 내렸다”면서 정 회장을 안전경영책임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검찰은 정 회장이 붕괴 전조증상인 크랙 발생 등에 따라 양주사업소의 사고 발생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안전망 설치 등 안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삼표그룹 내에서 정 회장을 ‘TM(Top Management)’으로 지칭하는 점도 실질적인 책임자임을 뒷받침하는 배경으로 들었다.

    정 회장의 아들인 정대현 삼표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참석한 회의에서 채석장의 생산량과 가동시간을 증대한다는 내용의 보고와 함께 가채량 확보를 위해 하부 원석을 채석하겠다고 그룹 상부에 보고된 사실이 담긴 정례회의 보고서도 증거로 제출됐다. 

    정 회장 변호를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피고인은 법에서 언급하는 안전경영책임자가 아니며, 법에서 요구하는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다했다”며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이행과 사고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변론했다.

    변호인단은 삼표그룹은 삼표산업과 지주사 삼표 등 계열사 모두 각 부문 대표이사가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주요 결정을 내리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을 최종 결정권자로서 안전경영책임자로 규정해 사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을 전면 반박한 것이다.

    아울러 “검찰의 주장대로 정 회장이 현장의 상황과 사고 사례를 보고 받은 후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 마련을 지시하는 등 구체적으로 관여했다고 해서 기소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검찰의 기소가 기업 회장이나 대표이사가 자기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궁리를 하게 만드는 등 시장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위험이 있다”고 호소했다.

    이 전 대표 등 임직원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광장은 “피고인별로 적용된 죄명 등에 대해 일부는 인정하지만, 안전조치 의무 미이행 전제 사실 등 일부에 대해서는 사실을 부인한다”고 밝혔다.

    중처법은 경영책임자 등에 대해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이에 대해서도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에 대한 해석은 자의적으로 확장이 가능하다”며 “대표를 의미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임에도 지배주주, 대주주 또는 지배구조 회사의 실질적 지배자 등 책임의 범위가 무한정 확대될 수 있다”며 적용 대상의 모호성을 지적했다.

    한편 삼표그룹은 중처법 시행 이틀 만인 2022년 1월 29일 발생한 경기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사망하며 ‘1호 사고’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이종신 대표 등 삼표산업 경영진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검찰이 정 회장을 경영책임자로 판단해 기소하면서 대기업 총수에 책임을 물은 첫 사례에도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