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출처·기여도 논란 가열 노태우 비자금 쪽지 구체적 물증 없어출처 알 수 없는 돈을 가사 기여도 인정 논란"비자금 받은 바 없고 퇴임 이후 지원 위한 어음"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 판결에 대한 논란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물증 없이 노 관장의 재산형성 기여도를 인정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향후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법조계는 항소심 재판부가 1심 재판부의 결과를 뒤집고 이혼 소송 사상 최대 재산분할액을 결정한데는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순 여사가 보관해온 1991년 선경건설(SK에코플랜트 전신) 명의 약속어음과 비자금 메모기 주요 근거가 됐다고 봤다.

    이는 노 관장 측이 이번 항소심에서 재산형성 기여도 주장을 위해 제출한 증거다. 이 메모에는 ‘1998년 4월 1일 현재 선경 300억 원, 최 실장 2억 원, 최 상무 32억 원, 노재우 251억+90억 원’이 기재됐다.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채택하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판단, 노 관정의 재산형성 기여도를 인정했다. 즉 재판부는 최종현 SK 회장이 1991~1992년 노 대통령에게 건넨 50억 원짜리 약속어음 6장(총액 300억 원)은 노 대통령 측으로부터 1991년 지원받은 돈에 대한 증빙의 의미로 준 것이며, 1991년 노 대통령 측으로부터 최종현 회장에게 유입된 자금은 최종현 회장 개인 자금과 섞어 사용했고 이 돈이 오늘날 SK그룹을 일궈내는 밑천이 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비자금 300억원의 성격이나 출처 등을 입증할 구체적인 물증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약속어음도 통상 ‘주겠다는 약속’을 의미하기 때문에 '받았다'로 해석하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 회장 측의 그동안 SK그룹 주식은 선대로부터 증여·상속받은 ‘특유 재산’이라 재산분할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최 회장 측은 이에 대해 "비자금은 받은 바 없고,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활동비를 지원하기 위해 건넨 어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소시효 만료로 출처 등에 수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을 가사 소송에서 기여도로 인정해야 하는지도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 특유재산은 결혼 전 갖고 있던 재산으로, 배우자가 재산 형성에 기여한 경우에만 분할 대상이 되는데, 특수관계인으로부터 유입된 돈을 기여도로 산정해야 하는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앞서 최 회장 측은 항소심 판결에 강한 어조로 유감을 표명하며 상고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항소심 판결 이후 "결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며 "단 하나도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편향적으로 판단한 것은 심각한 사실인정의 법리 오류이며, 비공개 가사재판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 회장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열린 임시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석해 "개인적인 일로 SK 구성원과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SK와 국가 경제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묵묵하게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항소심 판결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했다.

    최 회장은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SK가 성장해온 역사를 부정한 이번 판결에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이날 수펙스추구협의회는 항소심 판결이 최 회장 개인을 넘어 그룹 차원의 입장 정리와 대책 논의 등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 경영진들의 발의로 임시 소집됐다. 이날 회의에는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CEO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최 회장은 향후 SK그룹이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번 사안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 외에 엄혹한 글로벌 환경변화에 대응하며 사업 경쟁력을 제고하는 등 그룹 경영에 한층 매진하고자 한다"면서 "우선 그린·바이오 등 사업은 '양적 성장' 보다 내실 경영에 기반한 '질적 성장'을 추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반도체 등 디지털 사업 확장을 통해 'AI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그룹 DNA인 SKMS 정신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사랑받고, 대한민국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말했다.

    최 회장은 CEO들에게 "우리 구성원의 행복 증진을 위해서 모두 함께 따뜻한 마음을 모으자"고 당부하면서 "저부터 맨 앞에 서서 솔선수범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회의에서 CEO들은 최근 법원 판결이 SK그룹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해온 역사를 훼손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일부 CEO는 SK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 과거 정부의 특혜가 있었다는 취지의 판결과 관련해 "노태우 정부 당시 압도적인 점수로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고도 정부의 압력 때문에 일주일만에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직접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CEO들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어렵게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는데 마치 정경유착이나 부정한 자금으로 SK가 성장한 것처럼 곡해한 법원 판단에 참담한 심정"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앞으로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결연히 대처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와 함께 SK 경영진들은 판결 이후 구성원과 주주, 투자자, 협력사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응과 향후 경영에 미칠 파장 등을 점검하고 대응책 등을 논의했다. CEO들은 우선 구성원들이 동요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한,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SK 경영 안정성을 우려하지 않도록 적극 소통하며 한층 돈독한 신뢰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최창원 의장은 "우리 CEO들부터 솔선수범하며 흔들림 없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기업 가치 및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을 평소와 다름없이 계속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 고유의 SKMS 경영철학과 '따로 또 같이' 문화에 기반한 그룹 최고협의기구로 최창원 의장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 CEO들이 매월 1회 모여 그룹 차원의 공동 현안 등을 논의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