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지속... 첨단산업 광물 수출입 통제까지 "韓이 글로벌 공급망 교란 악영향 가장 취약" 분석도경제안보 품목 확대 등 골든타임 내 정부 전략 마련 시급
  • ▲ 중국 장시성 간현의 한 희토류 광산. ⓒ뉴시스
    ▲ 중국 장시성 간현의 한 희토류 광산. ⓒ뉴시스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지며 글로벌 공급망에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 등은 각국의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시키고, 이로 인해 공급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첨단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어,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28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최근 몇 주간 일련의 조치를 통해 외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서 생산·정제된 희토류와 기타 광물을 구매하기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중국 수출업체들은 지난 1일부터 희토류 수출 물량이 서방 공급망 내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 당국에 구체적인 단계별 추적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지난달 15일부터 반도체를 비롯해 배터리, 방염제, 야간 투시경, 핵무기 등의 원료로 쓰이는 준금속 안티몬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와 무관치 않다는 의견이다. 2020년 이후 미국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최첨단 기술 관련 대(對)중국 수출 통제를 시작해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범용 반도체 개발도 저지하려 하고 있으며, 이에 동맹국인 일본과 네덜란드 정부 및 기업에도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공급망 단절이 아닌 위험 제거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우리 경제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여기다 불안정한 원자재 가격과 물가 상승, 기후 변화 등으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점도 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각국의 수출·수입 구조를 분석한 결과, 주요국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 교란의 악영향에 가장 취약한 나라로 한국이 꼽혔다. 수입 취약성은 한 국가가 다른 특정 국가에 의한 공급망 교란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뜻한다. 수입 취약성이 가장 높은 산업 분야로 금속 가공 제품 제조업, 유기 화학물질 등이 꼽혔다. 이는 주력 수출품 반도체와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소재·설비 분야가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약하다는 의미다.

    실제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핵심 원자재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상승했다. 실리콘웨이퍼를 만드는 실리콘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68.8%에서 75.4%로 상승했다. 차세대 화합물 반도체에 사용되는 게르마늄의 의존도도 74.3%로 17.4%포인트 증가했다.

    국내 산업계도 올해 가장 큰 이슈로 공급망 위기를 꼽기도 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122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문제 심화(23.0%)가 1위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따라 전략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므로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되고 정부의 지원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미 주요국은 경제 안보를 위해 핵심 광물의 공급 안보를 국가 전략으로 삼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3년 사스 사태와 2010년 희토류 수출 중단 사태를 겪으면서 경제안보 리스크 관리를 시작했다. 중국으로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동남아시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통해 반도체 소자 등 11개 품목을 특정 중요 물자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김영준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세계 경제를 휩쓴 팬데믹이 지나가고 나서 글로벌 공급망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경제의 수출 및 제조업 의존도가 높고 주요 교역 상대국이 미국과 중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이 한국 경제사에서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중국의 굴기를 봉쇄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은 정권에 관계없이 계속될 전망이며, 중국도 탈서방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어 경제안보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국가 차원의 경제안보 이슈로 부각되자 정부는 200여개였던 경제안보 품목을 제조업, 방산, 민생 분야 300여개로 확대해 관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지난달에는 5조원 규모의 공급망 안정화 기금이 출범했다. 이 기금은 경제안보 품목의 국내 생산과 수입 다변화, 기술 자립화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