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방위 3개월간 전체회의·청문회 방송에만 몰두소위원회 휴업, 과학기술·ICT 현안 눈밖글로벌 AI 패권경쟁 치열, 논의·제정 시급
  • ▲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3차 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청문회 중단을 요구하며 퇴장해 자리가 비었다. ⓒ뉴시스
    ▲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3차 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청문회 중단을 요구하며 퇴장해 자리가 비었다. ⓒ뉴시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가 여야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AI 관련 산업을 규정하는 ‘AI 기본법’ 제정은 미뤄지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과방위는 지난 21일 ‘방송장악 3차 청문회’를 진행했다. 핵심 증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위원장 직무대행이 불참하고 국민의힘 의원들도 질의에 앞서 퇴장하면서 파행으로 이어졌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과방위는 3개월간 전체회의를 18차례 열었지만, 방통위 2인체제와 공영방송 이사 선임과 관련된 정쟁만 반복됐다. 회의를 통해 통과된 법안은 이른바 ‘방송4법’으로 방통위 의결을 위한 최소 정족수를 변경하고 공영방송 이사진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마저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에 막혔다.

    과방위는 방송만 아닌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다루는 만큼 법안을 심사하는 소위원회로 과학기술원자력 법안소위와 정보통신방송 법안소위를 두고 있다. 하지만 AI 기본법을 담당하는 과학기술 법안소위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으면서 발의된 AI법 관련 논의는 젼혀 이뤄지지 못했다.

    AI 기본법은 AI에 대한 개념 규정과 산업 육성, 안전성 확보를 위한 방향성을 담은 법안으로 21대 국회에서 사실상 여야 합의에 도달했다. 7개 관련 법안이 하나로 통합돼 법안 2소위를 통과했지만, 1년 넘게 상임위 전체회의에 머무르며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는 6개 AI 법안이 소위원회에 계류 중으로, 입법 활동에 진전이 없는 모습이다.

    그사이 글로벌 각국에서는 AI 육성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EU는 5월 세계 최초로 AI법을 제정해 지난 1일 발효됐다. 미국은 ‘첨단 AI 시스템을 위한 안전과 보안 혁신법안’으로 불리는 AI법이 캘리포니아주 하원을 통과해 상원 최종 투표를 앞뒀다.

    주요 국가에서 AI법 제정을 서두르는 것은 산업 발전을 지원함과 동시에 고위험 AI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각국에 맞는 규범 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국의 AI법 가이드라인을 글로벌 표준으로 설정하기 위함으로, 향후 AI를 둘러싼 패권 경쟁에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계산도 깔렸다.

    AI 기본법을 비롯해 단통법 폐지 등 ICT 현안이 방송을 둘러싼 정쟁에 묻히면서 국회 과방위 기능을 분리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정우 네이버 AI 이노베이션 센터장은 지난 6월 국회 AI 포럼에서 “과학기술과 방송을 상임위에서 따로 떼어 분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피력했고,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도 관련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도 AI 기본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적 정의를 비롯해 지원 정책, 고위험군에 대한 규제 등 내용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규제 대상을 명확히 설정하고, 사업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등 세부적인 사항도 숙제로 남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으로서 AI 기본법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이를 지원하는 법안 제정을 촉구했다. 최 회장은 “최근 AI 등 첨단산업에서 국가대항전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기업 활동에 부담이 되는 법안보다는, 도움이 되는 법안을 지원해 주고 응원해 준다면 메달 개수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는 “위험한 분야를 중심으로는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고, 그렇지 않은 영역은 과감하게 풀어주는 형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AI 기본법 외에는 아무런 논의가 안되는 것도 문제다. 인공지능은 과방위만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상임위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