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과방위 과학기술법안소위 논의 전무상임위 한 곳서 '과학기술·방송통신' 담당 전세계 유례없어방통위원장 탄핵, 방문진 이사 선임 등 방송 이슈 매몰AI 기본법 등 국가 경쟁력 원천 과학기술 법안 뒷전국가가 나서서 기업 활동 도움돼야… 과방위 분리 목소리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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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윤 기자
    "3개월간 18번 회의에도 과학기술법 논의는 0"

    22대 국회 상임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이하 과방위)의 현 주소다. 5월 개원 이후 과방위는 야당 위주로 방송통신 이슈에만 몰두한 탓에 과학기술법안소위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국가 경쟁력의 원천인 과학기술 법안이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상임위 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와 마찬가지로 과방위 기능을 과학기술과 방송통신 분야로 각각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과방위 한 곳서 '과학기술·방송통신' 아우르는 기형적 구조

    국회 과방위는 22대 국회 출범 이후 6월 11일부터 3개월 간 18차례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전체회의는 대부분 야당이 주도한 방송법과 방송통신위원회 관련된 내용에 매몰됐다. 회의를 통해 통과된 법안은 이른바 '방송4법'으로 방통위 의결을 위한 최소 정족수를 변경하고 공영방송 이사진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마저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에 막혔다.

    과방위는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을 다룬다. 법안을 심사하는 소위원회로 과학기술원자력 법안소위와 정보통신방송 법안소위를 두고 있다. 

    과학기술과 방송을 하나의 상임위에서 다루게 된 것은 불과 10년 정도로, 이전까지는 두 분야가 분리돼 운영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를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가 만들어지면서 처음 합쳐졌다. 이전까지는 과학기술과 방송 담당 상임위가 나눠져있었기 때문에 이를 분리하자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나왔다.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을 국회 상임위 한 곳에서 다루는 기형적인 구조는 전 세계적으로 찾기 힘들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의 국회 상임위 모두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을 각각 담당한다.

    미국은 '과학·우주·기술위원회', '에너지·통상위원회'로 분리돼 있다. 영국은 '과학·혁신·기술위원회'와 '문화·미디어·스포츠위원회'를, 일본도 과학기술(문교과학위원회)과 방송통신(총무위원회)을 담당하는 상임위가 각각 나눠져 있다.

    입법조사처는 "하나의 상임위가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을 모두 소관하는 사례는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며 "한국 국회에서도 두 분야가 분리돼 운영되다가 19대 국회부터 통합됐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는 결국 과학기술 입법 논의의 소외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듭되는 방송통신위 위원장 탄핵과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을 둘러싼 야당의 몽니가 이어진 결과라는 것.

    앞서 21일 열린 불법적 방문진 이사 선임 등 방송장악 3차 청문회는 여야 갈등이 극에 달했다. 국민의힘 위원들은 '위법적 청문회'라며 진행 중단을 요구했으나 야당은 끝내 청문회를 강행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청문회 안건을 상정하자 여당 위원들은 질의를 앞두고 퇴장하면서 '반쪽'으로 진행됐다. 여당 소속 과방위 위원들은 퇴장 후 성명을 통해 "헌법과 여러 법률을 위반한 사상 초유의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과방위 여당 간사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방통위·방문진 이사를 포함해 공영방송 이사의 선임 과정이 애초 5인 체제였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사안"이라며 "입법부와 사법부가 서로 삼권분립에 의해 균형과 견제를 이루어야 하는 장치를 국회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 ▲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데일리
    ▲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데일리
    ◆ 방통위 식물 부처 전락… AI 기본법 등 주요 과학기술 정책 실종

    야당이 방송장악에 혈안이 된 사이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위원장이 탄핵되며 제 기능을 상실했고, 과학기술 법안 심사와 논의는 실종됐다. 반복되는 탄핵과 자진사퇴의 무한 굴레에 빠지면서 주요 정책이 멈춰 선 식물 부처로 전락한 것이다. 이에 단말기유통법 폐지를 비롯해 소프트웨어진흥법, 전기통신사업법 등 과학기술 산업 육성에 필요한 법안들이 실종됐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AI 기본법이다.

    AI 기본법은 AI에 대한 개념 규정과 산업 육성, 안전성 확보를 위한 방향성을 담은 법안으로 21대 국회에서 사실상 여야 합의에 도달했다. 7개 관련 법안이 하나로 통합돼 법안 2소위를 통과했지만, 1년 넘게 상임위 전체회의에 머무르며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는 6개 AI 법안이 소위원회에 계류 중으로, 입법 활동에 진전이 없는 모습이다.

    그사이 글로벌 각국에서는 AI 육성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주요 국가에서 AI법 제정을 서두르는 것은 산업 발전을 지원함과 동시에 고위험 AI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각국에 맞는 규범 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국의 AI법 가이드라인을 글로벌 표준으로 설정하기 위함으로, 향후 AI를 둘러싼 패권 경쟁에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계산도 깔렸다.

    EU는 5월 세계 최초로 AI법을 제정해 지난 1일 발효됐다. 법안은 AI에 위험등급을 부여해 차등규제하는 것이 핵심으로, 고위험 등급은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규제 위주 내용이 담겼다. 법 위반 기업에게는 글로벌 매출의 7%까지 과징금 부여를 할 수 있어 구글과 MS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겨냥한 모습이다.

    미국은 2021년 'AI 이니셔티브' 법안을 제정하고, 연방정부 차원의 ‘AI 행정명령’을 통해 부처별 지침과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기술 기업이 밀집된 캘리포니아주는 '첨단 AI 시스템을 위한 안전과 보안 혁신법안'으로 불리는 AI법이 하원을 통과해 상원 최종 투표를 앞뒀다. 법안은 AI 피해에 대한 책임을 개발사에 지우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AI 패권 경쟁 속에서 AI 기본법 등 주요 과학기술 현안이 정쟁에 묻힐 것을 우려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국가가 나서서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되는 법안을 신속히 제정해야 한다는 것. 더 이상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ICT 분야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과 방송통신 두 부문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한상의 간담회에서 규제보다는 AI를 활용한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차원의 법안 제정을 촉구했다. 그는 "최근 AI 등 첨단산업에서 국가대항전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기업 활동에 부담이 되는 법안보다는, 도움이 되는 법안을 지원해 주고 응원해 준다면 메달 개수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정우 네이버 AI 이노베이션 센터장도 지난 6월 국회 AI 포럼에서 "과학기술과 방송을 상임위에서 따로 떼어 분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도 관련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도 "과방위를 분리하는 것은 상임위가 각 부처와 대응하게 돼있어 단기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우며, 공영방송 부문에 대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며 "특별위원회는 국회의장이 의결하면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